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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에 들어간 이명박 ‘가카’ 구속...일그러진 대통령들의 초상

기사승인 2018.03.21  2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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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37) ‘이명박 구속’으로 되짚어 보는 비극적인 ‘한국 대통령사(史)’

1.

편집국장 강동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뇌물액수가 110억 원, 횡령액이 350억 원에 이르는데다 직권남용, 세금 탈루, 공직선거법,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죄목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두고 봐야 알 일이긴 하지면 지금 분위기로는 구속이 거의 확정적이다. 빠르면 이 전 대통령이 수감되는 장면을 지켜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구속이 집행된다면 이명박은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에 이어 사법의 단죄를 받아 수감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된다. 전두환·노태우에 이어 전직 대통령이 둘씩이나 한꺼번에 옥에 갇히는 꼴을 보게 되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가 된다. 글쎄, ‘대통령 당선’이 곧 ‘프리즌 익스프레스(감옥행 특급열차)’의 차표 예약이 되고 마는 이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하고 보면, 한국의 대통령 중에 국민의 아쉬움과 박수 속에 퇴임해 국가 원로로 사회에 봉사하다가 ‘고종명’(考終命: 천수를 마치고 편안히 세상을 떠남)한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모두 11명. 그 중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과 박정희 사망 직후 과도 정부에서 허수아비 노릇을 하다 전두환에게 밀려난 최규하를 빼면 실질적으로 권력의 정상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 9명이다. 그런데 그들 모두 말년이 곱지 않았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무리하게 종신 집권을 시도하다 분노한 국민들의 손에 쫓겨나 황황히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 5·16후 18년간 철권통치를 하던 박정희는 심복이었던 김재규의 총에 암살됐다. 광주 5·18의 피를 군홧발로 뭉개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과 노태우는 후일 김영삼에 의해 내란죄와 뇌물죄 등등으로 구속 수감돼 1심에서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본인이 사법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각기 아들들의 권력농단을 방치했다는 국민적 비난 속에서 사과성명을 내고 쓸쓸히 퇴임했다. 노무현은 부인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 검찰 수사를 받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박근혜는 최순실 등에게 국정농단의 빌미를 주고 재벌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둔 혐의로 30년 형을 구형받은 상태다. 그리고 구속이 눈앞인 이명박까지…….

1945년의 이승만 전대통령(왼쪽)과 김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게 바로 간추린 ‘한국 대통령사’이거니와 살펴봐도 어디 성한 사람이 없지 않나. 입에 쓴물이 괼 정도로 참담하다. 어떻게 우리는 지난 70년을 이렇게 똑 같은 역사를 반복해오고 있을까. 글쎄, ‘제왕적 대통령제’를 용인하는 헌법의 문제라고도 하고, 후진적 정치 문화 탓이라고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건 언제까지나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답답한 노릇이다.

 

2.

말 난 김에 전직 대통령들의 과거를 다시 들추어보기로 하자. 그들의 죄상을 반추하는 게 무어 유쾌한 노릇일까만, 그래도 하다못해 ‘반복 학습’ 효과는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우선 가장 먼저 사법 처리된 노태우부터. 노태우 뇌물사건의 서막이 오른 건 1995년 10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민주당 소속 박계동 의원이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 원이 시중은행에 100억 원짜리 계좌 40여 개로 분산 예치돼 있다.” 차명 계좌번호까지 까발린 그의 발언에 온 나라가가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노태우 측은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해 11월15일 노태우는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가겠다”는 발언을 남긴 채 구속됐다.

국민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도둑놈 주제에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냐. 그럼 제가 지은 죄를 제가 안고 가지 그럼 누구에게 떠넘길까” 하고 냉소했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한 까닭은 따로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그가 후임 김영삼의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30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 건넸다는 게 후일 자신의 자서전에서 드러났다. 노태우는 청와대에 현금을 보관하던 대형 금고까지 만들어 뒀는데 김영삼을 위해 100억 원을 금고에 남겨두고 청와대를 나왔다고도 한다. 그러니 그로선 “그렇게 큰돈을 줘서 대통령에 당선시켰는데 나를 잡아가두나” 하는 억하심정이 들 법도 했을 터.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도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받아썼대서 시끄럽기도 했다.

1989년 재임 시절의 노태우 전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수감 중이던 그는 그해 12월 전두환과 함께 공동정범이 돼 추가 기소됐다. 이번엔 ‘12·12 내란죄’였다.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란 명분이었다. 전두환은 강력히 반발해 김영삼 정권을 비난하는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내려갔지만 곧바로 잡혀 올라와 구속 수감됐다. 소급 처벌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말 ‘5·18 특별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2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는데 1997년 4월 대법원 판결에 의해 각각 무기징역, 12년 형이 확정됐다. 뇌물수수죄도 적용돼 전두환에겐 2205억 원, 노태우에겐 2688억 원의 추징금도 선고됐다. 우여곡절 끝에 노태우는 후일 추징금을 완납했지만 전두환은 버티고 버티다가 아직까지 절반 수준인 1115억 원만 납부했다. 검찰이 추징금을 받아내려고 전두환의 집에 있는 미술품, 가재도구까지 경매에 붙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현금은 29만 원 뿐”이라는 그 유명한 말도 경매 과정에서 나왔다.

