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나라의 기둥에 새긴 약속…정부·여야는 머리 맞대 개헌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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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나라의 기둥에 새긴 약속…정부·여야는 머리 맞대 개헌 나서라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8.01.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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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28) 국회 개헌특위 출범으로 되돌아 본 헌법의 모든 것 / 편집국장 강동수

1.

편집국장 강동수

모르긴 몰라도 올해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될 뉴스는 아무래도 개헌이 아닌가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회견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후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고,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 특별위원회도 지난 15일 우여곡절 끝에 첫 회의를 열었다. 이로써 개헌의 내용과 시기를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 사이의 힘겨룸도 본격화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복안은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와 개헌 관련 국민투표를 한꺼번에 치르겠다는 것.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지방선거와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국민과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며 “국회가 책임 있게 나서주시기를 거듭 요청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취지의 발언도 했다.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3월중 발의가 돼야 되며 국회 개헌특위에서 2월말까지 개헌안에 대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국회가 의지를 갖고 정부와 함께 협의가 된다면 최대한 넓은 개헌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만약 정부가 발의하게 된다면 아마도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국회 의결을 받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필요가 있을 수도 있겠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치르기 위해 최대한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겠으나, 국회 합의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나서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피력한 것. 정부 주도로 개헌에 나설 경우 논란이 많은 권력구조 개편은 일단 제쳐두고 국민의 기본권 확대 등을 중심으로 한 조항만 먼저 손을 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10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문 하고 있다(사진: 청와대 페이스북).

그렇다면 과연 문 대통령이 제시한 일정대로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가능할까. 글쎄, 정치는 생물과 같은 것이어서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상황으로선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다들 알다시피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의되려면 국회의원 정수 2/3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돼야 하는데, 개헌 저지선을 가진 자유한국당은 이에 응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부결될 줄 뻔히 알면서도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신년 회견에서의 문 대통령의 발언은 야당 압박용이자 국민을 위한 여론 환기용인 셈.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포함해 주요 정당의 후보 모두가 올해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치르겠다고 공약한 것을 상기시키는 한편, 함께 치를 경우 1200억 원의 예산이 절약된다는 점을 강조해 국민 여론에 불을 댕기려는 의도이겠다. 국민 여론을 고리 삼아 지방선거에서의 동시 실시에 합의하라고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겠다는 작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 동시 실시 공약을 이미 뒤집어엎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는 "(지방선거를 하면서 개헌을 같이 투표하는) 그런 곁다리 투표로 향후 50년간 나라의 틀을 바꾼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국민적 합의 없이 여당이 독단적인 개헌을 한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홍 대표가 자신의 공약을 뒤엎고 연말에 따로 실시하자는 논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한 바는 없다. 여야가 합의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도다.

자유한국당이 개헌 시기를 늦추자는 것엔 당리당략이 숨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가뜩이나 낮은 여론 지지율에 허덕이는 판에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면 투표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거다. 투표율이 높아진다는 건 청년층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다는 뜻. 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추풍낙엽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그래서 지방선거 투표율을 떨어트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분리 실시하자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 글쎄, 그게 이유라면 제1야당의 처지가 참으로 왜소하다. 하기야 뭐 어쩌겠나. 그렇게 해서라도 생존하겠다는데…….

어쨌거나 자유한국당은 벌써 거리로 뛰쳐나갔다. 15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문재인 관제 개헌 저지 국민 개헌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개헌을 물리치고,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 개헌을 쟁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원내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발 개헌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국회에서 합의하는 것”이라며 6월 중 동시 투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개헌특위 첫날 회의에서도 여야는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쳐 ‘개헌호’의 험로를 예고했다.

 

2.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개정된 지 30년이 지난 현행 헌법이 여러 모로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터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때도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당시 야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2016년 가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연기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를 적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급하게 꺼내들었으나 실패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방침을 제기했지만 바로 다음날 JTBC가 최순실의 국정 개입의 가장 유력한 물증인 태플릿 PC의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개헌론은 ‘1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개헌 논의로 자신에 대한 의혹을 덮으려던 박 전 대통령의 시도는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갔던 것은 다들 기억할 거다.

