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의 불법주차,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의 차량 압류...한국은 ‘소도둑’ 욕할 수 없는 ‘바늘도둑’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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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의 불법주차,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의 차량 압류...한국은 ‘소도둑’ 욕할 수 없는 ‘바늘도둑’ 세상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7.12.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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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정태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해 탑승객 476명 중 299명이 사망했고, 최종 미수습자는 5명이었다. 사람들은 단원고의 어린 학생을 248명이나 희생시킨 이 사고가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人災)였다는 점에서 땅을 치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구체적인 원인으로 무리한 화물 적재, 배의 불법 증축, 관제 시스템의 허술함, 정부와 해경의 초동 대처 미흡 등이 지적됐고, 이로 인해서 선장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등 많은 관련자들이 처벌됐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것도 세월호 사고와 무관치 않았다.

세월이 흘러 2017년 12월 4일, 인천 영흥도 근방에서 낚싯배와 급유선이 충돌해서 15명이 사망하는 해상사고가 또 발생했다. 여기서도 두 배의 전방 주시 태만, 금지 항로 항해 등의 안전의식 결여가 문제가 됐고, 조직을 해체시키면서까지 지탄을 받았던 해경이 이번 사고 때도 즉각 출동하지 못했으며, 해경의 특수구조대는 육지로 멀리 돌아가서 1시간이 넘어서야 현장에 도착하는 등 골든타임을 놓지는 실수를 반복했다.

여수 팽목항에 설치되어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리는 소도둑은 잘 잡는다. 전두환의 정권 도둑이나 박근혜의 국정 도둑, 그리고 삼성이나 이번 롯데 등 재벌의 수백 억 현금 도둑들은 잘 잡는다. 이들의 도둑질은 잡으려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고, 대개 이런 소도둑은 잡아 없애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뚜렷하기에 잡기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소도둑 잡으면 국가 시스템이 정비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그토록 분통을 터트렸던 안전불감증을 아직도 잡지 못한 것은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지킬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 일반 공무원, 보통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국민 각자가 지켜야할 안전 수칙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 국민들 스스로가 언제 울분을 터트렸느냐는 듯이 지키지 않은 작은 바늘도둑질이 악순환하고 있었고, 그게 또 영흥도 낚싯배 사고를 일으켰다.

최근 평택 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면서 세 사람이 죽었다. 이 타워크레인은 안전점검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지 불과 8일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만 크레인 사고로 19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무언가 허술하다. 알고 보니, 대형 건설사들은 타워크레인을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이를 임대 업체에게, 임대 업체는 다시 이를 도급 업체에게 단가를 후려쳐서 운전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타워크레인 사고 뒤에는 인재의 냄새가 진동한다. 전국에는 6000여 대의 타워크레인이 가동 중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타워크레인은 또 넘어질 게 뻔하다.

12월 9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의 한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쓰러져 공사 현장 관계자들과 경찰들이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 사고로 타워크레인 높이 78m 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7명이 지상으로 추락했으며, 이 중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12월 21일,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불이나 29명이 죽었다. 여러 요인들이 사망사고 원인으로 지적됐지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건물 주변에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사다리차 진입이 지체됐다는 점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방청은 출동 당시 스포츠센터 건물 주변의 불법 주차로 지휘차와 펌프차만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인명을 구해야할 사다리차 등은 500m를 우회해서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초기에 인명 구조가 늦어진 원인은 바로 불법주차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골목길은 모두 불법주차장이다. 그리고 불법주차라는 바늘도둑질은 정권이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가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내 눈에 보였다. 대법관 후보자 부부가 합계 50여 차례 주정차 위반과 과태료 처분, 자동차세 체납 등으로 인해, 민 후보는 4차례 차량 압류를 당했고, 배우자라는 사람은 19년 동안 20여 차례나 차량을 압류당했다고 한다. 민 후보자는 이들 차량이 대부분 전속 운전기사가 몬 것이어서 자신이 잘 몰랐다고 답변했다.

