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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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 편집위원 장동범
  • 승인 2014.06.0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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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전달방식 중에 만화만큼 전 세대를 아우르는 표현 장르는 드물 것이다. 문자가 이성적이라면 그림은 감성적인 표현으로써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부터 의사 전달 수단으로 동굴벽화인 그림이 등장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글눈이 트인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입학한 60년대부터 주로 즐겨 봤던 만화로는 박기당의 <에밀레종>, 김종래의 <앵무새왕자>, 그리고 김산호의 <라이파이> 연작 시리즈를 들 수 있다. 특히 라이파이 연작 시리즈물은 만화가 나오자마자 먼저 보려는 또래 친구들이 줄지어서 기다리는 바람에 만화방 주인이 만화책을 2등분, 4등분으로 쪼개 보게 할 정도로 인기였다.

라이파이 시리즈 만화가 당시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사람 얼굴 모양을 한 태백산 바위기지에서 출동한 로켓 추진 방식의 ‘제비기’에서 외줄을 타고 내려오는 주인공 라이파이의 역동적인 모습과 악당을 무찌르는 데 사용하는 무기들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허리에 찬 무선 호출기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무기 유도창, 구름을 타고 해골막대기를 갖고 다니는 악녀 녹의여왕과의 대결, 하늘을 수놓는 우주함대 등 요즘 ‘스타워즈’급 SF 영화와 진배없는 캐릭터들과 각종 무기체계들이었다.

이처럼 그림으로 구현되는 만화가 갖는 상상의 세계는 청소년들의 전자오락 게임과 온라인 게임, 온라인 만화인 웹툰,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이 자유로워진 SF 영화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중요한 놀이와 메시지 표현 수단이 된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이 말은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한 배달 서비스 업체의 광고 문구이다. 온 나라가 ‘세월호 참사’로 깊은 수렁에 빠져 사람들이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필자는 집에서 가만히 스포츠 중계를 보는 사이사이 광고 화면에 등장하는 이 문구를 보며 ‘배달의 민족’과 관련한 몇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우선 첫 번째 이미지는 우리의 옛 강역이 한반도 뿐 아니라 연해주와 광활한 만주벌판을 넘어 바이칼 호수를 포함한 러시아의 시베리아, 중국의 산동반도 이남 황해(서해)를 끼고 남북 3만 리에 동서 5만 리라는 소위 ‘대쥬신제국’설이다. 쥬신이라는 말은 숙신, 여진, 조선을 아우르는 우리의 옛 표기라 한다. 두 번째 이미지는 우리의 역사가 온 만년이라는 주장이다. 예수의 탄생 연도인 서기에 2333년을 더한 단기(단군기원) 뿐 아니라 건국 설화에 나오는 하느님의 아들 환인의 신시시대와 환국, 그리고 배달국과 우리가 흔히 국조의 이름을 단군으로 잘못 알고 있는 왕검 이래 2세 부루에서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까지 이어지는 단군조선을 포함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다음 이미지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중국은 다 알다시피 용인데 뱀을 승화시킨 상상의 동물이고, 우리는 고구려 설화에 등장하는 다리가 셋 달린 태양새 까마귀(삼족오)를 승화시킨 봉황이다. 따라서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용 문양이 그려진 곤룡포를 입었고 우리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이 여전히 봉황이다.

우리의 강역과 역사 그리고 상징물까지 몇 가지 이미지는 유물 등 증거를 제일로 하는 역사학자들이 소위 위서라고 주장하는 계연수 선생이 지었다는 <한단고기>를 비롯해 내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만화가 김산호 선생이 뒤에 그린 극화 <대쥬신제국>, 그리고 이현세의 연작 만화 <천국의 신화> 등에서 인용했다. 특히 인상깊이 다가온 이미지 중에는 <한단고기>에서 47세 단군들의 분명한 이름과 한글의 뿌리라는 ‘가림토’ 문자, 그리고 뒤의 두 만화에서 백미인 배달국 치우천왕과 중국의 황제 헌원과의 ‘탁록대전’이었다. 구리 머리에 쇠 이마(銅頭鐵額)를 가진 치우는 우수한 철제 무기와 구름과 안개를 자유자재로 부르는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73전 73승의 전과를 올릴 만큼 용감한 인물로 묘사돼 중국이 치우를 자기 나라 역사 인물에 편입시키면서 전쟁의 신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치우의 이 같은 이미지는 지난 99년 3월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 시합 때 붉은 악마가 처음으로 치우천왕을 새긴 도깨비 깃발을 만들어 응원하기도 했다.

흔히 한 나라의 역사는 전설과 설화까지도 ‘태양에 빛을 바래고 달빛에 물들여’ 만들어진다 한다. 우리가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신화나 전설, 설화보다 더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나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이적들 역시 기록들의 재해석에 따른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서양의 문명이 그리스, 로마에서 발원해 중세 기독교로 이어지고 제국주의의 패권적 문화 침투로 그들의 신화와 전설, 설화가 너무나 익숙한 문화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자리 잡은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의 틈새에 끼어 반만년의 역사조차 왜곡, 축소되고 위축되면서 문화적인 자긍심마저 잃어가고 있다.

중국을 통해 민족의 영산 백두산 일원을 여행해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옛 고구려 유적들의 황폐화와 중국화의 안타까운 현장들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특히 길림성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원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비석은 유리벽에 갇혀 접근조차 되지 않고 인근의 숱한 고구려 왕릉이나 성벽들은 허물어져 폐허가 됐거나 집터로 바뀌어 후세들이 자취조차 찾기 어렵게 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여러 열강들은 자국의 영토와 역사를 국수주의 입장에서 과장하거나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힘을 앞세워 확장하려거나 강요하고 있다. 이런 국제정세에 비해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내부 문제에 빠져 영토 문제 뿐 아니라 문화 역사적인 아우라가 위축돼 있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이라는 한반도조차 좁은 주머니에 갇혀 답답하다고 당시의 편협한 세계관을 한탄했다. 이제 21세기 정보문화시대를 맞아 배달의 민족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상으로 집 앞까지 배달을 가장 빨리 해주는 세계 최상급의 물류 배달의 나라가 아니라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되살려 창의력과 온갖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디지털 유목민(노마드)으로 봉황을 타고 비상하는 배달의 민족이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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