지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1987>이란 영화가 흥행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다들 아는 일일 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항쟁의 결과물이 바로 현행 헌법이다. 6·10은 우리 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사건임에 분명하다. 이른바 '87년 체제' 아래에서 30년을 보내는 동안 이런 저런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까지 이른 절차적 민주주의 역시 크게 나무랄 데가 없을 만큼은 성장했다. 외환 위기란 곡절을 겪었을망정 경제규모도 세계 10위 권 안팎을 넘나드는 데에 이르렀다. 6·10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급진좌파적 혁명론을 퇴조시키고 체제내적 시민운동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도 사실이다. 7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적어도 쿠데타란 단어는 박물관에 진열됐다.

1987년 박종철 열사가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에 마련된 추모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지난 30년 간 한국 사회의 발전에 보루 역할을 한 것이 현행 헌법인 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직선제의 시행과 헌법재판소 설치가 현행 헌법의 산물이다. 대통령 직선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골간을 이루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70~80년대 민주화 세력과 국민들이 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전리품인 거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건 1987년 현행 헌법 시행 이후다. 대통령 파면에서부터 위헌 법률 심사, 헌법 소원 등에 이르기까지 헌법재판소가 한국 민주주의의 파수꾼 노릇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민주화 개념도 현행 헌법에서부터 본격화됐다. 토지공개념도 담고 있다. 사회복지 증진의 의무화, 최저 임금제 시행, 국가의 재해 예방 의무 등 국민 기본권 확충의 근거가 되는 조항들도 현행 헌법에서 본격적으로 보완됐다.

그렇게 보면 현행 헌법은 꽤 잘 정비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리고 이 헌법 아래에서 30여 년 간 나라가 그럭저럭 운영돼 왔다. 하지만 30년이라면 한 세대가 지나는 기간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의 추세에 맞춰 헌법도 손질돼야 한다는 주장은 꽤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무엇보다도 노태우의 6·29선언 이후 1노 3김 졸속 합의의 산물인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 사실 ‘5년 단임제’에 무어 뚜렷한 헌법적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체제의 장기집권에 신물이 난 국민의 시선 때문에 한 사람이 최장 8년을 할 수 있는 ‘4년 중임제’는 애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거다. 단임제로 하자면 6년 정도의 임기를 보장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하고 싶은 사람도 많은 터에 6년도 길다 해서 ‘5년 단임제’란 다소 기형적인 체제가 탄생했던 것. 더 큰 문제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제왕적 대통령’이란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임기가 끝난 후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유유자적 평상인으로 되 돌아간 대통령이 없다시피 했다. 노태우, 박근혜가 감옥에 다녀왔거나 들어가 있고, 노무현은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이명박도 지금 간당간당하다. 김영삼, 김대중은 사법적 소추를 받지는 않았지만, 임기 말에 자녀 단속에 실패해 국민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던 터수다.

 

3.

헌법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나라의 기둥에 새겨 넣은 말’이다. 헌법 속에는 지난 수천 년 인류가 쟁취해 온 생존권적 개념, 민주와 평등의 철학, 공동체적 윤리,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공동선 등등 수많은 철학이 압축돼 있다. 때로는 특정한 국가나 민족의 독자적 가치관이 담겨 있기도 하다.

각국의 헌법 정신을 가장 집약적으로 담아 놓은 문장이 바로 헌법의 전문이다.

이를테면 미국 헌법의 전문은 이렇다. "우리들 연합주(The United States)의 인민은 더욱 완벽한 연방(Union)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에게 자유와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을 위하여 이 헌법을 제정한다." 정의, 복지, 자유 등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키워드가 담겨 있다.

