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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올해의 인물이 트럼프 김정은 아니고 ‘미투 성추문 폭로자’인 이유

기사승인 2017.12.16  00: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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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한 해가 저문다. 미국 타임지는 매년 12월에 그해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을 선정해서 발표한다. 세계적 권위지의 중량감이 실린 타임지의 그해 올해의 인물은 세상의 역사적 변화를 상징한다.

예를 들어, 1982년에는 ‘컴퓨터’가 ‘올해의 기계(인물)’로 선정되었는데, 컴퓨터는 오늘과 같은 인터넷과 컴퓨터가 만든 3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막을 상징했다. 1988년에는 ‘올해의 행성’이란 이름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가 선정됐는데, 기후변화, 미세먼지, 해수면 상승 등 온난화로 신음하는 지구를 상징했으며, 지금까지도 지구는 타임지가 정의한 환경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011년에는 ‘항의하는 사람들(The Protester)’이 올해의 인물이었는데, 이는 소득 상위 1%가 부의 99%를 차지하고 있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왜곡된 구조에 저항한 월가 항의자들을 지칭했다. 몇 년 뒤인 2014년 프랑스 경제학자 토미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란 책을 내고 노동이 돈을 버는 게 아니고 돈이 돈을 버는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도 자본주의는 작동하고 있으며, 분배의 불평등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짹깍짹깍 폭발 시각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역사상 불가능할 것이라던 미국의 흑인 대통령 탄생의 주인공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올해의 인물이었고, 그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사상의 만개를 의미했다. 2010년 올해의 인물이었던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는 인류의 새로운 소통 방법인 SNS 혁명을 대표했다.

컴퓨터는 1982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기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렇게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들은 인류 역사에 획을 그었다. 세계인들은 2017년 타임지가 선정할 올해의 인물이 트럼프인지 김정은인지에 대해 관심이 컸다. 만약 타임지가 트럼프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면, 이는 미국이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 미국우선주의 등으로 선회하여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사실은 부각했을 것이다. 반면에 타임지가 김정은을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면, 이는 곧 세계 3차 대전의 화약 냄새가 점점더 강해진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2012년의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러나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트럼프도 아니고 김정은도 아니었다. 보호무역주의와 세계 3차대전의 가능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타임지가 선정한 것은 바로 ‘침묵을 깬 폭로자들(The Silence Breakers)’이었다. 이들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피해를 고발한 이른 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 참여자들이었다. 타임지에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배우 애슐리 저드 등이 표지를 장식했다. 미국에서는 올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예계, 정치계, 그리고 방송계 미투 캠페인으로 인해서 알 프랑캔 상원의원,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 배우 케빈 스페이시, 방송 진행자 맷 라우어 등이 사과, 혹은 사퇴했다.

이제 미투 운동의 화살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트럼트 대통령으로부터 당했다고 공개된 여성만 17명에 이른다. 당사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을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 7년을 살아본 내가 알기로 미국 사람들의 양성평등 의식은 대단하다. 나는 미국 아파트 위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다가 자동차가 주차되면 남편이 운전석에서 나와 조수석으로 재빨리 뛰어 가서 문을 열어주어야 부인이 차에서 내리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한국 유학생들끼리 이런 광경을 같이 본 적도 있었는데, 우리는 미국 남자들은 남편 노릇하기 엄청 힘들겠다고 혀를 차곤 했다. 밤 8시 이후 미국 술집에서 남자들끼리 떠들고 술 마시는 사람들은 100% 별거 중이거나 싱글인 사람들이다. 가정 있는 정상적인 미국 남성이 그 시간에 부부 동반도 아니면서 직장 동료나 친구들끼리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미국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국 남자들은 한국이 남자들 천국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여자 인턴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고,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의 염문은 사실로 판명됐다. 아놀드 스왈제네거도 가정부와의 스캔들로 이혼당했고, 타이거 우즈는 불륜녀만 15명 이상이었다. 이태리 언론 재벌 총리 베르루스코니는 10여 명의 여성들과 난잡한 파티를 벌였다는 비디오가 공개되어 사임했다. 무언가 우리가 아는 서양, 특히 미국의 결혼제도가 절대 청교도적이지 않은 것 같고, 그런 경향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상류층 내지는 사회 지도층에서 더 심한 것 같다. 올해의 미투 캠페인은 서양 국가 지배 계층의 뽑히지 않은 남성우월주의, 마초문화에 대한 적폐 청산 같은 움직임이었다.

