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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원전게이트, 전·현 정권 ‘폭탄 돌리기’의 진실은?

기사승인 2018.01.09  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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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수의 자투리 시사인문(27) ‘UAE 원전 공방’으로 되짚어 본 국가간 밀약의 그늘

1.

편집국장 강동수

새해 들어 때 아닌 ‘외교 분란’이 나라를 달구고 있다. 그것도 이른바 사활적 동맹관계라는 미국이나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 일본도 아닌 머나 먼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약칭 UAE)이란 나라와의 관계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해 12월 9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갑작스럽게 이 나라에 특사로 다녀온 이후.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여야 간 공방거리가 되고 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할 고유 업무도 제쳐놓고 머나 먼 중동으로 급거 파견된 것부터가 이례적이긴 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비서실장까지 나서야 할 정도로 한국과 UAE 사이에 심각힌 외교적 마찰이 생긴 거냐고 문제를 제기한 건 다들 아는 이야기.

그런데 청와대나 임 실장이 이런 의혹 제기에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계속 말 돌리기를 해 오면서 말씨름이 증폭돼 왔다. 청와대는 처음엔 임 실장이 UAE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을 위문하고 왔다고 했다. 그러나 “한 달 전에 국방장관이 다녀왔는데 위문이 무어 그리 급한 일이라고 비서실장이 한 달 만에 또 가야 했느냐”는 반론에 부닥치면서 말이 꼬였던 것. 청와대는 이후 정부 간 교류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복원하려는 목적이었다,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등등 조금씩 말을 바꾸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털어놓지 않았던 까닭에 청와대가 뭔가 감추려는 게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그래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언론도 확인되지 않은 추측 기사를 쏟아내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야당이 문재인 정권을 몰아붙일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계속 강공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게 지금까지의 과정이다. 문 정권이 ‘적폐 청산’을 한다며 이명박 정부와 UAE 사이의 유착 관계를 뒷조사하다가 UAE의 분노를 사서 그걸 수습하려던 게 아니냐고 공세를 폈다. 심지어 문 정부가 UAE 왕실 자금의 흐름을 들여다보다가 동티가 났다는 황당한 추측까지 나돌았다. 그러면서, 임 실장을 국회에 불러내 혼을 내야 한다는 둥,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둥 기세등등했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가 UAE와 원전 수주 계약을 맺으면서 매우 무리한 이면계약을 맺었고 그게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하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UAE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빌딩(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정부는 “외국과의 중요한 국익이 걸린 문제이므로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자세를 유지했다. 야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사실을 밝히면) 야당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역공을 시도하기도 했다. 먼저 까발리지는 못하지만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 구 정권이 벌여놓은 일이란 뉘앙스인 거다. 어쨌든 이 와중에서 궁금증은 국민의 몫이 됐다. 나오는 이야기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니 정색하고 비판하기도 멋쩍은 노릇인 거다.

 

2.

청와대가 아직까지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 사태의 전모를 확실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상 어떤 일이든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언론과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자투리 천을 이어 붙이듯 조심스럽게 맞춰보면 동티난 경위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대강 이런 이야기인 모양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UAE로부터 56조 원 규모의 원전을 수주한 것은 이미 구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권이 프랑스로 거의 넘어간 것을 대통령부터 정부 관료까지 나서 총력전을 펼친 끝에 빼앗아 왔다며 자기네 치적으로 자랑했던 건 다들 기억할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걸 수주하느라고 UAE에 각종 군사 협력을 약속했다는 거다. 당초 UAE 측은 한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는데, 그건 우리 군대를 파견하는 것, 현지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자동적으로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 등등 매우 미묘한 사항이 포함되는 문제다.

이런 정도의 군사 협력이라면 당연히 조약 형식이 돼야 하고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원전 수주에 몸이 단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상호방위조약’에 상응하는 군사 협력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도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 대신 ‘협약(MOU)’ 형식으로 은근슬쩍 밀어붙였다는 거다. 아마도 외국에의 파병, 분쟁 시 자동 개입 등등 협상 내용이 액면 그대로 밝혀질 경우 국내외 비판 여론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을 우려했을 거다.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하는 것도 아니니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제5조와 상충해 위헌 논란도 불거질 우려가 컸던 것.

