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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황금개띠 해부터는 요수(樂水)보다 요산(樂山), 속도보다 방향이다

기사승인 2017.12.30  01: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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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지난 주 필자의 칼럼(본지 2017년 12월 23일자 시빅드론)에서 타워크레인이 전국에 6000여 개가 있고, 이 위험한 기기가 복잡하게 운영되는 건설사의 구조적 취약점과 안전불감증 때문에 조만간 또 넘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조만간’이 1주일을 못 갔다. 28일, 서울 강서구에서 또 다른 크레인이 넘어져 1명이 죽고 15명이 다쳤다.

같은 칼럼에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주변 골목길 불법주차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바로 그 다음날 한 언론은 제천 사고 현장 뒷골목에는 사고 다음날부터 다시 불법주차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29일에는 경기도 평택에서 탱크로리가 내부 청소 중 폭발해서 1명이 사망하는 안전 사고가 또 터졌다.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니, 사고가 연일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017년이 드디어 세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7년이 가고 있다. 국정 농단부터 불법주차까지 세상에는 문젯거리로 꽉 차 있는데, 언제 어떻게 이들을 고칠까 하는 걱정에 올해의 마지막 날도 맘 편히 자기는 글렀다.

‘요산요수(樂山樂水)’란 말이 있다. 대개 산과 강, 즉 자연의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로 쓰인다. 요산요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최근 우리나라에는 등산과 낚시가 2대 국민 취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원래 요산요수는 단순히 자연을 즐긴다는 뜻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산요수는 <논어>의 ‘옹야(雍也)’ 편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는 구절을 줄인 말이다.

어진 사람은 듬직한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변화무쌍한 물을 좋아한다는 이 숙어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예를 들어, ‘요수’란 외부 지식을 신속하게 받아 들여 사회 제도를 빨리빨리 바꿔야 한다는 개혁의 측면과 연결된다. 반대로, ‘요산’은 옛것을 함부로 바꾸기보다는 전통을 고수하자는 유지 보수 내지는 점진적 개선의 의미가 강하다. 개혁은 신속한 속도가 중요하다는 건 '요수파'의 입장이고, 속도가 늦더라도 변화에는 '어느 방향'이냐는 신중함이 더 중요하다는 게 '요산파'의 입장이다. 우리 한국은 대강 빨리빨리 바꾸고 고치는 요수파 식 삶을 더 중시하는 니라다.

특히 신기술이 날마다 튀어 나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은 신지식을 얼마나 빠르게 흡수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교수들의 강의 노트는 그래서 절대 낡으면 안 된다. 이와 연관된 <논어>의 글귀가 바로 “학문(學問)은 여역수행주(如逆水行舟)하여 부진즉퇴(不進則退)”라는 말이다. 이는 학문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뒤로 밀린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청소년들이든 성인 직장인들이든, 한국 사람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에서 안 밀리고 안 떠내려가려고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그런 요수파 식 삶의 방식 덕분에,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역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비트코인 투자에 여럿이 뛰어든 민족이 됐다. 우리는 빨리 받아 들이고 빨리 바꾸는 데는 선수급이다. 정부 부처 이름은 해마다, 혹은 정권마다 바뀌고, 대학 학과 이름은 해마다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학과가 첨단 학과란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 보면, 무늬만 첨단 학과고, 이름뿐인 융합 학과가 대부분이다.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따로없다. 신재생 에너지 과학과는 과거의 물리학과이고, 생명과학과는 과거의 생물학과이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과거의 신문방송학과다. 본질적으로는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정부든 대학이든 다들 요수파 호들갑쟁이들이다. 한 나라의 진정한 변혁을 꾀할 집단들이 이름 뿐인 개혁을 하고 '다이내믹 코리아(역동적 한국)'란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동력이 막 개발된 1차 산업 혁명 초기 영국에서는 ‘자동차는 마차보다 빨리 달려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동차 산업을 싫어한 구식 농업형 엘리트 귀족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요산의 원칙’을 취했던 듯하다. 그러나 당시의 이런 마차 속도 제한법은 ‘요수의 원칙’에 의해 개편했어야 했다.

