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그러나 뜻밖에도 가슴이 먹먹한 영화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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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그러나 뜻밖에도 가슴이 먹먹한 영화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 박지현
  • 부산시 북구 박지현
  • 승인 2018.03.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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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일본 영화를 자주 본다. 그중에서도 잔잔히 흘러가는, 그저 큰 사건 없이도 자연스럽게 끝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진 나는 주저 없이 일본 영화를 찾았고, 포스터에서부터 ‘나 잔잔한 영화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는 방송국 PD ‘카나미’(고바야시 사토미)가 함께 살던 반려견 ‘나츠’를 병으로 떠나보내면서 시작된다. 반려견이 죽은 후 카나미는 영화감독인 ‘시부야’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개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네가 20년 동안 찍어온 영상이라는 언어로 개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 돼”라는 조언을 듣는다. 이를 계기로 카나미는 영화를 찍기 시작하고, 그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모습들을 중심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개 이미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지만 주인공인 카나미가 카메라 렌즈로 담는 모습들은 단지 영화 속의 허구만이라곤 볼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없어져야 할 동물들, 무차별적인 개공장에서 사람들의 돈벌이 수단이 된 개들, 동일본 대지진으로 주인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유기동물들 등... 극이 진행될수록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는 동물 학대라는 현실의 모습을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나 개는 각 지역에 있는 동물 애호센터가 안락사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 동물 애호센터에서의 수용 기간인 일주일 동안 새로운 주인이나 기존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보호하고 있는 동물들은 안락사된다. 그렇게 강제로 목숨을 잃는 동물들의 수는 1년 동안 16만 마리 정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치바현 동물애호센터에선 동물보호단체 '치바왕'의 회원들이 이 많은 생명 중 한 마리라도 더 구하기 위해 동물 한 마리, 한 마리를 자세히 살펴보며 입양 가능성이 보이는 동물을 인터넷 카페에 올려 새로운 주인을 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지역인 히로시마에는 동물을 정말 사랑해서, 안락사 대상의 개와 고양이들을 모두 맡고 있는 부모 잃은 개고양이 구조대가 있다. 이분들은 개공장에서 버려진 개들과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를 둘러대며 버린 개와 고양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구조대 대표인 ‘무로이’ 씨는 개공장에 있던 개를 쓰다듬으며 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감정을 갖고 있어 봤자 좋은 게 없으니까요”라고 담담히 말하는 모습에선 오히려 내가 담담하지 못하고 화가 났다. 일부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비윤리적 가치관을 동물에게 강요하는 걸까. 결국 피해자는 말 못하는 남겨진 동물이다.

구조대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 피난지역으로 가서 주인들이 두고 간 동물들을 구조하고 다녔다. 우리는 자연재해가 일어난 후 피난소로 대피한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봤지만, 그 자리에 여전히 남겨진 동물들의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선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느껴져서 한숨 소리가 절로 나왔다. 외로이 줄에 묶여 굶어 죽을 것 같은 강아지, 주는 여물이 없어 이미 죽은 소들... 그들은 끝까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 카나미는 영화를 찍으면서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하고, 좀 더 동물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할 수 있다, 못 한다’가 아니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깨달았다”는 그녀의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1시간 40분 정도 되는 상영시간 동안 영화가 보여준 모습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실제 한국의 유실·유기동물 수는 해마다 증가했고, 지난해인 2017년에는 10만 715마리를 기록했다고 한다. 개는 주인을 고를 수 없다. 그리고 개가 어떤 삶을 보낼지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로 결정된다. 영화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의 제목처럼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따금 처음 반려동물을 만났던 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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