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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뭐가 뭔지 알아야 화도 제대로 낸다

기사승인 2018.03.02  22: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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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언론의 역기능 중에는 마취효과(narcotization)라는 게 있다. 같은 종류의 뉴스를 반복해서 들으면, 그 뉴스가 그 뉴스 같아서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일종의 유사 뉴스에 무감각, 무관심해지고 타성에 빠진다는 효과다. 해상 사고, 지진, 화재, 하다못해 북한의 핵 위협도 자주 들으면 시큰둥해지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최근의 연이은 성폭력 미투 운동 뉴스가 우리를 미디어의 마취효과에 딱 걸리게 만들었다. 안태근, 고은, 이윤택, 조재현, 조민기, 카톨릭 신부 등 ‘괴물급'들이 날마다 등장하니, 요새 사람들은 ‘좀 더 화끈한’ 성폭력 형태가 나오든지, 아니면 장관, 국회의원, 재벌 등 ‘미운 고위층 인사’가 미투 운동에 걸리기를 바랄 지경이다.

서지현 검사 성추행 의혹 사건의 중심에 선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2월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사람들의 뉴스 마취효과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도가 센 성폭력 뉴스가 터지면서, 요새 미디어는 '다행히' 뉴스 특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탄핵, 적폐청산, 올림픽 뉴스에 이어 성폭력 뉴스가 뉴스를 외면하던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가 유명할수록 사람들은 뉴스를 더 소비한다. 언론사의 광고 수입도 짭짤해졌다. 그런 사이에 언론들은 미투 운동의 본질은 제쳐두고 성폭력 수법을 야하게 묘사하거나 관련 인사의 엽기성을 과장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일찍이 미국의 원로 미디어 학자 존 메릴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언론이 굶주린 상어 떼가 먹잇감을 향하듯 돌진한다.

먹이를 찾는 상어떼(사지니 구글 무료 이미지)

그렇다고 해도, 한국 언론이 성폭력 뉴스를 흥미 위주로 난도질하면 안 된다. 1993년 서울대 한 실험실에서 일하는 여자 조교가 이 실험실 책임자 교수에게 난처한 ‘신체 접촉’과 부적절한 ‘성적 언동’에 의한 고통을 당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6년간의 법정 공방으로 비화했고, 1998년 대법원의 교수 성희롱 인정으로 종결됐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민사재판이었다. 나는 비교적 이 사건을 잘 안다. 내 지인 중 한 분이 지근거리에서 이 사건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내 지인은 이 사건의 여러 문제점 중 특히 언론 문제를 언론학자인 나에게 지적한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초기에 이 사건이 조교와 교수라는 사제 간에 벌어진 추태로 알았다.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국립대학은 직제 상 실험실 직원을 조교라 부른다. 피해자 여성도 그냥 계약직 실험실 직원이었을 뿐 대학원생도 아니고 서울대 출신도 아니었다. 그냥 직장 상하관계였는데도 언론이 이를 마치 사제지간으로 드라마틱하게 보도한 게 사실이었다.

최근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성폭력 관련 용어도 문제다.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이란 단어를 마구 섞어서 써도 되는지 어지럽기 짝이 없다. 범죄 행위가 특정되고 구분되도록, 언론이 용어를 정제해서 사용해야 독자들의 판단도 정확해진다.

‘성폭력’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대표 용어다. 이는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지는,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가해 행위’를 일컫는 가장 큰 개념이다. 영어로는 ‘sexual violence’가 가장 근접한 번역어로 생각된다. 성폭력은 1994년에 제정된 소위 ‘성폭력특별법’에 명시적으로 정의된 용어다. 이것은 음란한 언행, 음화 제조, 공연 음란, 음란 전화, 성기 노출, 성추행, 성매매, 강간 등 모든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성적 행위를 총망라한다. 무슨 성적 일탈 행위든 ‘성폭력’이라고 칭하면 맞다. 대표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직장 내 성폭력 행위를 가리킨다.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 ‘남녀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용어로 업무와 관련해서 성적 언어와 행동으로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고용 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영어로는 ‘sexual harrassment’라고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종류의 성희롱이 있다. 첫째는 신체적 성희롱으로 강제적 신체 접촉(껴안기, 입맞춤, 만지기 등), 회식 시 옆자리 착석 강요, 술 따르기 종용 등이며, ‘음란한 눈빛’은 입법 과정에서 빠졌다고 한다. 아마도 시선까지 범죄화하기가 어려웠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둘째는 언어적 성희롱으로 여기에는 음담패설, 외모 평가 발언, 음란 전화 등이 속한다. 세 번째는 시각적 성희롱으로 음란 사진 보여주기, 음란물 보내기, 신체 노출 행위 등을 가리킨다.

