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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習) 황제’ 시대를 연 중국의 잇단 대(對) 한국 외교 결례가 불편하다

기사승인 2018.03.15  2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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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주간 강성보

#1

논설주간 강성보

몽골인들은 중국을 ‘햐타이’라 부른다. 공식 외교문서에도 차이나가 아니라 햐타이로 적혀있다. 햐타이는 칭기스칸 시대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요나라의 중심 종족 ‘거란’의 몽골식 발음이다. 당시 칭기스칸의 군대는 중원을 침공하면서 거의 씨를 말리듯 거란인들을 무자비하게 박멸했다. ‘햐타이’란 말 속에는 “그때 우리 선조들 앞에 오금을 펴지 못하던 X들”이란 멸시의 어감이 담겨있다. 일부 변방 중국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민족명 ‘커세이(Cathay)’도 같은 어원이다.

더 지독한 멸칭이 있다. 몽골인들이 자기네들끼리 사석에서 중국 사람을 말할 때 ‘호자’라 한다. “돼지를 기르는 놈”이라는 뜻이다. 몽골에서는 양이나 말, 소 등 풀을 먹는 가축은 자신들의 생명줄처럼 아낀다. 목축 행위 역시 지금 현재도 많은 몽골인이 종사하는 고결한 직업이다. 하지만 돼지는 다르다. 풀이 아닌 사람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이로 하는 불결한 짐승이다. 이런 돼지를 기르는 중국인은 더럽고 불쾌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몽골인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다. 중국어 발음에 된소리가 많은 것을 빗대 우리가 중국사람을 '뙈놈', '짱꽤'라 멸칭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몽골인의 반(反)중국 정서는 상상 이상이다. 일전에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 때 중심가에 중국어로 적힌 간판이 하나도 없어 의아했다. 중국과의 교역에 8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나라라고 알고 있었는데 세계 구석구석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차이나타운은커녕 한자 간판 하나 없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됐다. 몽골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중국어 간판을 내 건다는 것은 우리 가게를 야밤에 습격해주세요”라고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제 10여 년 전 몽골에 ‘디야르 몽골’이라는 극우 배타적 민족주의 단체가 크게 활약했다. ”몽골을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인의 피와 문화를 배격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중국인을 공격대상 1호로 삼았다. 중국인을 아버지로 둔 몽골인, 중국인과 성관계를 가진 몽골여인도 심심찮게 테러를 당했다. 중국 측의 강력한 요구와 몽골 당국의 단속에 의해 이 극우단체의 활동은 진정됐지만 여전히 몽골에서 중국인들이 거리를 함부로 활보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몽골인의 혐중(嫌中) 감정은 뿌리 깊다. 저멀리는 14세기 칭기스칸의 원(元) 제국이 북방에서 발흥한 홍건족의 수괴 주원장(명나라 시조)에 의해 중원을 잃은 것이 기원이다. 또 만주족 청나라가 몽골족을 북방 고원지대에서 몰아내고 자신들 고유의 영토를 빼앗아 지금 내몽골로 편입시킨 것도 ‘햐타이’, ‘호자 놈들’에 대한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주요 원인이다.

더욱이 지금 현 중국이 펼치고 있는 ‘막북공정(漠北工程)’에 대해선 분노를 감추지 목하고 있다. 막북공정은 몽골을 중국의 지방 제후국으로 간주하고 칭기스칸을 중국의 영웅으로 설정하는 ‘역사 분식 작업’이다.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변방 제후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기도하는 ’동북공정‘의 몽골 버전인 것이다. 몽골인들은 자칫하면 자랑스런 선조 칭기스칸의 역사를 빼앗기고, 몽골이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7월 몽골 대통령에 야당인 몽골민주당 칼트마 바툴가 후보가 당선됐다. 바툴가는 몽골 전통씨름인 ‘브흐’와 러시아 민족 격투기인 ‘삼보’ 선수 출신이다. 호텔과 테마파크, 식품 가공업을 운영하며 사업가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바툴가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반중국 정서에 힘입은 바 크다. 선거운동 도중 여당후보인 미예곰보 엥흐볼드 국회의장이 중국 혈통이라고 공격하고 5대 조상의 족보를 모두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까지 선두를 달리던 엥흐볼드의 인기가 바툴가의 이 공격에 급전직하로 꺾였다. 몽골인의 표심은 중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 마타도어 하나에 엥흐볼드에 대한 지지를 썰물처럼 철회한 것이다. 바툴가는 취임식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기울어진 외교 경제적 관계를 미국, 일본,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은 바툴가의 이런 반중국 행보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푸틴을 만나고 있는 바툴가 몽고 대통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2

