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엇바퀴 사회… 제2, 제3의 세월호 장담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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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엇바퀴 사회… 제2, 제3의 세월호 장담 못한다
  • 편집인 강성보
  • 승인 2014.04.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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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것은 세월호 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격도 저 오욕의 바다 깊숙히 빠졌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은 단월고 학생 등 300여 명의 희생자들 만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우리들 모두의 신뢰감도 그 생명력을 잃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선장 등 선박직 선원들이 어떻게 승객들을 사경에 내버려 두고 허겁지겁 자기들만 탈출했느냐 하는 점이다. 고급 선원 양성 기관인 해양대학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버큰헤드 정신’이다. 1852년 2월 27일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앞에서 영국 해군함정 버큰헤드 호가 좌초됐을 때 선장과 선원들이 보여줬던 그 장렬한 결기를 말한다. 그들 472명의 해군 장병들은 함께 승선했던 가족들 162명을 구명보트에 태워 보낸 뒤 침몰하는 함정과 운명을 같이 했다. 선장 시드니 세튼 대령의 명령에 따라 침몰하는 함정 갑판 위에서 차렷 자세로 미동도 없이 상어가 우글거리는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들었다. 구명 보트에 탄 가족들은 산 채로 수장되는 군인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눈믈을 쏟아냈다. 버큰헤드 호 침몰은 영국과 영국민을 1등 국가, 1등 국민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이 버큰헤드 호 원칙은 이후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함정, 선박의 선원들에게 당연히 준수해야 할 행동규범으로 받아들여졌다. 위기가 닥쳤을 때 아이와 여자를 우선적으로 구명정에 태우고, 그 다음 일반 남자 승객, 맨 마지막에 선원과 선장이 선박을 탈출한다는 매뉴얼이다. 특히 선장은 침몰하는 선박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과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50여년 뒤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을 때 선장이 “Be British(영국인 답게 행동하라)”며 선원들에게 침착한 행동으로 승객 구조를 우선하라고 독려한 뒤 자기 스스로는 함교에서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 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세월호 선장이 말단 선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 버큰헤드 정신을 체화시키지는 못했을 수도 있으나 모를 리는 없을 터이다. 더욱이 선장과 함께 누구보다도 먼저 세월호를 탈출한 1, 2, 3 등 항해사들은 해양대학 졸업생일 가능성은 높다. 아니, 굳이 이 버큰헤드 정신을 몰라도 그렇다. 평시에 선박 안에서는 제왕처럼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선장이,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선박직 선원들이, 막상 왕국이 위기에 빠지자 “내 목숨이 우선”이라며 생사가 경각에 달린 승객들을 도외시하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도저히 생각하지도 못할 최악의 행동이다. 한 국립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준석 선장의 정신세계는 ‘문학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수 없으나 법조계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 적용에 동감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세계 해운계에 새로운 전통이 생겼다”는 한 외신의 비아냥이 따갑다. “영국에 ‘Be British’가 있으면, 우리에게는 ‘Be Korean’이 있다. ‘나만 살면, 내만 잘되면 된다’는 한국인 정신이다”는 한 컬럼니스트의 자조가 뼈아프다.

사실 우리에게는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 의식이 약하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문화만 팽배할 뿐이다. 지도자는 지도자 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엇바퀴처럼 따로 놀기 일쑤다. 최고위급 관리들 열 중 대여섯 명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군역을 회피한 미필자이며, 그들의 자녀 또한 군 면제자가 수두룩하다. 국민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하면 엄단한다고 해놓고 그들 대부분이 위장전입을 일삼는 게 한국의 지도층들이다. 세월호 구조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 고위 공무원, 희생자 가족들은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누워 울부짖고 있는데 의전용 의자에 앉아 태연히 라면을 먹은 한 장관. 바로 이들이 “너는 너, 나는 나”라는 한국형 엇바퀴 문화의 한 단면을 민낯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이준석 선장에게만 영국형 지도자 정신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제2, 제3의 이준석이 될 가능성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했다. 고귀한 자의 의무란 뜻이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귀족학교 이튼의 전 학생들이 자원 입대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학업이 시작됐으나, 한 반에 살아 돌아온 학생은 30여 명 중 서너 명에 불과했다. 많은 학생들이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고귀한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 목숨을 바친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의 고관대작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특급 피난열차에 태워 남으로 피신시켰고, 일부는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탈출했다. 그들 대부분이 식민지 시절 일제의 앞잡이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새 정부에서 권력자들을 매수해 높은 감투를 썼던 사람들이다. 이준석 선장의 말을 듣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선실에서 다소곳하게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한 수백 명의 단원고 학생들과 남침 북괴군의 탱크에 짓밟혀 죽은 수백만 명 민초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만일 이 땅에서 다시 한 번 전쟁의 비극이 시작된다면 과연 우리 고위 공직자 중 어느 누구가 자신들의 자식들을 전장으로 보낼 것인가. 기념사진 찍자는 행정부 국장 자제분,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 드신 장관 자제분, 그리고 청와대에 항의 방문하러 가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보고 미개한 국민이라고 힐난한 재벌 국회의원 자제분이 그 전장에서 총을 들고 적군과 싸울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멜 깁슨이 주연한 헐리우드 영화 <We Were Soldiers>로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미국 7기병대 1대대장 해롤드 무어 중령의 유명한 연설이 있다. 1965년 미군의 베트남 전쟁 초기 지옥의 전장으로 알려진 ‘이안드랑 계곡’으로 1대대가 작전을 나가기 전 무어 중령이 전 대대원을 앞에 놓고 한 연설이다. “우리는 지금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다. 여러분들 모두를 무사히 데리고 나오겠다는 약속은 못한다. 그러나 이것 하나 만은 맹세한다. 누구보다도 더 먼저 내가 적진을 밟을 것이며 누구보다도 가장 늦게 그 적진에서 발을 뗄 것이다. 아무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I will leave no one behind). 죽어서든 살아서든..”

실제 무어 중령은 약속을 지켰다. 1대대는 이안드랑 계곡 전투에서 압도적인 적군의 화력에 밀려 고전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미군 사령부는 고급 장교를 살리기 위해 무어 중령에게 부대복귀를 명령했으나 거절당했다. 무어 중령은 오히려 ‘브로큰 애로우(피아 구별없는 무차별 화력지원)’을 요청한다. 그 화력지원으로 적군의 공세를 꺽고 79명의 전사자 시신과 121명의 부상자와 함께 본대에 복귀했다. 무어 중령은 미국에서 지도자의 표상으로 숭상되고 있다.

과연 제2, 제3의 이준석 선장이 즐비한 우리 한국에서 무어 중령 같은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안전망을 위시한 근본적인 국가재편를 제창하고 있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도층 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근본적인 의식 개혁, 본원적인 정신 개조가 없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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