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방정식 돼버린 ‘북핵 협상’…미국은 미리 고압적으로 나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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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방정식 돼버린 ‘북핵 협상’…미국은 미리 고압적으로 나오지 말라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8.04.0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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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39) 남·북·미의 협상판에 끼어든 중국, 향후 전망은?

1.

남북, 북미 사이의 협상에 무게중심이 놓였던 ‘북한 핵문제’가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달 26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만난 후 중국이 본격적으로 끼어드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예정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여차하면 중국이 개입할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현재 미국의 태도로 보면,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자칫하면 결렬이고, 그게 아니래도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원래 혼담이 잘 되면 양가가 사돈을 맺어 급속히 가까워지지만 중도에 깨지면 사이가 오히려 더 어색해지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흥정도 마찬가지. 북미 간에 ‘대담한’ 합의가 이뤄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테지만, 만약 결렬돼 버리기라도 하면 한반도에 미칠 후폭풍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당장 미국 쪽에서 대북한 군사옵션 주장이 튀어나올 거고, 북한도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린 채 바늘을 잔뜩 곤두세울 것이 아니겠나. 한반도에 더욱 차갑고 음습한 바람이 불어칠 터.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미국이 설사 단번에 협상을 깨지는 않는다 해도 북한더러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미리 내놓으라고 계속 압박하면 협상이 상당 기간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협상이 자기네 기대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북한은 중국을 끌어들여 후견인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핵 문제에 관한 한 북한은 오랜 협상 경험이 있어서 꽤 노련하다. 중국 카드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준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3월 28일 시진핑과 김정은 회담 후 악수하는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중국의 입장에서도 김정은의 제의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청하지는 못 하지만 바라마지 않음)’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도 않거니와 미국이 중국더러 북한에 더 강한 제재와 압력을 가하라고 자꾸 요구하는 데 대한 말막음용이기도 했다. 중국으로서야 제일 속 편한 건 한반도의 현상 유지인 거다. 쉽게 말해 북한이 말썽을 피우지 않고, 그렇다고 망할 지경으로 가지도 않으면서 미국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는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해 주는 게 제일 좋은 거다.

그래서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라고 선을 그어오긴 했지만 북한과 미국이 실제로 담판을 짓겠다는 데까지 합의하니, 중국 입장에선 한편으론 초조하고 뒷맛이 씁쓸했을 거다. 핵 문제가 일거에 풀리고 양쪽이 수교를 한다느니, 평화협정을 맺는다느니 해 버리면, 그래서 한국과 미국의 자본이 물 밀 듯 북한에 들어가는 상황이 되기라도 하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완전히 퇴조해 버리는 거다. 이건 나아가서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역할 축소와 맞물린다. 동북아에서의 지배력 확보를 토대 삼아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한판 맞짱’을 떠 보려는 중국의 장기 전략에도 큰 차질을 안길 거다.

그렇다고 북핵은 북미 사이의 문제라고 여러 차례 공언한 마당에 새삼 협상 테이블에 왜 우리 자리는 갖다놓지 않느냐고 트집 잡기도 멋쩍은 일. 그래서 눈치만 보고 있는 판인데 김정은이 먼저 중국에게 손을 내미니 반갑지 않을 리가 있나. 시진핑이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을 어떤 의미에선 트럼프보다 더 환대한 것도 다 이런 까닭인 거다. 그러기에 저녁도, 점심도 잇따라 같이 먹고 한 병에 2억 원이 넘는다는 ‘아이쭈이 장핑’ 브랜드의 마오타이를 접대주로 내놓지 않았겠나.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에 강력한 비핵화 압박을 가하면 중국은 은근슬쩍 북한 편을 들면서 미국을 견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일본과 러시아는? 물론 가만있을 리는 없다. 이들도 회담 자리에 끼어들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베 정권이 ‘북핵 협상’ 국면에서 안달복달하는 건 이미 알려진 일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미국은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몰리게 된다면 일본을 회담장에 불러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거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도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한 자리 내놓으라고 할 게다. 그렇게 되면? 말할 나위도 없이 부시 정권 때의 북핵 프로세서인 ‘6자 회담’의 재판이 되고 말 거다. 아시다시피 ‘6자 회담’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었던’, 말 그대로 ‘춤추는 회의’였던 거다. 만약 사태가 그렇게 흘러가면 북핵 문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편먹기가 되면서 다시 미궁에 빠져들지 모른다.