그래서 UAE에 ‘아크부대’란 이름의 한국군을 파병하면서도 사실을 숨긴 채 당시 여당 단독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낸 것. 그것 말고도 군수품 지원 등등 총 5건의 양해 각서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맺어졌다고 한다. ‘뒷간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더라’고 원전 수주할 때는 몸이 달아 온갖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성사되고 나서 따져보니 이게 부담이 아닐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 때부터 약속 이행에 미적거려 UAE의 불만을 사왔는데,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인수해 놓고 보니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UAE 측에 협정의 개정을 요구했다가 UAE가 경제 보복을 운운하면서 강력히 반발했다고 한다.

최태원 SK 회장이 급하게 임종석 실장을 만난 것도 그런 UAE 측의 분위기를 정부에 전달하려던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 문제를 설 건드렸다간 신뢰 관계를 중시하는 중동의 관습으로 봐서 중동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고 읍소(?)했을 거란 것.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은 것을 경험했던 터라 문 정권으로선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도 놀란다’고 “아차!”하고선 부랴부랴 임종석 실장을 보내 UAE 달래기에 나섰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명박 정권 때 인사들이 최근 실토한 것을 보면, 이런 분석이 얼추 맞는 듯하다. MB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 UAE에 세 번 다녀오면서 군사 협력 문제를 매듭지은 당사자로 알려진 김태영 전 장관은 1월 9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섣불리 국회로 가져가기보단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군사)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 그는 또 협약 내용 중 UAE의 유사시 한국군이 자동 개입한다는 조항에 대해 “그렇게 약속했다”면서도 “실제론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군사 개입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다. 그러니까, UAE에 유사시 자동 개입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사실이고, 그게 국회 비준 사항이란 것도 알았는데,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국회를 슬쩍 속였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만약 UAE가 벌이는 전쟁에 참전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그 때는 국회의 비준을 핑계로 군사 개입을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닌가. 일개 장관이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 모르지만, 그의 발언을 뜯어보면, 원전 수주란 이름의 ‘국익’을 앞세우면 국민과 국회를 속여도 되고, UAE에겐 국내 절차를 핑계로 파병 약속도 깰 수 있다는 식인데, 이거야말로 ‘두 겹의 사기’ 수준이 아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MB식 장사 외교’의 전형이랄밖에. 다르게 말하면, MB정권이 나중에 문제가 될 줄 알면서도 도화선에 불이 붙은 시한폭탄을 후임 정권에 떠 넘겼다는 게 아닌가.

 

3.

조약이 됐건, 협정이 됐건, 외국과의 약속은 신중해야 하고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게 국제관계라지만, 배신을 당한 당사국 입장에선 거짓말을 한 상대국이 원수처럼 보이게 될 것은 당연하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애초부터 하지 말아야 하고, 일단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키는 건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 사이의 도리임은 당연하다. 뒤늦게 원전 수주전에 뛰어든 한국에게 프랑스가 밀렸던 건 꼭이 멍청해서가 아닐 터다. UAE로부터 무리한 군사 협력 요구를 받은 프랑스로선 아무리 원전 수주가 중요하다 해도 자국이 중동 분쟁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동서고금을 살피면 나라 사이의 비밀협약이 동티를 불러일으킨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도 나라간의 전쟁은 상대국이 배신을 ‘때려’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신라와 백제 사이에 맺은 ‘나제동맹(羅濟同盟)'도 양국 사이의 약속과 배신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나.

고구려의 장수왕(長壽王)이 서기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정책을 추진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가 433년 맺은 조약이 나제동맹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상호방위조약’인 거다. 장수왕은 먼저 백제를 침략해 475년에 개로왕을 죽이고 백제의 수도 한성을 점령하며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이때 신라는 구원군 1만 명을 보냈다. 481년 고구려는 이번엔 신라를 공격해 성 7개를 점령했고 신라 수도의 턱밑인 미질부(彌秩夫:경북 흥해)까지 진출했다. 이 때는 백제가 신라를 도왔다. 그리고 551년에는 양국 연합군을 구성해 고구려를 공격, 한강 유역을 빼앗았다.

그런데 서로 어려울 때는 혈맹이니 어쩌느니 하지만 전리품을 눈앞에 두면 마음이 달라지는 건 동서의 상례.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군(郡)을 회복했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차지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통로를 구축하고 한강 유역의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독차지 하려는 신라의 야심으로 동맹관계가 깨져 버렸던 거다. 553년 신라 진흥왕(眞興王)은 백제의 한강 하류지역을 점령해 버렸다. 당연히 백제와 신라는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섰다. 신라의 배신에 이를 간 백제의 성왕은 대가야와 연합해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백제는 3만에 가까운 군사를 잃으며 대패했고, 성왕은 신라에 사로잡혀 목이 베어졌다. 이로써 양국은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100여 년 동안 원수 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던 것. 글쎄, 국익에 민감했던 진흥왕을 똑똑한 군주라 칭송해야 할지, 아니면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러야 할지.