‘신체적 성희롱’ 중에서 특히 성욕을 위해 폭행하거나 협박해서 강제 추행하는 행위인 키스와 상대의 가슴, 엉덩이, 성기 만지기 등은 ‘성추행’이라고 한다. 공격성이 강조되므로 ‘sexual assault’란 영어가 적절하다. 성추행은 형법 298조에 의거해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성추행은 확실한 성범죄다.

‘성폭행’은 강간과 강간미수를 말한다. 영어로는 ‘rape’이다. 성폭행은 폭행과 협박을 가해 갖는 성교 행위를 가리킨다. 성폭행범은 형법 297조에 의거해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아야 한다.

직장 내에서 성을 매개로 벌어지는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 부당 행위는 모두 성희롱이며, 성희롱이 지나쳐 강제로 육체적 접촉을 시도하면 성추행이 되고, 성추행을 넘어서 강제로 성행위를 하면 성폭행이 된다. 그리고 이런 직장 내 성범죄를 포함해서 공연 음란, 음화 제조 등 사회 전체의 성범죄를 총칭하는 게 성폭력이다. 이런 정도의 정의를 언론이 숙지한다면, 이제까지 발표된 성폭력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 중 누구의 어떤 행동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에 하나나 둘, 혹은 모두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연일 계속되는 성폭력 뉴스 중 언론이 빠트린 것이 일반인들의 성폭력 피해 상황이다. 검찰, 문화예술계, 종교계, 대학가, 연예계, 정계 등으로 미투 운동이 번지는 이유는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저명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그러나 크고 작은 기업체, 소규모 매장과 업소, 기타 사람이 상시적으로 모여 있는 단체나 집단에서 해고와 집단 따돌림이라는 극단적 결과를 두려워한 나머지, 각종 성폭력에 신음하면서도 숨죽이고 사는 일반인 피해자들이 곳곳에 많이 있을 것이다.

일반인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필요하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직원 수십 명의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가 자기 회사 여직원들의 바지 착용을 금지했다는 말을 사석에서 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취향이냐고 같이 있던 다른 친구들이 비난했지만, 그 친구는 자기 회사니까 자기 맘이라고 했다. 그 회사의 분위기가 최근에 많이 걱정된다. 성폭력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에 대해 일반인들은 약자고 대항할 무기도 부족하다. 일반인 성폭력 뉴스는 언론으로서는 뉴스가치가 낮고 상품가치도 떨어진다. 그럴수록 언론은 보통사람 성폭력 뉴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미투 운동은 동양권에서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전여옥 씨가 일본 특파원 기자 시절에서 겪은 일을 적은 <일본은 없다>는 책에는 일본 신문사 남녀 기자들과 함께 맥주집에 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자리에서 일본 남자 기자들은 일본 여기자들에게 술집 여자로 여기는지 맥주를 따라달라고 요구했으며, 일본 여기자들은 이에 순순히 응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한 일본 남자 기자는 전여옥 씨에게 “너도 여자니까 나에게 맥주를 따르라”고 망발을 했다는 대목이 있다. 아직도 일본 기자 사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날 리는 만무할 것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에는 한 번 들어 가면 출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미로형 시장인 ‘바자’가 있는데, 한 시간 이상 그 시장을 비집고 다녀도 여자 상점 종업원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개방적인 이슬람 국가라는 터키가 그 정도이니, 조선 여성의 성공 신화를 그린 <대장금>이 이슬람권 안방에서 특히 크게 인기를 끈 이유가 짐작이 간다.

재직 중인 대학에서 국제교류 책임자로 있을 때, 나는 베트남에 가서 한국인 기업가들과 우리 대학생들의 해외 취업을 부탁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한인 기업가에게 다른 참석자들이 “요새도 퇴근하면 부인이 발 씻어 주나?” 하고 물었더니, 당사자는 피식 웃으며 직답을 피했다.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꺼려지지만 긍정한다는 뜻인 듯했다.

이런 아시아의 남성 중심 문화 속에서 한국의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가 그래로 역동적이며 진취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했으니, 특히 언론이 잘 대처해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양성이 평등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원로 연기인 이순재 씨가 방송에 출연해서 “상대방을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내 제자다, 수하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번 일은 우리 전체에게 좋은 반성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서 박수를 받고 있다. 한국 남자들에게 무게 있는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성폭력은 인격의 문제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야 각자의 인격도 존중받는다. 인향만리(人香萬里)란 말이 있다. 인격의 향기가 만 리를 퍼지게 살도록 노력하자.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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