이처럼, 한 나라의 개혁은 요수적 속도가 중요할 때도 있고, 늦더라도 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하는 요산적 원칙이 필요한 때도 있다. 세월호, 제천 화재, 낚싯배 사건, 타워크레인 전복 사건, 이영학 사건, 여교사의 제자 성관계 사건, 학교 폭력, 여고생의 초등생 살인 사건, 친부의 고준희 어린이 유기 사건, 심지어 북핵 사태, 연말 마지막 날까지 시끄러운 위안부 문제까지도, 2017년 한 해 동안 일어난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속도가 느리고 타이밍을 놓쳐서 문제를 못 찾고 대처를 못한 게 아니다. 오히려 요수파 식 임시방편으로 빠르게만 대처한 게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원인을 천천히 찾고 100년을 내다보고 대책을 강구하는 요산 식 해결책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315차 정기수요집회가 12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열린 수요집회는 2017년 마지막 집회로 올 한 해 돌아가신 여덟 분의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추모제를 진행했다(사진: 더 팩트 제공).

과거 우리나라에는 속도도 빠르고 방향도 제대로 잡았던 천재 의사결정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식 흡수가 빨랐고, 큰 방향을 잡는 통찰력은 더 신통했다. 정주영이나 이병철 등은 요산요수의 능력이 모두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조선 산업, 자동차 산업, 반도체, 전자산업 등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될 줄을 수십 년 전에 어찌 알았을까? 그들은 미래에 대한 혜안과 안목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요산요수에 모두 능통한 그런 영웅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는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의 참혹한 기억과 류성룡의 <징비록>이 주는 교훈을 잊고, 불과 45년 뒤인 1637년에는 병자호란을 당했다. 그래서 청 황제 앞에서 왕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어대야 했다. 그리고 다시 273년 뒤인 1910년에는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바쳐야 했다. 그 후에도 우리 역사는 분단, 전쟁 등의 굴곡을 거쳤고, 2018년에는 인구 5000만, 국민소득 3만 불이라는 세계 7대 강국 문턱에 이른다지만, 북핵 등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제대로 대책을 세우고 장기적으로 수선하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문제는 그 문제가 쌓인 시간만큼 고치는 데도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일부 표본조사보다는 전수조사가 더 믿을 수 있다. 몇몇 선별된 데이터보다는 빅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연구가 더 설득력이 있다. 한 번의 단기 연구보다는 한 주제에 대한 장기적 연구가 더 예측력 강한 이론을 만든다. 우리나라 연구 대부분이 단기적이고 단발성적일 때, 최근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1980년대에 사회학 강의를 들은 학생들 1000여 명의 생활과 의식을 199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간 꾸준히 추적 조사를 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장성한 학생들 중 정치적인 학생일수록 사회봉사에 소극적이라는 일부 결과를 내놨다. 정치과잉화가 사회에는 도움이 덜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버드 대학은 대학 차원에서 1939년부터 1944년 사이에 하버드를 다닌 학생들 268명을 79년 간 추적 조사했으며, 가족, 친구,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졸업생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 연구 결과는 사회 문제를 살필 때 최적의 자료가 된다.

