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유기'로 보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 이번에는 추락 사고로 스태프 하반신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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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유기'로 보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 이번에는 추락 사고로 스태프 하반신 마비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7.12.3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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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제작 환경의 개선을 위해 추가 제작 인력 보강 중" / 신예진 기자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이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과연 ‘생방송 촬영’으로 악명 높은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 솟아날 구멍은 있을까.

지난 23일 첫방송한 tvN드라마 <화유기>가 장벽에 부딪혔다. 지난 23일 새벽 2시 경기도 용인의 <화유기> 세트장에서 세트 작업을 하던 스태프 A 씨가 추락한 것. 3m 높이에서 떨어진 A 씨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A 씨는 <화유기> 제작사인 JS 픽쳐스로 용역을 나온 현장 팀장으로 MBC 아트 미술팀 소속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CJ E&M은 부랴부랴 공식 입장을 내고 사과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CJ E&M의 소극적인 사태 수습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추락 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방송을 강행한 점, 사고 관련 보도가 나자 회사가 뒤늦게 사과문을 내고 공식 입장을 낸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A 씨의 가족은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화유기> 제작진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 우리 가족에게 말 한마디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A 씨의 사고가 단지 작업 중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A 씨의 피로 누적과 현장의 부실한 자재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 A 씨는 두 달 가까이 하루 17시간 근무했으며, 현장에서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부실한 자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A 씨는 사고 당시 안전 장비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한다.

배우 차승원도 <화유기> 제작발표회 당시 “드라마 현장이 굉장히 타이트하고 피곤하다”며 “숨 쉴 틈 없이 돌아간다”고 말한 바 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에겐 어쩌면 예견된 사고인 셈.

CJ E&M tvN의 제작 환경은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지난해 10월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故이한빛 PD가 입사 9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 이 PD는 장시간 노동과 언어폭력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CJ E&M 측은 제작 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사고로 봤을 때 당시와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하다.

지난 23일 첫방송한 tvN <화유기>가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으로 구설수에 올랐다(사진: 화유기 페이스북 캡쳐).

잊을 만하면 터지는 드라마 제작 환경 문제에 드라마 업계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은규 전 MBC 드라마 국장은 미디어오늘을 통해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방영할 여건이 안 되는데도 밀어붙인 결과”라며 “CG가 많이 들어가는 등 전형적 형식이 아닌 드라마의 경우, 사전 제작이나 반(半)사전 제작으로 가는 방향이 맞다”고 밝혔다. 전진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화유기> 사고는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을 그대로 보여준 방송 사고”라며 “더 이상은 사람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촬영의 질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도 <화유기> 제작 중지 및 원인과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지난 27일 공식성명을 내고 "미술감독이 직원에게 요구한 샹들리에 설치는 용역 계약에 포함되지도 않은 일이었다”며 “게다가 당사자가 야간 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돼 있어 다음 날 설치하겠다고 부탁했음에도 설치를 강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제는 결국 청와대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방송사의 드라마 촬영 환경 개선’이라는 제목의 민원이 제기된 것. 민원인은 “이번 방송 사고는 아주 오래되고 고질적인 방송가의 문제가 드러난 경우”라며 “연기자들과 스텝들이 최소한의 휴식과 안전한 환경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청원 이유를 밝혔다. 해당 청원은 29일 기준으로 800명의 공감을 얻었다.

빗발치는 비판에 직면한 tvN은 29일 한 차례 더 공식 입장을 내고 공개 사과했다. 더 나은 드라마 제작 환경도 약속했다. tvN은 “촬영 현장에서의 스태프 부상 등 <화유기> 제작 과정 상의 문제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시청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현재 제작 환경의 개선을 위해 추가 제작 촬영 인력을 보강하고 추가적인 세트 안전 점검을 통해서 촬영 환경과 스태프들의 작업 여건, 제작 일정을 다각도로 재정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화유기> 논란은 현재 고용노동부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 28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스태프 추락 사고 현장을 방문해 사고 원인과 사후 안전 조치에 대해 조사했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면 <화유기>는 그대로 막을 내려야 한다.

<화유기> 제작사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MBC 아트는 29일 JS픽쳐스의 법인, 대표, 미술감독을 경찰에 고발했다. 업무상 과실치상, 공갈, 협박 등의 혐의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기도 안성경찰서는 오는 1월 3일 사건 현장에 있던 목격자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tvN <화유기>는 오는 30일 방영 예정이던 3화를 결방한다. tvN은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작 환경을 보다 면밀히 점검하기 위해 30일 방영 예정이던 3화 편성을 최소 1주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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