글쎄,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재벌 등쳐먹기’로 악명 높은 자들이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터. 전두환이 80년대 재벌들의 군기를 잡으려고 부산에 기반을 둔 양정모의 국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사건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노태우도 마찬가지. 그에게 돈을 건네려 청와대에 불려간 재벌 회장들도 그의 돈 욕심에 혀를 내둘렀다고. 노태우 수사 당시 검찰에 불려간 재벌 총수들의 진술은 이랬다. “준비해 간 30억 원이 든 가방을 줬더니 돈 봉투만 꺼내고 가방은 돌려주더라”, “처음엔 20억을 줬는데 금액이 적어 그런지 어둡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1989년 30억 원을 주면서 이권 청탁을 했는데, ‘알았다’고 해놓고선 다른 곳에 사업권을 줘버렸다. 1990년에도 다시 30억을 줬는데 이번에도 우리한테 60%만 주고 40% 지분은 다른 회사를 줬다”, “일국의 원수인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기 위해 20억 원을 주머니에 넣고 청와대 춘추관에서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1년의 전두환 전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글쎄, 김영삼에게 선거자금으로 준 3000억 원에 쓰다 남겨 갖고나온 돈 4000억 원으로 유추하면 노태우가 재임 중 거둬들인 돈은 최소한 1조 원은 넘을 것 같다. 그보다 집권기간이 더 길고 더 무지막지한 철권을 휘둘렀던 전두환은 모르긴 몰라도 수 조 원 쯤 되지 않았을까. 여담 한마디.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의 증언이다. “자리를 그만 두고 청와대를 물러날 때 전두환이 준 전별금은 기대했던 것보다 0이 하나 더 붙은 액수였고, 노태우가 준 봉투에 든 돈은 기대보다 0이 하나 더 적은 액수였다.” 두 사람의 통이랄까, 씀씀이 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태우의 말년이 적막하다면 전두환이 지금까지 부하들을 거느리고 요란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일 터.

 

3.

김영삼과 김대중은 자식들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우다. 김영삼 정권의 퇴조는 이미 집권 4년차에 그 징조를 드러냈다. 1996년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17개 기업에서 27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의혹이 불거졌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돼 김영삼 정권을 내부에서 흔들었다. 결국 정권 말기에 동티가 났다. ‘거산(巨山)’이란 김영삼의 아호에 빗대 ‘소산(小山)’이라거나 ‘소통령’으로 불린 김영삼의 차남 현쳘은 집권 초반부터 아버지의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산 것이 사실이다. 결국 김영삼은 국민 앞에 서서 “자식의 허물은 아비의 허물”이라고 깊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김현철은 1997년 5월 기업인으로부터 32억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징역 2년과 벌금 10억 5000만 원, 추징금 5억 2420만 원을 선고받았다. 김영삼은 IMF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이란 국민의 눈 흘김 속에서 쓸쓸히 퇴임해야 했다.

1996년의 김영삼 전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글쎄, 자유당 시절부터 정치를 해 온 김영삼이니 그 역시 ‘돈 문제’에 있어선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 유세마다 100만 명의 청중을 조직 동원했던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나 나섰고 거대한 사조직을 운영했으니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엄청나게 끌어 모을 수밖에 없었을 터. 그나마 그가 법정으로 끌려가지 않았던 것은, 후임 대통령인 김대중도 비슷한 처지여서 그를 단죄하기 어려웠겠거니와 거둔 돈을 개인 축재에 쓰지는 않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정치자금의 정거장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던가.

김대중도 김영삼과 같은 경로를 걸었다. 후유증을 남기긴 했지만 IMF 사태를 수습했고, 남북 화해의 길을 닦은 김대중이었지만 홍일, 홍업, 홍걸 등 세 아들 때문에 정권 말년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막내 홍걸은 2002년 5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39억 9000만 원의 뇌물을 수수하고 2억 2000만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한 달 뒤인 2002년 6월 21일엔 차남 홍업이 기업체의 청탁과 함께 22억 8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장남 홍일도 나라종금으로부터 1억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06년 9월 대법원에 의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결국 김대중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저는 결국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왔으며, 저를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1998년의 김대중 전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가장 비극적인 끝을 맞은 것은 노무현임은 다들 기억하실 터. 그의 부인이 고향 김해의 선배인 기업인 박연차로부터 미화 64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게 혐의다. 그 같은 혐의는 2008년 11월 국세청이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를 탈세 혐의로 고발하며 수면 위에 올랐다. 검찰은 12월 박연차가 15억 원을 빌려준 내용이 담겨 있는 차용증을 확보해 수사를 본격 확대했다. 이후 검찰은 부인인 권양숙, 장남 노건호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섰다. 딸인 노정연이 박연차에게서 수십만 달러를 추가로 수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2009년 4월 30일 노무현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했다. 고향 진영에서 검찰 조사를 받으러 불려 올라온 노무현은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국민에게 면목 없는 일”이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는 그해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퇴임 대통령의 수난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남았다.