북한산 징흥왕 순수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강대국의 비밀협약 때문에 우리가 큰 상처를 입은 적도 있다. 대표적인 게 1905년 7월 29일에 일본의 총리대신이자 임시 외무대신이었던 가쓰라 다로(桂太郎)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사이에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7월, 태프트는 필리핀을 방문하던 도중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1905년 7월 27일 도쿄에서 가쓰라 총리와 비밀회의를 열어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주요 의제를 논의한 끝에 합의 각서를 작성했다. 밀약의 내용은 서명된 문서나 조약의 형태가 아니라 각서로만 존재해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1924년에야 민간 연구가에 의해 실체가 드러났다. 두 나라가 합의한 내용은 이랬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이 밀약을 기초로 일본은 영국, 러시아로부터 한반도 지배권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을 보호국의 지위로 전락시켰으며, 1910년 8월 29일에는 주권을 완전히 빼앗았던 것. 우리에겐 참으로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다로 가쓰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윌리암 태프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9년 소련과 독일이 체결했던 ‘독소불가침조약’에도 음모와 배신이 얽혀 있기는 마찬가지. 그해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소련의 외무장관 몰로토프와 독일의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사이에서 불가침 협정과 부속 비밀 의정서가 조인되자 세계가 놀라 자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히틀러와 공산주의자들은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자국 내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한 건 알려진 사실이다. 조약의 내용은 상호불침략, 일방국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다른 일방국은 그 제3국을 원조하지 않는다 등등이었다.

독소불가침 조약에 서명하는 러시아의 몰로도프와 바로 뒤의 독일의 리벤토로프, 그 오른쪽이 스탈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두 나라의 불가침조약 체결은 서로 계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폴란드 침공을 앞둔 독일로서는 등 뒤의 칼과 같은 소련의 참전 위협을 없애는 게 선결 과제였던 것. 소련으로선 폴란드가 침략을 받아도 영국과 프랑스가 수수방관할 것이니 독일이 폴란드라는 방어벽이 무너진 자국을 곧 침략할 것이란 두려움을 가졌던 거다. 이로써 소련은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전쟁에서 비켜서서 군사력을 증강시킬 귀중한 시간을 얻었다. 하지만, 독소불가침조약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기습공격하면서 불과 2년여 만에 깨졌다. 히틀러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미영 연합군은 물론 소련까지 적으로 돌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거다.

 

4.

MB 시절 한국과 UAE가 맺은 군사협정을 ‘나제동맹’이나 ‘독소불가침조약’과 곧바로 비교할 순 없다. 시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한국으로선 원전 수주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군사력이 약한 UAE는 한국의 손을 빌려 이란 등 주변 중동국의 위협에서 안보 도움을 얻겠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건 분명하다. 문제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군사 협력을 함부로 약속한 것이 적절한 태도였느냐일 테다. 또, 그런 중차대한 일을 ‘국익 보호’란 이름으로 국회나 국민에게 알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냐는 것일 테다. 정확한 내용이 소상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지금 일도양단해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눈앞의 경제적 이익, 혹은 정권 치적 쌓기에 급급해 민주국가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를 생략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좋게 말해서 기업가 출신, 인색하게 말하면 장사꾼 출신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기업의 생리다. 게다가 MB의 잔뼈가 굵은 곳은 정주영 식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무대뽀’ 정신을 기업의 모토로 삼은 현대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MB식 불도저 외교가 ‘국익’이란 이름으로 UAE 원전 수주 과정에서도 작동했을 터.

