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로 쳐들어온 공포의 침입자 ‘비둘기’…퇴치법에 머리 싸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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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로 쳐들어온 공포의 침입자 ‘비둘기’…퇴치법에 머리 싸매는 사람들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8.03.23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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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유해동물' 지정에도 대책 마련 전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정말 다 죽여버리고 싶다' / 정인혜 기자

“정말 다 불태워 버리고 싶어요.”

지난해 새집으로 이사한 정모(27) 씨는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자는 법이 없다. 밤낮으로 들리는 괴상한 소리 때문. 당최 짐작하기도 힘들었던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비둘기가 내는 소리였다. 

정 씨에 따르면, 끔찍한 소리를 내는 비둘기는 베란다 실외기에 자리를 잡고 “구후우욱”, “꾸후우욱”하며 울어댄다. 악에 받쳐 ‘쾅’ 소리 나게 창문을 쳐봐도 그때 뿐. 비둘기는 이내 다시 돌아와서 끔찍한 소리를 내며 운다.

“귀신보다 더 싫은 게 비둘기”라는 정 씨는 “잠을 못 자는 게 너무 괴롭다. 이 동네에 사는 누군가가 길거리에 비둘기 먹이를 뿌려놔서 비둘기들이 모이는 것 같은데,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정말 다 불태워 버리고 싶다”고 울먹였다. 그는 현재 수면제를 처방받은 상태다.

비둘기로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주택가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트는 비둘기가 늘어나면서 울음소리로 인한 소음, 악취, 위생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비둘기 털이 날아 들어올까 창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비위생적이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비둘기를 ‘날아다니는 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집 비둘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도시에 서식하는 비둘기 종은 ‘집비둘기’다. 이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유해동물이기도 하다. 집비둘기는 1년에 1~2회 알을 낳는데,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는 1년에 4~5회까지 알을 낳기도 한다. 성장도 빠르다. 갓 태어난 새끼는 평균 4주~6주 안에 어미에게서 독립한다. 도시에는 비둘기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해 비둘기가 빠르게 번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해동물로 지정됐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정부에서는 국내 서식 비둘기 개체 수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비둘기 관리는 시청이나 구청의 몫인데, 전국에서 비둘기 개체 수 조사를 시행하는 곳은 서울시 딱 한 곳뿐이다. 이마저도 서울시 각 구청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눈대중으로 비둘기 수를 집계한 것이라고 한다. 현황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대책이 나올 리는 만무하다.

지자체는 행정상 절차를 이유로 들었다. 비둘기를 죽이거나 포획하기 위해서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해당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일일이 따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둘기 퇴치 관련 민원이 접수돼도 퇴치 스프레이 제공,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해달라는 현수막을 설치하는 활동밖에 할 수 없다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는 모양새다. 인터넷에는 비둘기 퇴치법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개설됐고, 퇴치 물품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비둘기 전문 퇴치 업체까지 나왔다. 퇴치업체 이용 비용은 20만 원에서 비싸게는 40만 원까지도 호가한다.

비둘기 퇴치 업체를 이용했다는 주부 박모(45, 부산시 중구) 씨는 “소리는 둘째 치더라도 악취, 위생 문제가 너무 심각해 결국 업체를 불러 해결했다”며 “비둘기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매일이 불안하다. 제대로 된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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