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한 기부문화②] 저명인사들의 '검은 기부'에 착한 기부까지 얼어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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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랭한 기부문화②] 저명인사들의 '검은 기부'에 착한 기부까지 얼어붙어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7.12.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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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사회적 물의 빚은 후 도의적 책임으로 기부 약속하기도 / 신예진 기자

기부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시민들의 주머니는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듯하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기부금 비리에 기부단체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이 커진 것. 이와 더불어, 기업들의 졸속 기부가 이어지면서 기부에 대한 이미지도 예전보다 떨어졌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고, 성공은 완성의 나눔이다”라고 했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이 가진 만큼 나눌 때 이뤄진다는 뜻이다. 사회 지도층의 선행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 맥락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워렌 버핏 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이 기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기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부자나 저명인사들의 재산 사회 환원은 흔하지 않다. 기업을 운영해서 모은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행태를 선의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때로는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이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기부를 활용하기도 한다. 기부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를 악용하는 게 문제다.

기업들은 매년 엄청난 액수의 돈을 기부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차갑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재판 선처를 위해 기부를 약속하는 다소 불량한 기부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주 기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회장은 지난 2006년 8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바 있다. 당시 삼성이 특정 대통령 후보에게 대선자금을 불법으로 지원하고 일부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이른바 ‘삼성 안기부 X파일 사건’ 등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기부를 단행했다.

이 회장은 2년 뒤 또 사회 환원을 언급했다. 2008년 삼성 특검 과정에서 4조가 넘는 차명 재산이 드러났기 때문. 당시 이 회장은 “차명 계좌를 실명 전환한 뒤 삼성생명 주식과 세금, 벌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나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졸속 기부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7대 대선 당시 선거방송 연설에서 집 한 채만 남기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BBK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가 끝난 직후였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환원 약속을 BBK, 다스 등 여러 의혹들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그러나 ‘전 재산 헌납’ 약속에도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기부 방식이 문제가 된 것. 이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청계재단’을 설립했다. 제3의 재단에 맡기지 않고 직접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것. 이에 여론은 사회 환원의 의미가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의 관계인들이 재단 운영을 이끌었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재산 회피처, 상속세 탈루 수단 등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기업인들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부에 국민들은 직장인 이상훈(27) 씨는 “이미 국민들은 한국 기업인들의 기부가 소비자들을 겨냥한 이미지 관리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안다”며 “기업이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힘을 썼다면 그 많은 계약직과 산재 처리를 필요로 하는 직원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이어 “사회적으로 기부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벌이나 저명인사들의 ‘깨끗한 기부’에 대한 본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저명인사들의 물의를 빚은 후 이뤄지는 기부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기부를 하는 기업의 이미지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기업의 기부금은 우리나라 기부 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사회연구 전문가는 기부 문화 정착에 대해 “여러 논란과 비리에 지친 국민들은 대기업의 기부를 ‘사고 친 후 수습하는 것’으로 여긴다”며 “고액 연봉을 받는 오너 일가의 기부 문화가 바뀌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는 이어 “기업이 구체적인 기부 계획을 밝히고 실천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신뢰를 쌓는 것이 올바른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한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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