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일본 중견 작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짧지만 묵직한 인생의 교훈 / 안소희

기사승인 2018.02.13  21:23:39

공유
default_news_ad2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신년 계획을 세운다. 그중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책 읽기’다. 나 또한 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내 시선을 끄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일본 중견 작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책의 제목보다는 사실은 표지가 나를 매료시켰다. 표지에 실린 수영복을 입은 무표정한 여자는 심심한 다른 책 표지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나는 도저히 제목과 접점이 없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을 홀린 듯 샀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각 부의 주제마다 에피소드가 나열돼있다. 에피소드는 아주 짧게는 한 문단에서 조금 길면 네 문단 정도로 대체로 짤막하다. 하지만 작가의 말은 짧은 문장에 비해 묵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맘에 드는 구절이나 단락이 있는 페이지는 꼭 세모꼴로 접어놓는 버릇이 있는데, 작가가 던지는 가볍지 않은 메시지만큼 내가 표시해 놓은 부분도 많다.

1부 : “매사 결과는 내 몫이다.”

이 구절을 읽고 과제 때문에 한 시인을 만나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분도 똑같은 말을 했다. “모든 건 자신이 한 선택이에요.” 시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엔 충격보다는 깊은 울림이 한 번 더 왔다. 당연한 말에 왜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어쩌면 나도 내가 한 결정과 행동이 가져온 결과에 남을 많이 개입시켜놓고 살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남 탓을 하면서 내가 만든 결과의 책임을 덜어 놨다. 작가의 꾸짖음이 부끄러웠다. 시인의 말에 그렇게 충격을 받고서, 나는 아직도 내가 만든 결과 앞에 ‘나’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남’ 뒤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부 : “설국(雪國)의 사람들은 겨울의 혹독함 없이 봄은 여물지 않는다는 순리를 알고 있다.”

작가는 사람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망상’을 와장창 깨뜨려버린다. 작가는 행복은 노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노력보다는 ‘고통’을 겪어야 행복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적합한 말이다. 3월이면 나는 흔히들 말하는 ‘사망년(온갖 스펙을 준비하느라 힘든 대학교 3학년을 빗댄 말)’이 된다. 그만큼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지고 그에 비해 자존감은 크게 줄었다. 온종일 나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우울함에 빠져있을 때도 있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위안 삼아 혹독한 겨울에서 봄 향기를 맡을 준비를 쉴 새 없이 하기로 했다.

3부 :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안도현의 시 <간격>이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안도현 시인 또한 불타버린 숲을 보며 사람 간에도 간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친한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작가는 서로의 신상에 대해 지나치게 알려고 하고 알게 된다면 마치 서로가 특별한 관계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해봤다. 친구도 그렇지만 가족에게서 특히 많이 겪었다. 가족은 흔히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많은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치 또 다른 나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는 화가 나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가족도 결국에는 내가 아닌 남이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할 때 상처가 되던 말들이 결국 상처가 아니게 되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4부 : “목적은 어차피 한 가지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 에피소드에서 절망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나서서 나의 상황을 개선해주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곡을 찔렸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다. 그래서 그것들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맛보는 절망감은 꽤 큰 편이다. 1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다른 사람 탓을 하며 누구든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이때 마음을 비우라고 이야기한다.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목표로 두고 다른 일은 지금 당장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 목표를 이루지 못한 좌절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일이다. 당장에는 해내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조금씩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작가가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색깔이 책에서 비치기도 한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이점이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사람마다 겪어온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그 정도는 고려하고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잘 읽히지 않았다.

책을 끝까지 읽고 덮으니 시니컬한 표정의 여자와 제목이 눈에 한 번 더 들어왔다. 처음에는 두 가지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가가 글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과 정면을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모습이 많이 닮은 듯 보였다. 나에게는 충실하고 남들이 바라는 삶만을 살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표지의 여자는 어쩌면 작가를 투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시 서구 안소희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