토마스 하디 작 <테스>는 19세기 영국 농촌에서 한 여인이 남자들의 희생양이 되는 잔혹한 생애를 그렸다. 그런 서양의 여성들이 <인형의 집>의 노라차럼 집을 뛰쳐나오고,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여성운동가들을 지칭하는 ‘서프러제트’ 시대를 지나, 남성과 같은 참정권을 얻기 시작했다. 1893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노르웨이는 1913년, 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 일본은 1945년, 프랑스는 1946년, 한국은 1948년, 스위스는 1971년, 쿠웨이트는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에 각각 여성이 참정권을 얻었다. 아랍권이 가장 늦고, 동양보다 서양의 여성 참정권 보장이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연도를 죽 살펴보면, 서양 여성도 사람 대접을 받은 게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다.

서양에 비해 동양의 남녀 차별이 더 심한 편인 것은 사실이다. 터키의 이스탄불 바자(거대 시장)에 가면 여자 종업원을 거의 보기 힘들다. 베트남 주부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남편이 퇴근하면 발을 씻겨준다는 말을 현지 교포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대장금> 드라마가 한국은 물론 특히 아시아를 강타한 것은 특히 여성으로서의 성공 신화를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올해 문화계, 영화계,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성추행, 성희롱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타임지는 미투 캠페인이 적어도 85개국 이상으로 확산되었다고 적었으며, 이것은 폭로한 여성들과 소셜미디어의 공로라고 소개했다. 결과적으로, 동서양을 불문하고 세계적 남성 지배 사회의 추악함과 여성의 유리천정에 막힌 무력감을 이제는 확실하게 털고 넘어가야 한다는 실천적 선언이 곧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이었다.

미국의 고고인류학자 이안 모리스는 <가치관의 탄생(Foragers, Farmers, and Fossil Fuels)>이란 책에서 인류는 에너지 획득 방식에 의해서 가치관이 결정됐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즉, 수렵채취 사회, 농경사회, 그리고 화석연료 사회가 그것이다. 에너지 획득이란 사회 환경이 이렇게 3단계로 역사적으로 변화하면서 인간이 거기에 맞춰 문화적으로 진화한 결과가 곧 가치관이란 게 모리스의 학설이다. 그는 여성 차별, 또는 남성우월 의식이란 가치관을 그의 이론의 중심에 놓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수렵채취 사회는 집단이 작아서 정치적 위계가 약했고, 곡물 등으로 부가 축적되지 않아서 가족 개념이 약했으며, 따라서 남성이 여성을 강하게 통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농경사회가 도래하자, 남자는 농업 위주의 노동 주체가 되고, 여자는 요리, 임신, 수유 등 가사 노동 말고는 다른 직업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면서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었고, 재산 축적과 상속에 의한 가부장적인 계급과 재산 보호를 위한 국가 중심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경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남녀가 가장 불평등한 사회였다고 모리스가 지적했다.

산업혁명 사회에서는 각자의 사익 추구가 전체 사회에 유리하다는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농노제가 폐지되고 자유노동이 시작됐다고 모리스가 설명했다. 그리고 시장이 등장하고 남녀 모두에게 직업이 다양화되면서 남녀 평등사상이 싺텄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혁명, 민주주의가 발생한 것도 이 시기였다. 지금 우리는 산업혁명 시대의 막바지에 살고 있다. 남녀 차별은 저 멀리 지나온 농경사회의 유품인 것이다.

타임지가 올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목한 것은 남성우월사회를 뜻하는 각종 성희롱 추문 폭로였다. 타임지는 성추문을 쉬쉬하지 않고 공개한 용기 있는 여성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남성우월적 문화의 잔재를 없애는 사회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 용기 있는 여성들은 부적절한 성적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더 이상 관용하지 말라고 외쳤다. 타임지는 성희롱이라는 '공개된 비밀'에 소설 미디어가 목소리를 달아 줬다고 했다. 그리고 "받아 들여질 수 없는 일이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이들의 용기에 힘을 실어 줬다.

세계는 동력의 발명이란 1차 산업혁명, 대량생산이란 2차 산업혁명,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3차 산업혁명을 넘어, 인공지능이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이런 세계사적 전환기에 아직도 버리지 못한 성적 억압이란 농경사회의 유품 정리를 인류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하면,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은 적어도 그게 근육질 남성이 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마초문화’여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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