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맞이 특집 칼럼] 새해엔 사자처럼,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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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 특집 칼럼] 새해엔 사자처럼,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가라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12.3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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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26) 무술년(戊戌年) 새해 아침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 편집국장 강동수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만복(萬福)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본지는 강동수 편집국장의 신년 맞이 특집 칼럼 '강동수의 자투리 시사인문'으로부터 새해 원단(元旦)의 문을 활짝 엽니다. 

1.

편집국장 강동수

자동차로 꽉 막힌 거리에서 출근 길 운전하던 한 사내가 갑자기 눈이 멀었다. 멀쩡하던 눈앞에 하얀 막이 깔리더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 이 사내에게서 비롯된 눈병은 삽시간에 온 도시로 전염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괴질에 민심이 흉흉해졌다. 정부가 대처한 방법은 오직 하나. 감염자들을 격리해 가두고는 총 든 군인을 시켜 감시하는 일이었다.

눈먼 자들이 격리된 수용소는 지옥으로 변해 간다. 배설물과 쓰레기가 뒤덮인 병동은 악취로 가득 찬다. 그 와중에 억압과 착취가 발생한다. 수용자 중 몇몇 악당이 보급품을 가로채고는 다른 수용자들에게 음식을 얻으려면 돈과 보석을 내놓으라고 위협한다. 급기야 여성 수용자들의 몸까지 요구한다. 강탈과 강간, 폭력과 살인으로 얼룩진 수용소는 적나라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돼 버린다…….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앞 대목 줄거리다. 이 소설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 그리고 문명이란 게 얼마나 허약한가를 눈먼 자들의 수용소란 공간을 배경 삼아 극적으로 그려낸다. 현대 문명에 대한 통렬한 야유이자 자성의 목소리일 터. 인간 본성의 천박성을 묵시록적으로 경고하는 게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지만, 눈을 돌려 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도처에 널려 있다.

주제 사라마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새해 첫날, 온갖 덕담을 던져두고 하필이면 이런 우울한 소설 이야기부터 꺼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하는 새삼스런 자괴감 때문이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는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사태로 지지난해 가을 촉발된 ‘촛불 집회’는 해를 넘겨 지난해 초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됐고, 이어서 대통령이 감옥에 직행했음은 다들 기억하는 대로다. 그리고 숨 가쁘게 이어진 대선 선거운동 끝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돼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한 해는 새로운 희망을 펼친 시간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혼란과 진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박근혜 정권의 온갖 적폐가 까발려지고, 한때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줄줄이 오랏줄에 묶여 구치소에 들어갔다. 좀 지나면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난 정권의 권력 실세들에 대한 선고가 내려질 것이다. 하고 보면, 우리 사회는 새해에 접어 들어서도 당분간은 서툰 요리사가 어질러 놓은 부엌의 뒷설거지를 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소모해야 할 모양이다. 게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차하면 사법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니 올 한 해도 검찰과 법원에 쏠린 국민들의 시선이 쉽게 거두어질 것 같지 않다.