베트남인들의 반중국 정서도 뿌리 깊다. 하노이에 있는 역사박물관을 가면 그 증거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기원전 3세기부터 19세기까지 모든 전람실에는 베트남인이 중국인에게 어떻게 항거하며 버텨왔는지에 관한 기록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말하자면 베트남의 2500년 역사는 항중(抗中)의 피눈물 나는 역사로 압축될 수 있는 것이다. 근세기 들어 수십 년 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고 그 바톤을 이어받은 미국과 싸웠던 역사는 베트남인에게 반 외세 항쟁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자신들의 주권을 늘 위협해왔고 또 위협하고 있는 세력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라고 베트남인들은 인식하고 있다.

하노이 하이바쩡 사원에는 2000여 년 전 중국의 침략을 물리친 전설적인 영웅 ‘쩡씨자매’ 상이 세워져 있다. 서기 1세기 한나라 광무제가 대군을 보내 백월지남(百越之南)을 평정했다. 당시 나라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미약했던 베트남인들은 한나라의 무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때 낙장의 두 딸 쩡치(征側)과 쩡이(征貳)가 군사를 일으킨다. 한나라 주둔군을 연이어 격파하고 65개성을 획득해 나라를 세웠다. 베트남 역사는 이를 이정기의(二征起義)라 부른다.

그러나 쩡 자매의 통치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광무제가 파견한 복파장군 마원(馬援)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쩡 자매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두 자매를 포로로 잡았다. 쩡 자매는 한나라의 신하될 것을 약속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마원의 회유를 일축, 죽음을 택했다. 기원 40년이었다. 하노이 하이바쩡 사원 뿐 아니라 호치민시티 등 베트남의 대도시 곳곳에 쩡 자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또 그들이 마원에 참수당한 음력 2월 26일 베트남 전국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호치민 시에 있는 쩡씨자매 상(구글 무료 이미지)

베트남에서 미군이 물러난 지 4년이 되던 1979년, 중국과 베트남 간 중월전쟁이 발발했다. 캄보디아에 마오이즘을 따르는 친중 정권 크메르 루지가 들어서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해 친 베트남 정권을 수립한 것이 계기였다. 중국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며 20만 대군을 보내 베트남의 북부 국경을 침공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해전술을 펼치면 사흘 안에 하노이를 점열할 것이라는 호언장담도 나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반미,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다져진 베트남은 중국이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중국 인민해방군은 개전초 24시간 동안 수백 대의 항공기와 전차, 2000여 명의 군사를 잃었다. 이에 비해, 베트남군은 840명의 병력을 잃었을 뿐이다. 중국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면 전략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꼬리를 말고 군사를 물렸다. 소련이 등뒤에서 “확전이 계속되면 소련군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철군의 명분을 제공했다.

몇 년전 베트남을 여행했을 때, 가이드는 베트남인들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나라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중국의 끊임없는 정복 야욕의 위협 속에 놓여있었다. 2500년 역사 중 1000여 년은 중국의 속방, 혹은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나머지 1500여 년은 그들의 침입을 물리친 자존감의 기간이다. 베트남의 역사는 항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인의 DNA 속엔 반중, 혐중 정서가 깊숙이 박혀있다.”

#3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여러 차례 평양을 다녀왔던 통일부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가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말 종편 TV에서 한 발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북한이 핵개발에 저렇게 몰두하는 이유에 관해 그는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평양 고위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왜 핵무기를 만드냐, 같은 민족을 핵으로 위협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고요. 그런데 대답이 뜻밖이었지요. ‘정 선생, 역사 공부를 좀 더 하셔야겠습니다.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에서 끊임없이 조선을 위협한 나라가 어디입네까. 그 위협을 물리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핵무기이지요. 같은 민족에게 사용하다니요. 말도 아닙네다.”

