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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기의 죽음과 ‘미투’ 2차 피해...안희정 몰락은 ‘오만 증후군’ 탓

기사승인 2018.03.13  21: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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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폭로 여파로 배우 조민기가 목숨을 끊자, 보란 듯이 엉뚱한 동정론이 고개를 든다. “죽어서 속이 시원하냐”는 힐난은 물론 “미투가 사람 죽였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도 나온다. 미투 2차 피해가 현실화한 것이다.

지난 주 조민기가 숨진 날 횟집에서 모임을 했다. 음식을 나르던 한 아주머니가 대뜸 말했다. “나는 한 남자의 앞길을 망치는 미투에는 반대해요.”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조민기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피해자가 하루 아침에 ‘가해자의 인생을 망친’ 또 다른 가해자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남성 손님들을 배려한 얘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듣기가 민망했다.

조민기의 죽음은 그 자체로 비극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고 죽음으로 도피했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를 잃은 유가족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세월을 겪어야 할 터이다.

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쪽은 피해자와 그 가족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 씨가 변호인단을 통해 공개한 자필 편지는 2차 피해의 실상을 보여준다. 자신의 가족에 관한 허위 정보는 만들지도 유통하지 말아달라는 그의 호소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망각에 익숙한 대중은 누가 가해자였고 누가 피해자였는지 금세 잊어버린다.

미투 운동 해시테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리는 ‘미투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미투 이후’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권력이 예사로 다뤘던 젠더 폭력을 더는 용인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남녀가 함께 하는 회식 자리를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과 아예 말을 섞지 않으면 된다는 극단적 대응법은 성차별과 여성혐오만 부추길 뿐이다.

무엇보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안희정 전 지사의 몰락을 보면서 ‘권력이 뇌를 망친다’는 말이 떠오른다. 굳이 권력이랄 것도 없다.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 우월주의와 결별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오만 증후군’은 장기간 견제받지 않은 권력자에게 생기기 쉬운 장애를 일컫는다. 2009년 오웬과 조나단 데이비슨이 브레인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 용어를 소개했다. 이 증후군이 드러내는 의학적 증상에는 타인에 대한 노골적 경멸이나 지극히 낮은 수준의 현실감각, 무모한 행동 등이 있다. 전도유망했던 안 전 지사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설명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실락원>에 나오는 사탄 이미지. 오만의 극치로 묘사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캐나다 맥매스터대학의 신경과학과 수크빈더 오비 교수는 권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권력자와 일반인의 뇌에 자기장을 공급했더니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됐다. 권력자는 신경회로의 ‘미러링(mirroring)’ 기능이 제역할 못했던 거다. 미러링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심리를 추정하는 능력,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감 능력에 해당한다.

2006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권력과 공감능력에 관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들을 두 부류로 나눠 한쪽은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다른 쪽은 명령을 받았던 경험을 각각 떠올리게 했다. 그런 뒤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이마에 ‘E’자를 그려보라고 했다. 실험 결과, 권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른 쪽에 비해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상대가 아닌 자기 쪽에서 글자가 보이게 ‘E’를 거꾸로 쓴 것이다. 권력을 가질수록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이 실험의 결론이다. “권력은 공감 능력을 죽이는 종양과 같다”고 했던 헨리 애덤스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성추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한국의 술자리 문화도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2년 전 대만으로 가족여행 떠났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나라의 밤 문화였다. 한국과는 달리 젊은이들이 주로 술 대신 쥬스를 즐겼다. 타이베이 시 뒷골목을 거닐며 겨우 맥주도 함께 파는 곳을 찾았으나 주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우유 빛 ‘밀크 쥬스’ 한 잔 씩 시켜 놓고 시간을 보냈다.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한국의 밤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 타이베이의 밤이 낯설기만 했다.

술자리에서 이성(理性)과 절제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 여성들은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한 후배는 직장에서 회식할 때 ‘대각선의 원칙’을 지킨다고 한다. 여직원의 맞은편이나 옆자리를 피해 대각선 위치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자신은 믿어도 술은 믿을 수 없다는 논리다. 미투 시대에 과음을 부추기는 술 문화 역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미투 운동은 중단해서도, 중단될 수도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나치 대학살의 생존자인 유대계 작가 엘리 비젤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유일한 힘은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라고 역설했다. 권력에 취하면 성범죄 또한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미투가 가르쳐 준다.

편집위원 이처문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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