"미투운동 억압"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폐 놓고 뜨거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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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억압"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폐 놓고 뜨거운 논쟁
  • 취재기자 조윤화
  • 승인 2018.04.1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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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 330명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 폐지 요구 선언...일부는 "폐지 시기상조" 반대 / 조윤화 기자
'미투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미투 폭로가 사회 각계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격렬하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에 사실을 고발해도 고소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이 피해자들의 폭로를 위축시키는 '입 막음'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논란이 커지자, 법학 교수, 변호사 등 법률가 330인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현행법상으로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공개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형법 제307조 1항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고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상충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이 조항이 미투 관련 성폭행 피해자와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려는 이들을 위축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서 면책되려면, 폭로의 사실성과 공익성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사실성과 공익성은 그 개념이 모호하고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판단자에 의해 처벌 여부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공익성과 사실성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폭로자는 시간과 비용 등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학 교수, 변호사 등 법률가 330인은 지난 4월 5일 오전 11시, 사단법인 오픈넷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법률가 선언을 발표했다(사진: 오픈넷 홈페이지 캡처).

이에 법학 교수, 변호사 등 법률가 330인은 지난 5일 오전 사단법인 오픈넷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법률가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피해자들의 고발을 크게 위축시키는 적폐로 규정했다.

법률가들은 선언문에서 “사실인 경우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법”이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는 피해자들이 성폭력 등의 피해 사실을 알린 것 자체만으로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하여 수사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하며, 실제로도 그러한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생활의 비밀과 무관한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사례는 한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며 “우리 사회의 감시와 고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 죄가 반드시 폐지돼 진실 앞에서 만큼은 피해자가 당당하고 가해자가 두려움에 떠는 당연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330인의 법률가들이 선언문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상당수 선진국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유엔인권위원회도 2011년에 이어 2015년 한국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입법 및 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조사, 연구하는 국회 소속기관인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29일 발간물을 통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죄에 대해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조사처는 “현행법에서 진실한 사실의 적시를 처벌하도록 한 것은 그 규정의 존재만으로 사실의 적시 행위를 자제하게 하는 심리적 위축을 초래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사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폐지에 대해선 신중론을 펼쳤다. 미국의 경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없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 등 형벌에 대한 대체재로 기능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 조사처는 “우리나라의 법 현실에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을 폐지할 경우 그 폐단이 클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형법 제307조 제1항을 삭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폐지가 능사가 아니다'라는 조사처의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도 상당하다. 한 네티즌은 “법치국가에서 남을 단죄할 권리는 사법기관이 갖고 있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떠한 사람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한 개인을 명예훼손할 권리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박모(30) 씨 또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기엔 이르다”는 의견을 표했다. 박 씨는 “애인과 안 좋게 헤어진 후, 교제할 당시 찍었던 스킨십을 하고 있는 사진 등 공개하기 싫은 지극히 사생활적인 사진을 상대방이 공개적인 SNS에 올리면 그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상대방을 망신을 주려는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사실을 말할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동의하지 않는 법률가들은 “가해자를 지지하는 제3의 인물이 피해자의 사생활을 폭로해 2차 가해를 할 우려가 있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대한변협신문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초동 변호사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보호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김현 변협 협회장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협회장은 “가해자에 동조하는 사람이나 다른 제3자가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다니거나 피해자의 과거 행실, 성 이력 등에 관해 사실에 기반한 내용으로 명예훼손을 가할 경우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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