그런데 MB가 몰랐던 건 국정 운영은 기업 경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윤 추구를 지상 과제로 삼는 기업과는 달리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공의(公義), 공공선(公共善), 법률적·절차적 정당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에 국정에는 헌법과 법률이란 여러 겹의 규제 장치가 있는 거다. 대통령은 국민이란 오너에게서 한시적으로 경영권을 위임받은 CEO에 불과한 게 아닌가. 기업에서도 중요한 시책을 이사회나 주주총회도 거치지 않고 제 멋대로 전횡하면 진짜 오너에게 쫓겨나지 않나. 하물며 국가라는 거대 공조직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복원한다면서 인근 상가들과 노점상들을 강제로 밀어내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던 그다. 대통령 시절엔 그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른바 4대강 개발을 했던 그다. 환경을 되살린다면서 가장 반 환경적인 방식인 ‘에코 파시즘(eco-fascism)’을 동원했던 이명박이다. 자원 외교한다면서 국고 손실은 또 얼마나 입혔던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을 방문해 이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중국에 ‘후흑학(厚黑學)’이란 게 있다. ‘후흑’이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이다. 면후는 두꺼운 얼굴이니 ‘뻔뻔함’을, 심흑은 검은 마음이니 ‘음흉함’을 의미한다. 결국 ‘낯 두껍고 속이 시커먼 자’를 말하는데 중국 역사에 등장했던 낯 두껍고 흑심이 가득 찼던 자, 다시 말해 ‘철면피’를 분석한 학문(?)인 셈. 청 말의 이쭝우(李宗吾)란 이가 제창(?)한 거다.

이쭝우에 따르면, 중국사상 숱한 후흑이 명멸했는데, 그의 시각으로는 조조는 물론 유비도 후흑의 대가다. 특히 한(漢)을 창업한 유방(劉邦)이야말로 ‘후흑’의 초절정 고수라는 것. 유방은 항우가 제 아버지를 인질로 잡은 다음 삶아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눠 달라고 해 항우를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 수레가 무거워 덜미를 잡힐 판이 되자 수레 무게를 덜려고 함께 탄 자식들을 세 번이나 발로 차 마차에서 밀어냈다고 한다. 천하를 얻은 뒤에는 자신을 도왔던 한신과 팽월을 솥에 삶아 죽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나제동맹을 깼던 진흥왕도 ‘후흑’에 속하는 인물이었겠다. 히틀러야 말할 나위도 없었을 테고. 글쎄, 우리 현대 정치사에도 ‘후흑과’에 속하는 인물이 더러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편견을 얹어 말하라면 나는 ‘MB 가카’도 빠지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야박한 평가인가. 글쎄, 후임 정권에 ‘폭탄’을 떠넘겨놓고선 마치 남의 일 말하듯 “내가 말 안 하는 게 국가에 도움이 되겠지”라고 시치미 뗄 정도의 내공이라면 후흑학의 대가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다스’와 ‘자원 외교’, ‘4대강’에 묶어 ‘UAE 원전 게이트’도 패키지로 곧 까발려지지 않을까 싶긴 하다.

문재인 정부에도 한 마디. 지금까지 흘러나온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억울한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그게 어디 우리가 저지른 거냐, 전임 정권들이 어질러 놓은 일을 지금 우리가 설거지 하느라고 골탕 먹고 있지 않느냐”는 심정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디 좋은 일만 인수하고 나쁜 일은 내던져도 좋은 게 국정이겠는가. 좋고 나쁜 것 모두 이어받아 처리해야 하는 게 정부 아닌가. 외교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처리 방식은 미숙한 데가 적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심어놓은 씨앗이라 해도 그 처리가 지나치게 거칠어 UAE와 필요 없는 마찰을 빚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는 있을 게다. 청와대가 설익은 해명으로 공연히 문제를 키운 측면도 있다. 처음부터 “UAE와 우리나라 사이에 전임 정권의 일로 다소 갈등이 있어 임 실장이 해결하러 다녀왔다. 상대국이 있고 국익이 걸린 문제라 지금은 소상히 말씀 드리기 어렵다. 기회가 되면 국민 앞에 숨김없이 말씀 드리겠으니 좀 기다려 달라”는 정도로 해명하고 국회에도 비공개로 귀띔했으면 약간의 논란이야 있었겠으나 쓸데없이 문제가 커지진 않았을 게다. 어쨌거나, 어차피 이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니 국익이 손상되지도 않고, 국가 운영의 기본 질서도 지켜 가면서 물밑에서 UAE와 사태 해결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 처음엔 문재인 정권을 공격할 물실호기(勿失好機)라고 생각해 기세등등하게 설쳤는데, 원천적인 문제가 자기네가 정권을 잡았을 때 생긴 것이란 걸 뒤늦게 알고는 국정조사니 뭐니 하는 소리를 접고 꼬리를 내릴 자세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좀 제대로 알아보고 나서 공격하지, 공연히 분란을 일으켰으니 딱한 야당이 아닐 수 없다. 도끼질을 해도 제 발등에다 해선 안 될 일이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평지풍파 만들지 말고 조용히 문제가 해결되도록 협조할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문재인 정부에게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유명한 경구 하나를 드리겠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아시는 대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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