이건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거다. 글쎄, 북한과 미국 사이의 2차 방정식, 기껏해야 한국이 가세한 3차 방정식이었던 ‘북핵 협상’이 중국이 끼어들면서 ‘4차 방정식’이 돼 버렸고,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따라선 5차, 6차 등 고차방정식이 돼버릴 수 있는 거다. 그래서 풀어내기가 한결 더 까다로워질 수 있는 거다.

 

2.

한국의 중재를 받아 북미 양자 사이의 담판 형식으로 진행될 것 같았던 ‘북핵 협상’이 중국이 끼어들 여지를 주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간 것은 내가 보기엔 기본적으로 미국의 과욕 때문이다. 글쎄, 흥정이란 건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손님은 깎는 맛에 물건을 사는 거고, 주인은 좀 깎아주더라도 물건을 팔아야 이익이 아닌가. 그런데 미국은 흥정을 하기도 전부터 북한을 압박하고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래도 비교적 온건파로 알려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대북 매파인 CIA국장 마이크 폼페이오로 갈아치우더니,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존 볼턴으로 바꿨다.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유행어를 낳은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진행자답게 트위터로 두 사람의 경질 사실을 통고했던 것.

존 볼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폼페이오도 매파이긴 하지만 노련한 정보맨이어서 그래도 냉철한 맛은 있지만 볼턴은 그야말로 강경 일변도다. 그는 지명되자마자 강경론을 쏟아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는 북한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이번 ‘비핵화 협상 제안’도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거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탑재 미사일을 보유하려면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는 게 미 행정부 강경론자들의 시각인데 그들은 이번 협상에서 이런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북한과 매우 집중적으로 빠른 조치를 얻어낼 협상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결렬시킨 뒤 한반도를 전쟁 상황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까지 하는 것.

아닌 게 아니라, 북한 특사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달 9일 백악관을 찾아가 북미회담을 하자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트럼프가 매우 흔쾌히 즉석에서 수락했을 때 진전 속도가 너무 빠른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트럼프가 본전(?) 생각이 나는지 미적거리는 눈치가 보인다. 글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생색내기 좋아하는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란 빅뉴스를 자신이 직접 발표하지 않고 한국 특사에게 양보(?)한 것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면피용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미국이 북한과의 5월 정상회담 자체를 깰 가능성은 현재로선 적어 보이지만 어쨌거나, 트럼프-폼페이오-볼턴으로 이어지는 미국 팀은 북한에게 ‘리비아 식 해법’을 제시해 압박을 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리비아 식이란 한마디로 ‘선(先)비핵화, 후(後)보상’ 방식이다. ‘조건 없이 항복해라, 너희들을 배려할지 말지는 그 후에 생각해 보겠다.’ 먼저 북한이 ‘CVID’를 이행하고 그것이 확인이 돼야 수교 등등의 후속조치를 이행할 수 있다는 거다. 미국은 지난 2003년 리비아와도 우선 핵 폐기 조치를 완료하게 했고, 이후 2006년 국교를 정상화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런데, 이게 카다피 입장에선 치명적인 실수였던 거다. 2011년 2월 튀니지와 이집트를 휩쓴 반정부 시위의 여파가 리비아에도 몰아닥쳤다. 리비아 사태가 내전으로 치닫자 유엔 안보리는 비행 금지구역을 설정하는 한편 카다피 일가의 자산을 동결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리비아 반군에게 대규모의 군사 지원을 하면서 공습에 돌입했다. 결사 항전을 다짐하던 카다피가 2011년 10월 20일 시르테에서 반군에게 생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은 다들 아는 일. 핵을 폐기해 놓으니 그로선 미국과 서방에 대항할 마지막 수단이 없었던 거다. “만약 2003년에 카다피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렇게 자문하는 거다.