나는 소위 ‘쇼퍼 드리븐 카(chauffeur-driven car)’, 즉 성공한 사람의 상징인 기사 딸린 차의 세계를 잘 모른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태우고 기사가 모는 차가 교통법규는 지키는지, 정해진 주차구역에 주차하는지, 세금은 꼬박 내는지, 과태료는 물었는지 십수 년 동안 기사에게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단 말인가? 하도 높은 데 임해서 저 아래 발밑에서 벌어지는 세계를 볼 수 없었고 볼 필요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분의 속마음이 정말 궁금하다. 대법관 후보자로서 큰 도둑을 잡을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타고 다닌 기사 딸린 차량이 일반인도 당하기 어려운 '차량 압류'라는 바늘도둑질을 수차례 범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촛불 민심은 국정 운영이 잘못되었으니 소도둑 잡아달라는 국민의 염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촛불 민심도 개개인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나라의 적폐는 대통령, 장관, 정치인, 재벌의 잘못만 청산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다. 바로 일반 국민들의 작은 바늘도둑질, 즉 생활 적폐가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안전불감증, 불법주차, 하도급의 하도급, 과태료 체납 등이며, 이들은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선에 이르면 대형 사고로 터지게 된다.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 theory)’이 있다. 한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유리창이 깨진 차를 뉴욕 골목길에 방치하자, 사람들이 타이어 등 자동차 부품을 도둑질해 가는 등 자동차가 마구 파손됐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된 실험에서, 유리창이 멀쩡한 차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간 동안 방치했을 때 나타나는 손상은 깨진 유리창을 가진 차를 방치했을 때보다 훨씬 적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이론이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제임스 윌슨이 만든 ‘깨진 유리창 법칙’이다. 조그만 흠이 있으면 이는 점점 더 큰 흠으로 번진다는 이론이다.

한 건물의 깨진 유리창이 오래도록 방치되면 이는 그 조직의 치명적인 문제를 상징하게 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뉴욕 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는 1995년부터 이 이론을 이용해서 뉴욕 지하철을 청소하고 거리 환경을 깨끗하게 정비해서 뉴욕의 범죄율을 확 낮추는 효과를 봤다. 그 덕에 인기가 올라, 그는  2001년에는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고, 2008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오르기도 했다. 경영학자 마이클 레빈은 이를 경영에 적용해서 기업은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약점을 방치했을 때 망한다고 했다.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 방파제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새는 것을 손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소년의 설화와 같은 원리다.

일본의 대마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일행의 한국인 가이드는 내가 만난 여행 가이드 중 최고로 의식 있는 분이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녀는 우리 일행에게 대마도 이즈하라 읍의 다운타운 뒷골목, 즉 쓰레기통이나 가스통이 놓여 있는 업소의 뒷문이 있는 뒷골목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휴지 한 조각 없었고, 여러 업소의 쓰레기통이 심지어 줄까지 맞춰져 있었다. 일본 민족은 바늘도둑이 기승을 부리기가 참 어려운 나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다시 바닷가 선착장으로 데려가서 크고 작은 고깃배를 보여주며 일본 고깃배는 배의 안쪽은 물론 배의 바깥쪽도 번쩍번쩍하게 깨끗이 청소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가이드가 우리를 이렇게 안내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일본 수산업 관계자가 부산을 방문했을 때 자갈치 시장을 안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들이 한국 고깃배들의 배 옆면이 다닥다닥 붙은 조가비와 해초로 지저분한 것을 지적하며 저렇게 더러운 배로 고기를 잡겠다니 제 정신이냐며 혀를 차더란 말을 전했다. 배 바깥을 청소하는 어부가 단 한 명이라도 우리나라에 있을까? 일본 수산업 관계자의 눈에 한국 고깃배의 더러운 옆면이 깨진 유리창으로 보였던 것이다. 우리 가이드는 한국과 일본 어부의 마음가짐 차이를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우리 일행 모두는 가이드가 지적한 한일 간 차이에 크게 공감했다.

