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화 중매론’ 등장... 따귀 석 대 피하려면 빈틈없이 중매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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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 중매론’ 등장... 따귀 석 대 피하려면 빈틈없이 중매에 나서라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8.03.0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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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요즘은 자유연애를 통한 결혼이 보통이지만, 과거에는 중매결혼이 대세였다. 혼기에 이른 남자나 여자가 중매를 통해 선을 본 뒤 서로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결혼하는 방식이다. 필자 세대만 해도 주위 친구들 열 명 중 예닐곱 명 정도가 이런 중매결혼을 했다. 매파(媒婆), 즉 중매 아주머니를 통해 평생을 함께할 운명적인 짝을 만난 것이다. 어떤 친구는 첫 선에 배필을 찾아 골인한 반면, 일부는 마음에 드는 짝을 못 찾아 백 번 넘게 선을 본 친구도 있다. 중매 아주머니는 양측의 학력, 경력, 재력 등을 보고 적당하고 어울린다고 판단되는 짝을 소개한다. 결혼을 성사시킬 경우 짭짤한 중매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당시 검사, 판사, 의사, 박사 등 이른바 ‘사’자 신랑감을 재력가 집안 사위로 들어앉혀 줄 경우 지금으로 치면 거의 억대에 가까운 성공 보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 유교질서 속 남녀 자유연애가 용인되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대부분 중매에 의해 이뤄졌다. 일부 상인(常人)이나 머슴 등이 저잣거리에서 아녀자와 눈이 맞아 신부로 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양반 자녀들은 중매혼을 해야했다. 때때로 자신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부모들 의사에 따라 강제적으로 배필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런 정략 결혼의 경우 양가 부모들이 서로 아는 사이로 의기가 투합해 사돈 맺기를 합의하더라도 혼사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매인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됐다. 일반 가정의 예법을 정한 주자의 ‘가례(家禮)’에 “필히 중매인을 넣어라”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매혼의 풍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뿌리 깊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결혼 정보회사’란 이름으로 기업화되어 있지만 결혼 적령기의 남녀를 조건에 맞춰 맺어준다는 점에서 그 기능과 행태는 과거 중매쟁이들과 마찬가지다. 몇몇 결혼 정보회사는 수천 명의 에비 신랑신부 데이터를 확보하고 조건에 따라 그룹화한 뒤 같은 그룹끼리 짝맞추기 서비스를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혼이 보편화된 요즘엔 재혼 희망자 짝맞추기 서비스도 성업 중이라고 한다. 10여년 전 선구적으로 결혼 정보회사를 만들어 그동안 수천 쌍의 부부를 탄생시켰다는 한 지인은 “중매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면서 “중매의 원칙은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 셋째도 신뢰”라고 말한다.

데이트하는 남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중매 풍습은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볼 때 서양에서는 젊은 남녀가 파티 등을 통해 만나고 자유연애를 통해 짝을 찾는 것이 보통인 것 같지만 중매혼을 적극 권장하는 민족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민족이 유대인들이다. 유대교 랍비에 의해 정해진 중매인을 ‘샤드칸’이라 부른다. 샤드칸은 유력 집안의 자녀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곁에서 유심히 관찰한 뒤 결혼 적령기가 되면 알맞은 조건의 신랑신부를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한다. 그들에게 중매는 신성한 신앙 행위의 하나다. 금전적 댓가를 바라고 이른바 뚜쟁이 노릇을 하는 일반 중매쟁이와는 다른 것이다.

인도 힌두교도들도 중매혼을 권장하는데 젊은 남녀의 짝을 맺어주는 중매인들이 모두 점성술사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은 별들의 흐름을 보고 혼례 대상자 남녀의 별자리 운명을 따진 뒤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결혼을 성사시킨다. 여기서 중매인의 권유를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짝을 선택할 경우 나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인식을 인도인들은 갖고 있었다. 특히 카스트 위계질서의 상위권에 있는 브라만, 크샤트라 계급의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중매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현대에 들어와 이같은 인식은 많이 변했다. 자유연애, 자유결혼이 대세가 되고 있다.

중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 남녀의 결혼을 중개하는 중매인은 통상 ‘월하노인(月下老人)’으로 불린다. 오래된 전설에 따른 것이다.