세계적인 장기간 연구의 표본은 마시멜로 연구다. 마시멜로 연구는 1966년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 미셀 교수가 653명의 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비롯됐다. 미셀 교수는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1개를 주고 지금 먹고 싶으면 1개를, 15분을 안 먹고 참으면 2개를 준다는 실험을 했고, 인내하고 2개를 먹은 아이들과, 못 참고 1개만 먹은 아이들의 두 그룹으로 나눠서, 15년 후인 1981년, 그리고 43년 후인 2009년에 각각 그들이 어떻게 자랐나를 연구했다. 마시멜로 연구의 결론은 어릴 적 참을 줄 아는 아이가 커서 사회에도 잘 적응하고, 공부도 잘 하며, 직업도 좋은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 하나의 요인으로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인내심'만한 것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다 장기적인 마시멜로 시험 덕분이다. 지금도 미국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4세가 되면 마시멜로 테스트를 한다. 이때 아이가 인내심 없이 즉각 마시멜로를 먹어치우면, 부모는 성장 과정에서 '즉각적 만족(immediate satisfaction)‘보다는 지체된 만족(delayed satisfaction)’을 얻는 데 익숙하도록 아이를 교육하려고 노력한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나라에 적용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마시멜로는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과자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98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시절에, 헤슬러 박사라는 분이 내가 수강한 사회학 수업에 초청되어 특강을 했다. 이 분은 미주리 한 시골 마을의 모든 60세 이상 노인들(매년 새로 60이 된 노인들과 사망한 노인들의 데이터를 갱신함)의 건강, 가족관계 등을 데이터로 만들어 누가 오래 사는지에 대한 수명 연구, 일명 장수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헤슬러 박사는 20년 넘게 같이 연구하던 스승 본인도 연로하여 작고하자 그의 연구를 이어 받아 계속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 그의 스승 연구 결과는 노인 곁의 ‘가족’이, 자신이 수행한 1980년대부터는 가족보다는 노인의 ‘소일거리’가 장수 비결이었다고 한다. 햇수로 30년이 넘었던 당시 헤슬러 박사의 연구는 미국 사회 변화의 양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오래 살려면 가족보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게 당시 미국에서 일어난 사회 변화였던 것이다. 그만큼 미국 가족의 친밀도가 과거보다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1967년 인종 차별에 불만을 품은 흑인 소요 사태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자, 미국 정부는 일리노이 주지사 커너(Kerner)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 뒤인 1968년에 ‘커너 보고서’를 내놨다. 무려 1483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였다. 이는 링컨의 노예 해방 이후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 종합적 진단서였다. 그 보고서의 한 내용이 미디어의 흑인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가 미국인의 인종 차별적 인식을 주입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후 미국 신문편집인협회는 흑인의 시각이 언론에 반영되도록 흑인 기자를 각 언론사에서 더 많이 고용하자는 운동을 벌였고, 미국 신방과에게 흑인 학생을 더 많이 배출해 줄 것을 건의했다. 그리고 매년 흑인 기자 비율을 언론사 차원에서 관리했다. 이게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킬 정도로 수십 년 동안 효과적이었는데, 최근의 미국 흑백 갈등이 재발한 것은 무언가 다른 요인 때문일 것이므로, 미국은 다시 요산식 장기적 연구와 대책을 진행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일본은 수백 년 이어가는 가업(家業) 문화가 성행한다. 삿포로 우동집들은 몇 백년 동안 수 대째 이어져 오는 가게들이 숫하다.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는 일본은 우리와 달리 과거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직업 선택,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없어서 한 번 가업은 자손 대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분명 과거 일본의 봉건 시대에는 그랬을 것이다. 이런 전통이 일부 분야에서는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가업이 이어져, 현 아베 신조 총리는 만주국 책임자로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극우적 개헌에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아베 신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러나 그런 걸 탓하기 전에, 우리는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일본의 가업 문화가 한 가지 연구 주제에 천착하게 하는 일본 과학계의 ‘요산적 연구 풍토’로 발전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결과,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2명(과학/의학 분야만, 문학상 등 전체 노벨상 수상자는 26명)에 이르게 됐다. 의학/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22 대 0이라는 한일 간의 차이가 2017년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에 더더욱 크게 가슴에 와 닿는다. 노벨상 수상자 수 22 대 0은 세상을 보고 세상을 사는 방식이 바로 요수 식이냐 요산 식이냐의 한일 간 차이의 결과임을 우리는 2018년에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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