카다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북한이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에서 얻은 교훈은 불행하게도 '만약 핵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핵무기가 없다면 그걸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죠." 이 말은 놀랍게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보 수장인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한 말이다. 그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을 연달아 발사했던 지난해 여름 방송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김정은이 매우 특이한 타입이지만, 미친 것은 아니다”며 “그의 행동은 정권 및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강요하면 판이 깨질 것이란 거다. <뉴욕타임스> 역시 “핵무기 포기 압력을 받고 있는 다른 나라들은 리비아의 경험이 주는 메시지가 미국 정부가 의도하는 것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리비아의 예를 따르라고 서방으로부터 자주 거론되었던 이란과 북한은 카다피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회담 초장부터 ‘리비아 방식’을 북한에 강요하면 제대로 이야기해 보기도 전에 판이 깨지고 말 거란 게 한국 정부의 우려이기도 하다.

 

3.

그렇다면,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책은 무엇일까.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했다는 주장이 그것.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에 따른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그런 한편으로 “만약 남조선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답해 와서 평화·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 동보적 조치를 취한다면, 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다시 말해 미국이 요구하는 ‘리비아 식 핵 폐기’요구엔 응하지 않겠다는 것, 미리부터 옷을 홀랑 벗고 회담장에 나서진 않겠다는 것을 명토 박은 셈이다. 남한과 미국이 향후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어떤 조처를 요구하고, 이에 맞춰 북한에도 동일한 수준의 담보 조처를 해주는 ‘동시병행’ 방식으로 비핵화를 진행하겠다는 구상인 거다. 글쎄, 내가 보기엔 북한의 입장에선 이런 주장을 펴는 게 당연하다. 김정은으로선 지금 단계에서 미국의 선의를 어떻게 믿나. 무장해제했다간 자칫 카다피 꼴이 날 텐데.

단계적 해법이란 측면에선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복수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리비아 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든, 일괄타결이든, 리비아식 해법이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을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 문제가 25년째인데 코드를 뽑으면 TV가 꺼지듯이 일괄타결 선언을 하면 비핵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검증과 핵 폐기는 순차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는 거다.

어떻게 해서라도 미국과 북한의 ‘혼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중매쟁이’인 한국으로선 맞선자리에서부터 파토가 나지 않도록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당사자 한쪽이 '혼수'를 지나치게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걸 눌러둬야 할 필요가 생기는 거다. 그렇게 보면,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완전한 비핵화’부터 약속하라고 을러대는 미국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만하다.

글쎄, 미국으로서야 그동안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우선 행동으로 보이기 전에는 믿기 어렵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약속을 뒤엎기론 미국도 마찬가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신 한국과 서방이 경수로를 지어주고 매년 50만t의 중유도 제공한다는 것. 실제로 경수로가 착공까지 됐다. 이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수교를 추진하면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런데 ‘네오콘’의 지지를 업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판이 꼬인 것.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자극하면서 언제든지 무력으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위협한 거다. 그러니 북한으로선 기왕의 합의를 뒤엎을 수밖에.

부시 행정부는 한국은 물론 러시아, 일본, 중국까지 끌어들여 ‘6자 회담’이란 걸 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6자 회담’은 북핵 폐기에 합의할 경우 북한에 대가로 줘야 할 이런저런 경제적 지원을 미국 자신이 부담하지 않고 한국, 일본, 중국 등에 떠맡길 심산 때문에 만들어낸 프로세서가 아니었나.

