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을 향한 문 대통령의 라오펑요우(老朋友) 신청, 그러나 당당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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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을 향한 문 대통령의 라오펑요우(老朋友) 신청, 그러나 당당하게 하라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12.1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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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주성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2004년 홍콩 영화 <쿵후 허슬>은 도끼파라는 조폭 집단과 돼지촌에 숨어사는 무림의 고수들이 싸우는 판타지 액션이다. 이들이 펼치는 무공의 수법이 다소 황당해 헛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지만 세계적으로 수천 만 명의 관객을 모은 대히트작이다. 주목을 끄는 것은 영화의 무대로 장치된 이른바 ‘돼지촌.’ 수십 가구가 모여 사는 이 공동주택은 한국과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3층짜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한 가운데 운동장과 우물 등 공동시설을 삥 둘러싸고 연결된 모습이었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지만 중국에는 이런 모습의 공동체 집단 주택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남동부 푸젠성(福建省) 산악마을 일대에 산재한 토루(土樓)다. 흙이나 벽돌로 견고한 성처럼 세워져 있고 출입구는 하나밖에 없다. 한 채에 많게는 100여 가구, 약 8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사는데 1층은 응접실, 2층은 창고, 3층은 침실로 사용하며, 각 주택은 모두 안쪽으로 문과 창문을 내고 있다. 상공에서 보면 마치 원형 시설처럼 보이는데, 1960년대 미국 NASA는 인공위성을 통해 여러 개의 토루가 모여있는 것을 보고 중국의 미사일 발사 시설로 오판했다고 한다. 200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토루(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같은 푸젠성의 토루 뿐 아니라 중국 건물에는 한국 건물과는 달리 한가운데 네모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집채가 둘러싸는 형태의 구조를 가진 것이 많다. 그러니까 건물을 입 ‘구(口)’자로 네모나게 짓고 한 가운데를 텅 비워두는 것이다. 오피스 빌딩, 공공 건물, 심지어 호텔도 이런 형태의 것이 있다. 부동산에 눈이 밝은 한국인이라면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가서 이런 구조의 대형 빌딩을 보고 “땅값이 매우 비쌀 텐데 공간을 턱없이 낭비하네...”라며 혀를 차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중국의 전통 폐쇄형 가옥 구조는 사합원(四合院)이라 부른다. 토루처럼 집채는 모두 출입문을 안쪽으로 내고 바깥 쪽 벽은 담장 역할만 한다. 집채 바깥은 벽이 높을 뿐 아니라 남쪽 벽 높은 위치에 작은 창문 만 하나 내놓고 있어 집채는 성곽처럼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다. 사합원은 내부로는 개방되어 있지만 외부를 항해서는 철저하게 폐쇄적이고 방어적이다.

중국인의 이런 가옥 구조는 1년 내내 몰아치는 모래바람과 외부로부터 침투하는 도적과 귀신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합원 주거형태를 보여주는 미니어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780년 중국을 여행한 박지원은 그의 대표작 기행문 <열하일기>에서 “중국에 가보니 3리마다 성(城)이요, 5리마다 곽(廓)이 보였다”라고 기록했다. ‘성’은 일반적인 성채이고 ‘곽’은 그보다 좀 더 큰 성곽이다. 당시 조선은 마을 경계 표시로 장승을 세워놓았는데, 중국은 성곽을 쌓은 것이다. 박지원은 중국 사람에게 “왜 마을마다 성곽을 쌓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제대로 통역이 안돼 듣고싶은 답을 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은주(夏殷周)시대부터 현대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중국 땅에는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졌다. 호사가에 따르면, 지난 중국의 5000년, 18만여 일 간의 역사에서 평안했는 날은 2000년, 7만여 일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  2년 6개월에 한 번은 크고작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흉노족처럼 국경선 너머 이민족이 줄기차게 침공해온 것은 물론, 정권 교체기의 각종 반란과 봉기, 변경 지역에서 발생한 도적떼와의 전쟁 등 수많은 전투와 유혈 사태가 대륙 곳곳에서 잇달았다.