그것 뿐도 아니다. 지난 연말에 줄줄이 터져나온, 박근혜 시대의 각종 국정 혼란상은 새해에 들어서도 계속 논란의 핵심이 될 것 같다. 글쎄, 현 정권에 의해 줄줄이 까발려지고 있는 지난 시대의 난맥상은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다. 2015년 12월, 수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밀어붙였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협상이 졸속과 강압으로 이루어졌다던가. 그리고 이면 합의가 없었다는 증언도 거짓말로 드러났다던가. 그뿐도 아니다. 느닷없이 발표됐던 개성공단 폐쇄도 알고 보니 응당 따라야 할 헌법적 절차가 생략된 채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독단적으로 결정해 해당 부처에 통보했다던가. 각종 민간위원회가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듣다보면, 이 나라가 도대체 공화국이었던지, 왕조국가였던지 아리송해질 지경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들이 2016년 12월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개성공단 폐쇄 결정 과정에 최순실 씨의 비선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특검 수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외국과의 중요한 현안의 협상을 주무장관인 외교부 장관을 제쳐 놓고 국정원장·대통령 비서실장이 밀실에서 상대국 관리를 만나 멋대로 요리했다는 것, 멀쩡히 가동되던 개성공단의 폐쇄를 통일부 의견 한 번 묻지 않고,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 한 번 하지 않은 채 대통령 독단으로 덜렁 결정해 버렸다는 게 아닌가. 청와대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로봇처럼 성명문을 대신 읽기나 한다면 장관이 왜 필요하고, 내각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글쎄,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위안부 협상이나, 개성공단 폐쇄가 박 전 대통령의 소신과 결단(?)에 따른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끝내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무장해제당했던 모습이나 재판 과정에서 자기 일인데도 ‘먼 산 불 보듯’ 초연(?)하기만 했던 언행으로 미루어 보면, 그에게 그런 국가중대사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만한 지성이 있었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매우 사적으로 박 대통령의 귀에다 정국 돌파의 수단으로 그런 조치를 밀어붙이라고 쑤석였을 것이란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그 누군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어쨌거나, 1년 전, 아니 겨우 열 달 전까지 그런 사람의 통치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내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수용소에 갇힌 ‘눈 먼 자’들이 아니었던가 싶어 등골이 새삼 오싹해진다. 어쨌거나 그만하기 다행이다. 그래도 우리들은 끝내 눈이 멀지는 않아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수용소에 가득 찼던 배설물과 쓰레기를 하나, 하나 치워가고 있다. 저 자신도 눈이 먼 주제에 다른 수용자를 괴롭혔던 수용소 속의 악당들에 대한 단죄도 이뤄지고 있다. 하여튼 모든 것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다.

 

2.

새해를 맞는 벅찬 감회를 담아야 할 글에서 지난 시절에 대한 자괴어린 회고가 너무 장황했다. 하지만 새해의 기쁨과 희망을 말하려면 우리가 넘어 온 고달팠던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보는 절차가 앞서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새해가 밝았다. 서기 2018년 무술년(戊戌年). 지금은 잊히고 만 연호이지만 단기(檀紀)로는 4351년이다.

무술년을 일러 속설로 ‘황금개의 해’라고도 한다. 왜 그렇게 부를까. 그 뿌리는 동양 전통의 철학 체계인 ‘음양오행설’에 근거하고 있다. 무릇 음(陰)과 양(陽)이 조화를 이뤄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 우주는 물(水),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라는 5대 원소로 이뤄져 있다는 게 동양의 우주론이다. 그래서 음과 양이, 오행이 서로 충돌하고 융화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빚어낸다는 거다.

천간(天干)에 해당하는 무(戊)는 오행의 흙(土)에 속한다. 오방색(五方色)은 동쪽을 뜻하는 청(靑), 남쪽의 적(赤), 서쪽을 뜻하는 백(白), 북쪽을 뜻하는 흑(黑), 그리고 중앙을 뜻하는 황(黃)으로 이뤄져 있는데 흙은 곧 ‘황’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황토빛깔을 떠올리면 될 일이다. 황(黃)은 중앙을 뜻해서 왕조시대엔 황제의 색깔이었다. 그래서 자고로 변방 제후국의 왕들은 노란색 옷을 입지 못했던 것. 노란색은 또 황금의 색깔이다. 12간지 동물 가운데 개를 뜻하는 술(戌)도 사주오행에서 보면 양(陽)과 흙(土)에 각각 해당한다. 그래서 무술년을 ‘황금 개의 해’라는 것.

역리학자들은 오행에서 색깔이 큰 의미는 없다지만, ‘황금’의 해라니 나쁠 것은 없겠다. 게다가 열 두 동물 가운데 개는 에너지가 강한 양(陽)의 동물로 우두머리의 속성이 돋보인다니 황(黃)의 기운을 더해 줄 것 아닌가. 개란 동물 역시 수만 년 인간을 따른 충직한 동물이니 올해는 상서로울 해가 될 것 같다는 섣부른 기대를 가져 보는 것이다.