꼭 집어서 어디라고 말은 안했지만 그 위협은 중국임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고 통일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흔히들 북한과 중국은 혈맹으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경제적 의존도도 심대한 만큼 북한은 중국의 절대적 영향권 속에 놓여있는 국가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구 소련이 사회주의 맹주를 자처하는 시절, 북한은 중국과 소련 두 나라에 어느쪽도 기울지 않은 등거리 외교로 최대한의 전략적 이득을 챙겼다. 소베이트 연방의 해체에 따라 러시아의 입김이 약화되면서 북한이 가장 두려웠던 것은 중국의 압도적 영향권 아래 주변국 중 하나로 흡수되는 것이었다. 마침 그 즈음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한반도와 만주에서 명멸했던 고구려 등 우리 한민족의 나라를 모두 역사적 변방 정권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북한이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물론 그들로서 현실적 위협세력인 미국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핵무기 개발의 궁극적인 표적은 중국 위협으로부터의 탈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북한의 대 중국 자존감은 유별나다.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압력을 넣어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음에도 지금껏 그 효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은 북경의 ‘말빨’이 평양에 제대로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핵무기 포기를 시사하게 된 것은 중국의 외교적, 경제적 압력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제대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는게 옳다.

북한은 외국과의 외교 행사에서 의전을 엄격하게 따진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무시되거나 하대당하면 거의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인다. 중국이 서울엔 차관보급 대사를 파견하지만 평양엔 언제나 차관급 이상의 고위 당국자를 대사로 파견하는 것은 급이 낮은 외교관에겐 아그레망 주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2015년 현송월이 이끄는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 공연을 하루 앞두고 급거 철수한 것은 공연 내용에 관해 이유가 어떻든 중국 당국이 간섭하려 든 데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공연 파행으로 인한 외교적 타격,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북한은 자존감 지키기를 우선한 것이다.

#4

지난 1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사진 한 장이 한국민들의 심사를 뒤틀어 놓았다. 시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간 정 실장 일행을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고 그 맞은 편에 양제스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앉힌 뒤 자신은 중앙에 앉은 것이다. 마치 황제가 주변 제후국 신하의 알현을 받는 모습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을 자신과 나란한 의자에 앉힌 뒤 고개를 숙여 정 실장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일본 아베 총리도 동급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형식으로 한국 대통령의 특사를 예우했다.

시 주석은 작년 6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특사로 파견된 이해찬 전 총리를 맞이하는 과정에서도 이번과 똑같은 외교적 결례를 범한 바 있다. 게다가 그는 작년초 방미때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는 과정에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방이라고 말해 파문을 불러일으킨 적 있다. 물론 나중에 ‘속방’ 발언은 잘못 번역된 것이라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긁어놓기에는 충분했다. 더욱이 중국은 작년 말 방문한 문 대통령을 맞이하는 과정에서도 바로 직전 트럼프에 대한 황제급 환대와 현격하게 차이나는 푸대접으로 한국인들의 빈축을 산 바 있다.

시진핑(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의전은 외교의 알파부터 오메가라는 말이 있다. 의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이다. 의전 하나 잘 하면 적이 될 것을 친구로 돌릴 수 있고, 의전 하나 잘못되면 친구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외교부가 의전팀을 어느 부서보다도 가장 수석 부서로 올려 놓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잇단 의전 소홀이 실수인지, 고의적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깔보기’, ‘내려다보기’가 굳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 대통령 말대로 한반도 평화의 정착을 위한 이번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베이징 당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역시 심대하다. 거리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간 한나라 장수 한신처럼 중국의 그런 무례를 견뎌내는 인내심도 지금 당장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듭되는 외교적 결례에 대해 공개적은 아니더라도 막후에서라도 따끔한 항의는 해두는 게 옳지 않나 싶다.

국가적 자존감을 갖는 것이 꼭 국력의 세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 바로 아래 티베트 산악지역에 있는 인구 60만의 소국 부탄은 지난해 말 자국의 영토 도클람에 군사도로를 만들려는 중국의 일방적 시도를,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과감하게 물리쳤다. 동맹국 인도의 협조를 얻어서였다. 국민들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지만 중국의 100억 달러 지원 제안을 거절한 것도 국민과 함께 안빈자족하는 이 나라 국왕이었다.

얼마전 헌법까지 뜯어고쳐 종신집권의 길을 연 ‘시(習) 황제’의 주변국 후려치기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고민해야할 지점이 아닌가 싶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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