일본 거리는 전국 어디를 가도 그저 깨끗하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나는 미국 유학 시절에 고참이 되면서 신참 유학생들이 차를 사고파는 일을 도운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끼리 차를 사고 팔 때는 시청에 차량 값을 0원, 또는 ‘gift(증여)’라고 써서 공증을 받아 신고한 적이 한두 번 있었다. 실제로는 돈을 주고받았지만, 차를 사고판 당사자들이 증여했다고 상호 동의 하에 공증까지 해서 시청에 차량증서를 제출하면, 시청은 군말 없이 차 구입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만큼 구입자는 시청에 낼 세금을 절약할 수 있고, 판 사람은 세금 액수보다 악간 적은 액수를 구입자로부터 더 받는 이익을 취하게 된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런 일'은 가난한 유학생 시절에 한 푼이라도 아낄 요량에서 한두 번 그렇게 하도록 도와 준 것이었으며, 이는 차값이 우리 돈으로 몇 십 만 원 정도의 고물차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지, 수백 만, 수천 만 원짜리 차를 이렇게 편법 처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한국 유학생과 미국 일반인과의 차량 거래를 도와줄 때 이런 ‘수법’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고작 수십 만 원짜리 차를 사고파는 서민일지라도 미국 사람은 절대 그런 편법이나 탈세에 동의하지 않았다. 다운 계약서 작성이 지위 고하를 안 가리고 일어나는 우리나라와 미국은 상당히 종류가 다른 나라였다. 

우리나라에는 바늘도둑질이 넘쳐난다. 거리에는 휴지와 담배꽁초 투성이다. 대학생들의 부정 행위, 대리 출석도 여전하다. 미국에서는 어린이들에게 건널목을 건널 때 운전자의 눈을 보라고 가르친다. 보행하는 어린이와 눈이 마주친 운전자는 차를 멈추게 되어 있으며, 절대로 어린이를 향해 차를 돌진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은 운전자의 눈을 볼 수 없다. 차유리가 온통 검기 때문이다. 밖에서 안이 전혀 안 보이게 검게 코팅한 차는 불법이다. 

우선멈춤 교통표지판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멀쩡한 붉은 신호등에도 차들이 잘 안 멈추는데, 허수아비 같은 멈춤 표시판에 차를 멈출 한국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설치 비용이 비싼 신호등 대신에 차량 통행이 적은 곳에는 멈춤 표지판을 수두룩하게 세운다. 그들 운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보행자가 있든 없든 멈춤 표지판을 신호등처럼 여기고 우선 멈췄다가 좌우를 살핀 후 가기 때문이다. 나는 유학 시절 미국 대학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 대학 구내 도로를 지켜 본 적이 있다. 보행자가 한가한 그곳에는 멈춤 표지판이 서 있었고, 대부분의 차량들은 보행자가 없어도 멈췄다가 지나갔다. 그런데 간혹 사람이 없다고 멈춤 표지판을 무시하고 획 지나가는 운전자가 있었다. 그런 운전자는 어김 없이 한국 유학생이었다. 그 모습을 같이 본 선배 한국 유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미국에서 교통 신호를 안 지키는 건 역시 '엽전'들 뿐이구먼."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도둑질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공사장, 영업장소, 도로, 학교, 관공서, 공공장소 등에서 안전의식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이상하게도 그런 상태에서 화재가 나거나 낚싯배가 전복되면, 우리는 또 자기를 제외한 모든 남, 또는 국가를 상대로 울분을 토한다. ‘내로남불’ 같은 고질병이 우리에게 있는 게 분명하다. 이게 생활 적폐다. 우리는 모범생이 손해 보는 나라다. 제발 차들은 깜박이나 켜고 다녔으면 좋겠다. 그런 작은 것으로부터 모든 인재가 비롯된다. 소도둑 잡으면 뭐하나, 나라 밑바탕이 온통 작은 바늘도둑들인데. 이런 유행어가 생각난다. ‘민나 도로보데스(다들 도둑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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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2017-12-25 01:01:01
좋은 말씀이세요.이런 게 바로 공론화 되어야 하는데, 우매한 국민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했다가 다른 굣에서 소리가 들리면 일제히 달려가는 좀비들 같으네요. 대법관 후보자가 상습 범법자, 법규 파괴자라는 게 말이나 된답니까?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는 꼬라지!라니. 이 사람이 대법관이 되면 법규 잘 지키고 사는 소시민은 살 맛이 안 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나그네 2017-12-23 21:02:38
본인도 미국 유학시절에 불법을 자행한 사림이면서
가르치려 드니 황당하네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랄까...

shinwon 2017-12-23 09:33:49
마음에 와닿는 말씀입니다.

Won 2017-12-23 03:57:47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