당나라 태종때 위고(韋固)라는 총각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생을 하느라 장가를 못갔다. 어느날 여관에 묵었는데 신부감을 찾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은 한 손님이 지방 유력자의 딸을 소개시켜주겠다면서 다음날 아침에 용흥사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위고는 뛸 듯이 기뻐하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아직 지지 않은 달빛 아래 한 노인이 책을 뒤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위고가 어깨 너머로 보니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어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명부(冥府, 저승)의 책이네. 천하 사람들의 혼보(婚譜, 결혼 운명)이 적혀있다네.” 위고는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고 신부감을 살펴봐달라고 요청하자 시장으로 데려가 “자네의 아내는 이제 세 살밖에 안먹었다네” 하면서 채소를 파는 장님 할미의 손녀를 가리켰다. 위고가 실망하여 사람을 시켜 그 아이를 해쳤는데 세월이 흐른 뒤 위고가 막상 결혼을 하게되자 그 신부가 14년 전 바로 그 아이였다는 것을 깨닫고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스토리다. <속유괴록(續幽怪錄)>에 나오는데, 혼인을 관장하는 그 노인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달빛 아래 노인, 즉 ‘월하노인’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설화에 따르면, 모든 남녀는 자신의 짝과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월하노인의 주선에 의해 그 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월하노인 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월하노인 외에 ‘빙상인(氷上人)’이란 말도 있다. 진서(晉書)에 나오는 설화인데 월하노인과 합쳐 중매쟁이를 ‘월하빙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진나라에 천문지리와 꿈 해몽에 능한 색담(索?)이란 점쟁이가 있었다. 어느날 영호책(令狐策)이란 사람이 얼음 위에 서서 얼음 아래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꿈을 꿨다. 색담이 해몽을 해줬다. “얼음 위는 양(陽)이며 얼음 아래는 음(陰)이므로 이는 음양의 일입니다. 즉 혼인대사를 말하지요. 당신이 얼음 위에서 얼음 아래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으니 양이 되어 음과 얘기를 한 것으로, 중매를 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중매를 하게 되는데 얼음이 풀릴 무렵 성사될 것입니다.” 영호책이 말했다. “나는 나이가 팔순이 넘은 늙은이라 중매를 할 수 없다네.” 그러나 얼마 후 고을 태수가 자기 아들과 마을 사람 장(張) 씨의 딸 사이에 중매를 서 달라고 요청이 왔고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어 중매에 나섰는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봄이 되자마자 혼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 빙상인의 고사가 나오는 고서에는 결혼에 관한 유명한 경구가 담겨있다. "사여귀처(士如歸妻), 태빙미반(?氷未泮)", 즉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려면 얼음이 풀리기 전에 해야한다”는 뜻이다.

김영철 통전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2박 3일 방남 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뒤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우리 정부의 ‘북미 대화 역할론’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중매를 서는 입장”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평양과 워싱턴 간 대화를 중개하면서 각자의 상호 조건을 타진한 뒤 상대방에게 다시 설명해나가는 과정이 마치 중매 행위와 비슷하다는 뜻일 게다.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듯싶다.

원래 중매는 잘 되면 쌀이 서말이요, 잘 못되면 따귀 세대라는 말이 있다. 우리 정부가 어차피 북미 대화의 중매인을 자처하고 나섰다면 세부 사항을 꼼꼼히 따져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이다. 잘 못 되면 뺨 세 대 정도가 아니라 한반도 긴장이 다시 높아져 온 나라가 위청거릴 수도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보수진영에선 청와대의 중매론에 대해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미국과 손잡고 북한을 압박, 비핵화를 이끌어 할 판에 한가롭게 중간에 서서 중매는 무슨 중매냐”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용어야 어떻든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이끌어내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의 분위기를 확립해야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당면한 과제다. 중매든, 중개든 빈틈없이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앞서 거론한 월하빙인의 원칙이 북미 중매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 싶다. “혼사를 성립시키려면 얼음이 풀리기 전에 해야한다.” 내용적으로도, 시기적으로도 본격 봄이 오기 전에 북미간 탐색 대화가 성사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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