재산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싸움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간에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게 높은 담을 쌓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토루나 사합원 구조의 집을 지어 담장을 쌓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을 외곽에 옹성을 쌓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경선에 성곽을 쌓았다. 위성에서 육안으로 볼수 있는 유일한 지상의 구조물이라는 만리장성 외도 그중 하나다. 중국에는 각 도시마다 성곽과 성채를 세워져 있다.

만리장성(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중국에는 눈으로 볼수 있는 담장 말고도 중국 사람 마음 속에 있는 담장이 또 하나 있다. 중국에서 사업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고 하는 ‘꽌시(關系)’다. 담장이 담장안 내 편과 담장밖 적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면 꽌시는 자기 사람(自己人)과 담장 밖 기타 사람(外人)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자기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지만, 바깥 쪽 외인은 관심도 없고 인간관계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은 자기인과 외인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각종 선물들을 안긴 뒤 중국인으로부터 ‘꽌시를 맺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들의 심리적 이너서클에 들어갔다고 좋아하는 한국인 사업가들이 있으나 이는 착각이다. 여기서 꽌시란 겹겹이 쌓인 담장 중 가장 밖에 있는 담장 안쪽으로 겨우 발을 들여놓았다는 말일 뿐이다. 중국인은 이미 꽌시를 맺은 사람도 국경선 성곽처럼 멀리 있는 담장 안 사람과 집채 벽 담장 안 사람같이 여러 단계로 나눈다. 또 중국에는 “꽌시를 맺었다(有關系)”라는 표현 외에 “꽌시가 개선됐다(改善關系)”, “꽌시가 좋다(好關系)” 는 표현이 있다.

꽌시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펑요우(朋友, 친구)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친구란 서로 나이가 비슷하고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한다. 동기 동창, 회사 동료 등 가깝고 오래 사귄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믿음이 있다. 친구가 믿음을 잃게 하는 행동을 하면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친구 관계는 곧장 깨지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친구란 한국과 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사회생활 중에 만난 모든 사람이 친구다. 담장 밖 기타인(外人)이 모두 친구다. 중국 사람은 친구 사이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이용하고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이 ‘하오 펑요우(好朋友)’라고 할 때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믿음이 있는 친구가 아니라 “이제 알게됐으니 잘 해봅시다”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하오펑유우 다음 단계가 ‘라오펑요우(老朋友)’다. 오래된 친구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이 중국사람에게 ‘라오펑요우’라는 소리를 들으면 서로 꽌시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주위 사람을 소개해주고 자기 집에 초대도 하며, 때로는 사업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꽌시를 맺기에는 아직 몇 단계 더 남았다. 진정한 꽌시를 맺었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이를 ‘형제꽌시(兄弟關系)’라고 한다. 진정한 꽌시다. 심리적 담장안, 이너서클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더 한걸음 더 들어가면 ‘의형제(義兄弟)’가 된다. 삼국지에서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로 맺은 것 같은 관계를 말한다. 현대 중국어로는 “간숑띠(干兄弟)‘라고 한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그보다 두터운 관계라는 뜻이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형제꽌시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중국 고금 성현들의 좋은 금언을 모은 인생교훈집 <증광현문(增廣賢文)>에 “하늘 아래 부모처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진정한 형제를 얻는 일이다(天下無不是的父母 世上最難得者兄弟)”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형제는 물론 의형제다. 진정한 형제는 부모가 자식을 이해해주는 정도의 교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펑요우’는 우리의 ‘친구’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중국의 ‘꽌시’를 한국의 ‘네트워크’로 이해하다간 낭패를 겪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방중에 앞서 중국 CNN과의 회견에서 “이번 방문에서 시진핑 주석과 세 번 째 만나는 만큼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고 싶다”면서 ‘일회생 이회숙 삼회노붕우(一回生 二回熟 三回老朋友)’라는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고 한다. “처음 만나면 새 친구, 두 번째는 가까운 친구, 세 번째 만나면 오랜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일종의 러브콜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중국 측의 대응은 차갑다. 시 주석이 문 대통령의 방중 당일 남경대학살 기념식 참석을 핑계로 환영 행사에도 나오지 않았고, 리커창 총리와의 오찬 계획 마저 무산됐다. 14일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시행되지만, 국빈 초청임에도 불구하고 공동회견문도 발표하지 않고 각자 기자회견을 통해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고 한다. 심지어 문 대통령을 단독 회견한 CNN 기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왜곡해 자국에게 유리한 내용만 잔뜩 보도했다는 후문이다.