미국의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승인 채택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프랑스 헌법도 마찬가지. "프랑스 국민은 1789년 인권선언에서 정의되고 1946년 헌법 전문에서 확인 및 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2004년 환경헌장에 정의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기의 원리들과 각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거하여 공화국에 결합하려는 의사를 표명하는 해외 영토들에게 자유, 평등 및 박애의 보편적 이념에 기초하여 그들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구상된 새로운 제도들을 제공한다." 역시 인권, 환경, 자유, 평등, 박애 등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를 새겨놓았다.

그럼 일본 헌법은 어떨까. "일본 국민은(…) 정부의 행위에 의해 다시금 전쟁의 참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결의하고, 여기에 주권이 국민에게 존재함을 선언하며 이 헌법을 확정한다(…) 일본 국민은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인간 상호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를 깊이 자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며,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보존할 것을 결의하였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인 일본은 ‘전쟁 참화의 방지’와 ‘평화’라는 키워드를 강조한다. 그래서 전후 일본 헌법을 ‘평화 헌법’이라고 하는 건데,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세력들이 ‘평화 헌법’을 바꾸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바꾸려고 혈안이 돼 있는 건 유감이다.

그럼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은? 현행 헌법 전문은 인터넷만 두드리면 당장 알 수 있을 테니 생략하고,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제정된 제헌 헌법의 전문을 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독립정신, 정의, 인도, 동포애, 민족 단결, 국제평화, 자유, 안전 등 신생 국가로서의 포부를 담았다. 특기할 것은 "우리들 대한 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란 대목. 삼일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이 건국됐고, 1948년에 ’재건‘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는 상해임시정부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 ‘대한민국 건국은 상해 정부가 아니라 1948년 정부 수립이 기원’이라는 요즘 뉴라이트 쪽 사람들의 주장을 제헌 헌법 자체가 명확히 부정하고 있는 거다.

19454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4.

어느 나라든 헌법은 개정이 매우 까다롭다. 나라의 기틀이 되는 헌법이 독재자의 입맛에 맞도록 자주 바뀐다면 국가 체제가 흔들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국회의원 2/3 찬성에 국민 직접투표에 의해 개정을 하도록 해놓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실제로는 독재자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면서 숱한 상처를 입었다. 제헌 헌법 이후 총 9차례 개헌이 이뤄졌지만, 대부분은 국민의 의사라기보다는 독재자의 정권 연장을 위한 방패막이 개헌이었던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승만 정권 때의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1951년 11월 임시 수도 부산에서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의 재집권을 목적으로 국회의 양원제 및 대통령·부통령의 국민직선제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했으나 압도적으로 부결됐다. 이어서 야당이 1952년 4월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자, 정부는 먼저 부결된 직선제·양원제안을 약간 고쳐서 그 해 5월에 다시 개헌안을 제출해 국회와 정부가 정면 대결하는 '정치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안과 야당안을 발췌하여 절충한 안이 공고와 독회(讀會)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무장 경관으로 겹겹이 포위된 비상계엄령 하의 심야의 국회에서 기립 투표로 통과되고 말았다. 이 개헌을 발췌개헌(拔萃改憲)이라 했다. 공고 절차도 없었고 개헌안은 수정할 수 없는 데도 이를 수정했으며 표결의 자유마저 없었으므로 합헌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됐던 헌법이다.