2018년은 황금 개의 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글쎄, 내가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올해가 명리학적으로 괜찮은 해가 될 거라는 게 역리학자 다수의 의견이라는데 바로 올해가 '황금개의 해'여서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해인 정유년(丁酉年)을 ‘닭이 불벼락을 맞는 해’로 표현한 역리학자가 있었다는데, 지나고 보니 탄핵이니 뭐니 해서 이 표현이 딱 들어맞았던 셈이다. 그런데 그의 예측에 따르면 올해는 ‘개가 날아오르는 해’라고. 날아다니는 짐승이 아닌 개가 하늘로 나를 만큼, 하나의 힘이 굉장히 강해진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거둘 성과도 기대할 만하고, 경제도 살아난다고 하니 일단 귀는 솔깃해진다. 해외 수출이 늘어나고 시장에 돈이 돌며 내수경제 전망이 지난해보다 훨씬 낫다고 예측하는 역술가들도 있다.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이 약진한다고. 단, 부동산 투기는 별 재미를 못 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지방선거 결과까지 예측한 걸 귀동냥했지만, 여기서 공개하는 건 삼가겠다. 왜냐? 공연히 선거법 위반으로 잡혀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하나만 귀띔하면, 자유한국당이 국민의당·바른정당 연합과 보수표를 놓고 각축을 벌인다고 한다. 외교관계로 보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겠지만, 대일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하기야, 벌써부터 ‘위안부 재협상’이란 험준한 암벽이 나타났으니 그 예측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아차차, 계속하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경을 칠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그치겠다. 아, 하나만 더.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는 주관이 강하고 리더십이 강해 대한민국 미래의 재목이 될 거라고 한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많이 낳으시라.

 

3.

역(易)을 빙자해 농담 섞은 새해 덕담을 잠깐 늘어놓았으니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자.

올해 한국 사회가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게 높다는 건 누구나 다 짐작하는 일이겠다. 지난해에 벌여놓은 ‘적폐 청산’이란 이름의 설거지도 올해는 끝내야 할 게다. 청산은 철저히 하되 너무 오래 끌어선 될 일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 사람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빨리 매듭지어야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로서도 계속 전선을 확대하기보다는 청산이 꼭 필요한 과제를 골라서 속전속결로 끝내고 새로운 국정 과제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국내적으로는, 정부는 문 대통령이 제1과제로 언급한 일자리 창출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취직이 안 돼 음지에서 시들어가는 청춘들을 생각하면 이보다 다급한 과제도 없을 것이다. 한, 두 해에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올해는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디딤돌은 착실히 놓아야 할 것임을 대통령과 정부는 명심할 일이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상생의 길을 놓는 것도 시급하다. 건강보험 혜택 확대로 대표되는 이른바 ‘문케어’를 비롯한 사회 안전망의 확충도 시급하겠다.

정치적으로는 6월 지방선거도 잘 치러야겠거니와 지지부진한 개헌 논의에도 가속을 붙여야 할 듯. 개헌은 일단은 국회의 몫이지만 대통령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잘 의논해야 할 터이다. 이제는 시효가 다한 ‘87체제’를 정비해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로를 깔끔히 닦아야 할 때가 아닌가.

국외 문제도 만만찮다. 지난 한해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였던 북한의 핵 도발은 올해도 문재인 정부를 계속 괴롭힐 것 같다. 김정은이 도발을 계속할 거냐, 아니면 대화 테이블로 나올 거냐는 지금 예측하기는 어렵다. 트럼프와 아베의 스탠스에 계속 끌려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과 양자 담판을 지을 형국도 아닌 문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앙금이 남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한다. 엄중한 동북아 정세 앞에서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험난한 파고를 넘을지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라 안팎의 일을 막론하고 부디 정성과 지혜를 발휘해 달라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탁할 밖에.