2008년 APEC 당시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박근혜는 지금 재판 중이어서 혐의가 범죄로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지난해 3월 탄핵된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으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다들 아시는 대로, 그의 혐의는 최순실이 소유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774억 원을 대기업에서 뜯어냈다는 것 등 18개에 이른다. 검찰은 유기징역의 법정 최고형인 30년 형을 구형했고 1심 판결은 오는 4월 6일에 나올 예정이다.

 

4.

일별한대로 역대 대통령들 모두 뇌물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고 통치권자들인 그들 자신의 탐욕과 자기 관리 부실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다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되는 잘못된 정치문화의 탓도 컸던 게 사실이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대통령 측근들의 전횡도 전직 대통령의 수난에 큰 몫을 차지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노태우 정권 당시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비리 혐의로 옥살이를 했던 박철언은 ‘6공 황태자’로 불렸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김영삼의 아들 현철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김대중의 아들 홍일, 홍업, 홍걸은 당시 세간에서 ‘홍삼 트리오’란 비아냥을 받지 않았던가. 노무현의 형인 노건평은 ‘봉하대군’이라 불리며 이런저런 이권에 연루돼 세인의 눈총을 샀다.

이명박 때도 마찬가지. 형인 이상득은 ‘영일대군’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당시 ‘만사형통(萬事兄通)’, ‘형을 거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도 유행어가 됐다. 그런가 하면 형의 친구로 이명박의 멘토라 불렸던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도 ‘방통대군’이란 별호를 얻었다. 박근혜 때도 최순실이 ‘사실상 권력서열 1위’라는 소리를 들으며 ‘언니’를 파멸의 길로 이끌었고, 청와대에선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이 발호했음은 다들 아는 바다.

글쎄, 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몰락한 군주에겐 주군의 눈과 귀를 막은 삿된 측근들이 항상 진을 쳤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한(漢) 말기 ‘십상시(十常侍)’처럼 중국의 황제는 환관들 때문에 정사를 망쳤다. 심지어 황제를 시해한 환관도 있었다. 그렇게 보면 한국의 대통령들도 측근의 잘못된 보필 때문에 스스로를 망쳤다 하겠지만, 그 또한 자신의 업보가 아니겠는가.

 

5.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제 몇 시간 후면 이명박도 속절없이 감옥에 들어갈 거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들의 숨은 죄를 밝혀내고 감방에 처넣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걸까. 우리의 헌정사를 휘감은 부패와 비리의 질긴 사슬은 과연 끊어낼 수 없는 것일까.

2008년 취임식 날의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많은 이들이 ‘제왕적 대통령’을 불러온 현행 헌법을 손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채비를 차리고 있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의 권력구조 개편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다. 이른바 ‘87체제’가 만들어낸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기형적인 구조임에는 틀림없다. 장기 집권을 막노라고 5년이란 어중간한 기간을 정해서 단임으로 막아놓으니 재임을 위해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던 대통령들이 말년에 국정을 함부로 했던 측면이 있다. 국민들로부터 중간 평가를 받아 재신임 여부를 묻도록 하는 ‘대통령 4년 연임제’는 그보다는 진일보한 체제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제왕적 대통령’을 막기엔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내각책임제와 이원집정부제 형태를 또 다른 대안으로 꼽을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미덥지 않다. 내각책임제는 이미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내각책임제는 정당 시스템이 안정돼야 하는데, 이합집산을 밥 먹듯 하는 한국의 정당정치 풍토에서 과연 적합한 제도인지도 의문이다. 총리에게 내치를, 대통령에게 국방과 외치를 맡기는 이원집정부제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인데다 분단국인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어 선뜻 추진하기엔 망설여진다. 어쨌거나, 권력구조 개편은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 권력의 집중을 막는 방안을 찾아내야 함은 물론이다.

개헌과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대로 된 대통령 감을 찾아내고 표를 주는 국민들의 눈썰미일 것이다. 권력을 제 잇속 채우는데 악용한 이명박처럼 탐욕스런 사람이나 신성한 대통령의 권한을 사인에게 양도했던 박근혜처럼 무능한 사람에게 막중한 나라의 채를 맡기지 않겠다면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정치를 감시하면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골라낼 수밖에.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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