1954년 발췌개헌에 항의하는 이철승 등 당시 야당 의원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런가 하면 서울 수복 후인 1954년 정부는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위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해 11월 27일 민의원에서 표결에 붙인 결과 부결이 선포됐다. 표결 결과는 재적인원 203명, 재석인원 202명,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 공교롭게도 의결정족수인 136표에 1표가 부족한 135표 찬성이었다. 부결이 선포됐지만 자유당은 “재적인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인데, 영점 이하의 숫자는 사사오입, 즉 반올림하면 135이고, 따라서 의결 정족수는 135이기 때문에 헌법개정안은 가결된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이틀 뒤 다시 가결이 선포됐던 것. 이걸 ‘4사5입(四捨五入) 개헌’이라고 하는데 세계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의 가장 큰 상처는 1972년의 유신헌법이 아닐 수 없다. 1969년 ‘4년 중임제’이던 대통령 임기를 한 번 더 할 수 있게 고친 ‘삼선 개헌’으로 정권을 연장했던 박정희는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초법적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곧바로 헌법개정안을 작성해 국민투표로써 확정했던 것. 평화적 통일지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란 명분을 내세웠으나 헌법 개정 절차는 물론 그 내용까지 국민의 참정권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악법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란 걸 만들어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했고, 대통령에게 ‘긴급조치’란 비상대권을 주어서 ‘헌법 개정하자’는 소리만 해도 징역 15년 씩 무시무시한 ‘정액 형벌’을 때린 근거를 만든 것도 유신 헌법이었다. 국회 정원 1/3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했으니 삼권 분립 원칙이 철저하게 유린된 헌법이기도 했다. 유신헌법을 초안한 헌법학자로 한태연, 갈봉근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헌법 초안을 만들어 준 대가로 후일 유정회 국회의원 한자리씩 차지했다. 오죽하면 세간에선 당시 헌법을 한태연의 ‘한’, 갈봉근의 ‘갈’을 따 ‘한갈이 헌법’ , 다시 ‘항가리 헌법’이라 불렀을까. 따지고 보면 헝가리에게 미안한 노릇이다.

1979년 10·26으로 박정희가 암살된 후 12·12군사정변을 일으켜 권력의 공백을 차고앉은 전두환도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7년 단임제’ 개헌을 했다. 그리고 80년대를 관통하는 기나긴 민주화 투쟁 끝에 쟁취한 것이 바로 현행 헌법인 것이다. 실로 대한민국 헌법에는 독재의 망령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국민의 눈물과 땀과 피가 스며 있는 셈이다.

 

5.

헌법이라도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으면 고치긴 해야 하겠다. 30년을 버틴 현행 헌법도 수명이 다했다면 손을 보긴 해야 할 게다. 하지만, 시대 정신을 제대로 살려야 하고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대강만 따져 봐도 보완돼야 할 사항이 많다. 지난 30년 전에 비해 지방자치제가 크게 성장한 만큼 지방 분권을 뒷받침하도록 헌법 조항이 신설되거나 개정할 필요가 있다. 지방 정부의 자치 기능을 좀 더 강화하고 자치 경찰제 등의 도입을 위한 근거도 마련돼야 할 일. 성 평등 보장, 성 소수자 보호 등을 포함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도 좀 더 강화돼야 하고, 유명무실화되다시피 한 경제민주화 조항도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손을 봐야 할 일이다.

그래도 무어니 무어니 해도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이다. 그게 빠지면 ‘팥소 빠진 찐빵’이 아니겠는가. 지금 들 수 있는 것으론, 미국식 4년 중임제 대통령제, 총리가 내치를 맡고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 등을 맡는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의원내각제 정도일 것이다. 이런 몇 개의 선택지를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벌일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가 여야 간에 합의되지 않는다면 헌법 전문과 기본권 조항 등만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은, 설사 그 고심을 이해한다손 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새로운 개헌 요구가 빗발칠 것이고 자칫 문 대통령 임기 중에 두 번이나 개헌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르면 1200억 원이 절약된다는 대통령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하려면 한꺼번에 해야지 두 번에 나눠하겠다는 건 상책이 되지 못한다. 내 생각으로는 일단 지방선거와 동시에 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최대한 강구해 보되 정 안 되면 연말 쯤에 실시하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자유한국당이 끝까지 반대하면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도 마찬가지. 개헌 소리가 나온 게 언젠데 이제야 개헌특위가 가동되느냐고 국민이 혀를 차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던 공약을 이제 와서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책임감을 느낄 일이다. 따지고 보면 현행 헌법도 딱 넉 달 만에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것이다. 서두르면 5개월 여 후인 지방선거에 맞추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국가백년대계인 개헌 문제에 당리당략을 앞세워서 될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30년을 입어온 옷을 벗고 새 옷을 맞춰 입을 때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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