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차례를 안 지낸다고?...요동치는 명절 풍속도
상태바
설날에 차례를 안 지낸다고?...요동치는 명절 풍속도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8.02.16 23:28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명절 연휴 저녁, 한 TV 프로에서 여러 명의 패널이 명절의 추억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중년 여성 참석자가 결혼 후 오랜 동안 명절에 친정에 가지 못하거나, 명절 전이나 후에야 가까스로 친정을 방문하게 되는 설움을 눈물로 토로했다. 여기서 참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날 참석자 중 모든 여자들은 이 말을 들으며 나이 불문하고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렸고, 대조적으로 남자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단 한 명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장면은 명절이 한국 남녀의 문화적 인식 차이의 중요한 원인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즐거운 명절”이란 말은 이미 죽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명절 전후의 풍경은 고행 그 자체다. 명절에는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된다. 온가족이 모이고 차례를 준비한다. 10명, 혹은 30명이 넘는 가족 친지들이 3-4일간 먹고 마시는 일이 벌어지니, 명절 연휴는 여성들의 ‘노동 쏠림’ 희생으로 연명된다.

그래서 명절 후에는 우울증, 관절염 환자가 장마철보다 더 심하게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명절에 나타난 고부갈등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B급 며느리>란 영화도 등장했다. 눈속임용 가짜 팔 부상 깁스 모형도 인터넷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빨간 입술 색을 없애 최대한 아파 보이게 만드는 립스틱도 인기라고 한다. 결혼 전인데도 예비 시어머니가 명절 준비를 핑계로 호출해서 군기를 잡으려 하고, 예비 며느리는 친정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의 애처로움마저 날리고 눈물짓는 경우도 있다는 시빅뉴스의 보도도 있었다.

설연휴를 하루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승강장에서 귀성객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사진: 더 팩트 문병희 기자, 더 팩트 제공).

이때, 남편이 중간에서 눈치 없이 행동했다간 대판 싸움으로 번진다. 남자가 배우자에게 효도를 떠넘기면 ‘스튜핏’이다. 직장인 사이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성인 3인 중 1명이 명절 때 가족과 다툰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중 미혼자는 부모와, 기혼자는 배우자와 다툰 경험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난해 추석 연휴 동안 112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평소의 2배 이상이었다는 통계도 있다. 명절 때 싸움의 강도가 세다는 얘기다. 명절 직후에는 이혼 신청도 증가한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설날과 추석 전후 기간에 접수된 이혼신청서는 하루 평균 577건이며, 이는 1년간 하루 평균 이혼 신청 건수 298건의 2배다. 말이 필요 없이, 명절은 어느 언론의 표현처럼 “이혼 지뢰밭”이다.

‘시월드’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시어머니들은 명절 후 자녀들이 왔다가 간 후 빈둥지 증후군에 시달린다. 요즘 명절에 특히 예민하다는 며느리 눈치 보느라 일도 못시키고 며느리 하는 일이 맘에 안 들어도 혼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시어머니도 울화가 치미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 한 언론은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제목으로 시어머니의 신세타령을 기사화했다.

젊은이들도 나름 힘든 이유가 있다. 취업 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명절 스트레스 1위는 부모 용돈, 윗분들 선물비에 따른 돈이고, 2위는 승진, 취직, 결혼 등을 묻는 어른들의 잔소리와 참견이었다. 최근에는 명절마다 직장 상사, 거래처, 은사들에게 보내는 새해 인사 문자 메시지까지 스트레스로 떠올랐다. 직장 상사들에게 같은 문자를 보내면 "이거 복붙(복사+붙여넣기)이지?“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라고 한다. 귀성길 교통 정체와 장시간 운전에 따른 교통사고도 스트레스 지수를 한층 더 높인다.

아예 고향 행을 포기하고 일부 젊은이들은 해외로 가거나 특정 장소로 대피하는 경향도 생겼다. 한 대형 어학원은 ‘명절대피소’를 운영한다. 이 어학원은 고향에 안 가는 젊은이들에게 학원에서 어학 집중 강습 프로그램, 스터디 룸, 심지어 간식도 제공한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치닫자, 드디어 명절 풍속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부 젊은 시어머니들이 ‘명절 스트레스’를 며느리에게 물려주지 말자고 팔을 걷어붙였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기제사를 지내는 마당에 명절마다 또 조상에게 내내 제사와 형식이 유사한 ‘차례’를 지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절에는 부모와 자식들 각자 쉬고, 대신 명절 연휴 한두 주 앞서서 모여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나 같이 하자고 자식들에게 먼저 제안한단다. 반대할 자식이 없을 것이다. 명절이 여자 학대이고 남자의 여자에 대한 가부장적 갑질이라는 인식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설날 차례를 절에서 불교식 합동 차례로 대신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조계사는 이번 설날에 3회 합동 차례를 지낼 예정이고, 봉은사는 1000가구의 합동 차례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간단한 추모 예배로 차례를 대체하고 있다.