어쨌거나, 한국 정부가 북한의 주장인 ‘단계적 해법’ 쪽으로 기울어지고, 북-중이 연합 움직임까지 보이자 이번엔 미국이 한국을 견제하고 나섰다.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과 북한 핵 협상을 연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수십 억 달러를 들여 미군이 휴전선을 지켜주고 있으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글쎄, 느닷없이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왜 그럴까. 한국을 몰아세워 북한을 압박하라는 ‘쓰리 쿠션’ 작전일 게다. 한국더러 너희는 잔말 말고 우리 하는 대로 따라오라는 것.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해법’을 토대로 중재에 나서려는 것을 미리 견제하자는 것 아니겠나. 이달 27일 문재인-김정은 회담에서 북한의 양보를 최대한 받아오라는 거다.

안보를 경제와 연결시켜 타결이 다 된 한미 FTA의 개정 발효를 유보하겠다 하고, 주한미군 주둔경비 분담을 다시 들먹이는 트럼프가 치사하긴 하다. <뉴욕타임스>도 지난달 30일 “트럼프가 한미 무역 협상을 북한 비핵화와 연계시키는 것은 미국이 고립된 핵보유국인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직접적인 지렛대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교묘한 책략으로 인해 그가 자신의 아젠다를 위해 동맹국을 위협하거나 사이드라인 밖으로 밀어내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고도 트럼프를 비판했다. 하여튼 북핵 문제가 고차방정식이 돼 갈수록 풀기가 어려워질 것은 분명한 것 같다.

 

4.

‘중재자’의 입장에선 한국으로선 난감한 처지가 될 공산이 크다. 한편으론 북한을 달래 매물을 좀 더 싸게 내놓게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미국을 설득해 지나치게 값을 후려치지 말도록 해야 하니 말이다. 중매쟁이 구전 먹기가 그렇게 쉬울까만.

글쎄, 나보고 말하라면 일단 북한은 사전 협상 단계에선 내놓을 것은 대충 다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담판을 지어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위에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자기네 체제가 보장되기만 하면 핵 폐기를 하겠다는 뜻도 밝힌 터다. 그렇다면, 이번엔 미국이 성의를 보일 때다. 시작도 하기 전에 북한더러 벌거벗고 나오라고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협상하려 들겠나. 게다가 트럼프는 “북한이 핵을 전면 포기하더라도 미국이 줄 건 없다. 평화협정을 맺을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는 마당이다. 이건 북한더러 맨입에 무조건 항복하란 소린데 이래서야 협상이 가능할까.

내 생각엔 ‘단계적 조치’가 현실적인 협상안처럼 보인다. 협상기간 동안 한 6개월 쯤 북한이 핵실험도 않고 미사일도 쏘지 않는 ‘핵 모라토리움’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협상에 성의를 보이면 현재 대북제재 중에 약한 것을 일부 풀어준다. 2단계로 CVID에 합의하고 미국 정부 파견단이든, IAEA든 사찰단의 북한 입국과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면 제재의 상당 부분을 풀어준다. 그리고 북한이 CVID를 제대로 이행해 간다면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북미수교로 나간다. 그리고도 모범생 노릇을 잘 해낸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끼워 4~5자 평화협정 체결까지 간다. 글쎄, 이쯤이면 협상이 성공하지 않을까.

미국은 지금 단계에서 지나치게 고압적으로 나가면 판이 깨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중국도 일단은 북미 협상을 지켜보면서 꼭 필요할 때만 나설 일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이지만, 중국이 끼어드는 건 한국 정부로서도 꼭 나쁜 상황 전개만은 아니다. 해법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중국이 견제해 줄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이 와중에 한국 정부의 중재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비가 오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걱정이고, 날이 맑으면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이 걱정인 늙은 어머니 처지가 될 수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인내와 끈기로 끝까지 중재를 잘 해내야 할 터다. 아무렴, 이 문제는 우리 민족 전체의 생존이 달린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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