새해를 맞았으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덕담을 겸해 한마디 경구를 선사하겠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 <숫타니파아타>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글쎄, 새해에도 문 대통령이 씨름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숱한 국정 과제를 이행하자면 장애도 적지 않을 거고, 기득권 세력의 태클도 만만치 않을 거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살피되 지나치게 좌고우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덤불이 있으면 덤불을 쳐내가며 길을 내는 것이 ‘개척자’에게 맡겨진 소명이 아닌가. 부디, 소리에 놀라지 말고, 이런 저런 그물에도 걸리지 말고, 그래서 흙탕물에 빠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앞을 보고 가기를.

아프리카 코뿔소(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에겐 19세기 태국에 살았던 쳉과 앙투케란 이름의 샴쌍둥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두 사람은 평생을 붙어 살았는데, 쳉은 고집쟁이인데다 술 주정뱅이였다. 앙투케가 보기엔 쳉이 너무나 무책임했다. 그래서 날마다 술 마시지 말고 착실하게 살라고 완고한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쳉은 앙투케의 잔소리에 진력난 나머지 술을 더 마셔댔다. 그러다 큰 병에 걸렸는데 술이라곤 입에 대지도 않던 앙투케까지 한날 한시에 죽어버렸다. 왜냐고? 두 사람은 위장 하나를 함께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여당의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에도 요령이 있다. 무턱대고 비난만 하거나 완고한 반대만을 되풀이해선 오히려 역효과를 부른다. 여야는 국민이란 이름의 위장으로부터 영양을 함께 공급받고 있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정부를 지나치게 공격하면 야당도 망한다. 그것은 결국 '대한민국호'의 좌초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부디 시대에 맞게 새로운 보수의 깃발 아래 당의 이미지를 일신하고 건전한 야당의 길을 찾기 바란다.

이왕 말난 김에 여야의 의원들과 높은 분에게도 한 말씀 인심 쓰겠다. 어느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했다. “너는 네가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거라.” “왜 내가 옷걸이라는 걸 그렇게 강조하는 거야?”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착각하고 교만을 떠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봐 왔거든.” 옷은 국민이다. 그걸 잊었다가 지금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잡혀 들어간 정치인이 어디 한 둘인가. 옷걸이는 옷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한시도 잊지 말기를.

 

4.

새해가 밝았다. 세상을 고요하게 덮어주었던 어스름이 걷히고, 햇살이 누리를 찬란하게 밝히는 아침이 왔다. 저 햇살이 지난 한 해 우리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허위와 불신, 갈등과 환멸의 상처를 따뜻하게 아물게 하는 치료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어디 나 뿐이겠는가.

올해는 우리 사는 세상에 귀청 따가운 아우성 대신 적요(寂寥)의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따질 것은 따지고, 고칠 것은 고치더라도 아우성과 삿대질 대신 서로를 향한 시선에 이해와 존중이 담겼으면 좋겠다. 영성이 깃드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진짜로 어려움을 헤치는 길은 다시 수출을 늘리고, 주식 값을 올리고,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는 데만 있지는 않을 터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 물신에서 벗어나 영성을 회복하는 사회, 진정한 휴머니즘의 리더십이 있는 나라….

사라마구의 소설이 비극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은 동료들의 손을 잡고 수용소를 탈출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사랑과 배려의 작은 공동체를 만든다. 눈먼 자들이 다시 눈뜨는 이 소설의 에필로그는 인상적이다. 그들은 눈 멀기 전의 편견과 인습에서 비로소 해방돼 동료를 진정한 인간으로 재발견한다.

속절없는 소리일는지 모르지만, 눈먼 우리가 다시 눈뜨는 세상을 꿈꿔 보는 지금은 새해 아침이다. 그렇다. 새해엔 이념 대결에, 그리고 독선과 아집에 눈 멀었던 우리가 그동안 적대했던 이웃에게서 사랑과 배려로 함께 공동체를 일굴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는 개안의 시간을 맞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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