시진핑(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사실 외교 의전상 전례 없는 무례(無禮)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민들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이런 외교 행사를 기획한 실무진에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보수 진영에선 외교장관과 주중대사 등이 정통 외교관 출신이 아님을 들어 “아마추어 외교팀이 하는 일이라 어쩔수 없을 것”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투의 힐난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실질이다. 한신이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인내를 하지 않았다면 천하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과의 담판에서 북핵과 사드 문제등에 관해 한국의 입장을 확실히 내세우고 중국의 역할과 협력을 당당하게 다짐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레버리지는 있다. 경제 뿐 아니라 국제 지정학적으로도 한국은 중국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문 대통령이 일찌감치 말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역할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느냐 인데, 고래의 격언처럼 진심이 최선의 방책이다.

토루와 사합원처럼 자기들 만의 이너서클에 갇혀 살기를 즐기는 중국인들은 그들의 문을 함부로 열지는 않지만, 한 번 문을 열면 오래된 친구, 라오펑요유와 같은 대우를 해 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주최한 교민들과의 오찬에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스타 추자현 부부가 참석했다. 추자현은 문 대통령을 맞아 그의 중국 SNS 웨이보에 이해인 수녀의 <열두 달의 친구이고 싶다>는 시를 중국어로 번역해 올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라오펑요우 중국 속담에 대한 화답 형식으로 중국인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시다.

추자현(왼쪽)과 우효광 부부가 12월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뷰티 브랜드 비브라스 신제품 발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추자현이 올린 이해인 수녀의 시 <열두 달의 친구이고 싶다>는 다음과 같다.

1월에는 가장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서로를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구이고 싶고../ 
2월에는 조금씩 성숙해지는 우정을 맛볼 수있는 친구이고 싶고../
3월에는 평화스런 하늘 빛과 같은 거짓없는 속삭임을 나눌 수 있는 솔직한 친구이고 싶고../
4월에는 흔들림없이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으로 대할 수 있는 변함없는 친구이고 싶고../
5월에는 싱그러움과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우리 서로에게만 전할 수 있는 욕심 많은 친구이고 싶고../
6월에는 전보다 부지런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한결같은 친구이고 싶고../ 
7월에는 즐거운 바닷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주칠 수 있는 즐거운 친구이고 싶고../
8월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차가운 물 한 잔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친구이고 싶고../7월에는 즐거운 바닷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주칠 수 있는 즐거운 친구이고 싶고../
9월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고독을 함께 나누는 분위기 있는 친구이고 싶고../
10월에는 가을에 풍요로움에 감사할 줄 알고 우리 이외의 사람에게 나누어 줄줄 아는 마음마저 풍요로운 친구이고 싶고../
11월에는 첫눈을 기다리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열중하는 낭만적인 친구이고 싶고../
12월에는 지나온 즐거웠던 나날들을 얼굴 마주보며 되뇌일 수 있는 다정한 친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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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복도도맘 2019-04-15 14:31:19
'중국사람 이야기'(김기동 지음, p16~p24) 책을 그대로 많이 인용했네요... 기사라고 하더라도 발췌한 부분은 알려줘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