제삿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차례를 지낸다 해도, 차롓상이나 명절 기간 동안 가족이 먹을 음식을 전량 주문에 의존해서 가사 노동을 없앤 집들도 늘고 있다. 한 주문음식업체는 2014년 추석 매출이 65억 원이던 게 2016년 설에는 100억 원, 추석에는 138억 원, 그리고 2017년 설과 추석에는 모두 약 1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러다간 명절 차례 자체가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세대가 흐를수록 젊은이들은 저출산으로 가족 간의 유대감을 잊고 명절도 휴일 중 하나처럼 의미를 축소시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장례나 제사 문화는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 왔다. 어느 게 옳은지 절대적인 원칙이 없다. 삼국시대에는 순장(殉葬, 지배층이 죽었을 때 종이나 첩 등 산 사람을 같이 묻는 장례법)이 유행해서 부여국에서는 100명까지 순장한 무덤 유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순장의 비인간적 속성이 인식되면서 곧 금지됐다. 고려시대에는 매달 명절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설날, 한식, 단오, 추석 4회로 축소되었다가, 지금은 설날과 추석으로 이원화됐다.

<오희문 일기>란 옛 개인 일기에는 1598년 한 해에 25회의 제사를 지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시대마다 변했다. 원래는 산소에서 제사를 지냈으나, 조선시대부터는 집안에 사당(가묘)을 짓고 집에서 지냈다. 집안의 사당에는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가 있어서 신주를 놓고 제사를 지냈으며, 신주가 곧 조상이라 믿어서 “신주 모시듯”이란 속담이 생길 정도로 조선 사람들은 신주를 목숨처럼 모셨다. 요새는 신주가 지방으로 대부분 대체됐다.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조율시이(棗栗柿梨)도 모두 중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우리가 따를 이유가 희박하다. 제삿상에 고인이 좋아하던 피자를 올리는 집도 생겼다.  

원래 상복 입는 기간을 뜻하는 3년상은 부모의 품안에서 자란 유아 기간인 음력 27개월 간 돌아가신 부모의 고마움을 기린다는 의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27일로 편법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를 역월(易月) 제도라고 한다. 중국은 한 나라 때부터 역월 제도로 27일상을 지냈다고 한다. 요새는 불교식 49재가 기준이 되어 49일상을 대부분 치른다. 그런데 중국의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부모 3년상을 섬기는 것을 긍지로 여겼고, 부모 묘 옆에서 3년 간 움막을 짓고 사는 시묘살이도 등장했다. 그러나 노비에게 시묘살이를 대행시키는 등 조선시대 내내 편법이 성행했다고 한다.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제사 안 지내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충격을 받은 유교 사회 조선 조정이 천주교 박해를 시작했다. 이를 보고 미국의 한 중국 전문가는 “한국 사람은 중국 사람보다 더 중국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이 중국보다 유교 문화의 영향을 더 받았다는 말이다. 중국은 유교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거대한 국토 전체를 통제하기 어려웠고, 공산 정권 시절에 당국이 유교 배척 운동을 벌인 것도 유교적 전통이 중국에서 약해진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 들여 수백 년을 통치했다. 중문학자 김경일 교수의 2001년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유교 문화 비판서가 새삼 생각난다.

문화는 변하기 어려운 핵심문화(core culture)와 변하기 쉬운 주변문화(periphery culture)로 나뉜다. 재혼 금지나 ‘남녀칠세부동석’은 과거에는 핵심문화였지만 주변문화로 밀리더니 지금은 아예 소멸됐다. 제사는 오랜 기간 동안 핵심문화였지만, 드디어 주변문화의 영역으로 밀리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는 모든 문화는 시대적 산물이고 지리적 소산이라고 했다. 시간이 변하면 전통도 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역사가 증명한다는 말이다. 다만, 고통스런 귀성길을 마다 않고 명절마다 전 국토를 교통 정체로 몰아넣는 민족의 대이동이 여전한 것을 보면, 차례와 제사처럼 오래된 전통은 무언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면도 있을 것이다. 제사와 차례가 격량의 문화 변동 속에서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판국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간직할 고유의 정체성은 그 안에서 잘 선별해야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8-02-19 02:07:10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 국민청원> 며느리 학대금지법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38442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 국민청원> 명절을 없애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38708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 국민청원> 제사를 법적으로 금지시켜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39270
여기에서 청원을 동의할 수 있습니다.
적폐를 없애버립시다.
제사에는 조상 귀신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잡귀신이 꼬일

2018-02-17 23:56:19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 국민청원
며느리 학대금지법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 국민청원
명절을 없애주세요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 국민청원
제사를 법적으로 금지시켜주세요.

macmaca 2018-02-17 12:20:23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 44조 제2항 및 제 71조 제 3호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세계사의 正史 개념으로 보면, 제자백가이후,漢나라때 국교로 성립된 유교는,이후 동아시아의 주요이념으로 세계종교화.

http://blog.daum.net/macmaca/2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