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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몰아친 컴퓨터 속의 신기루…이 아찔한 비트코인 거품

기사승인 2017.12.12  19: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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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23) 비트코인으로 되짚어 본 21세기적 물신숭배의 뿌리 / 편집국장 강동수

1.

편집국장 강동수

요즘 온라인 세상에선 나 같은 기성세대, 아니 구세대(?)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신문에선 ‘광풍’이란 이름으로 이 현상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 개에 2500만 원이 넘었다느니, 하루 만에 다시 1000만 원이 폭락했다느니, 누구의 장난으로 시세 총액이 50조 원 넘게 떨어졌다느니… 도무지 현란해서 기사를 읽기만 해도 머리가 어찔할 지경이다.

무슨 이야기이냐고?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은행에 가서 직접 돈을 거래하거나, 기껏 인터넷 뱅킹을 이용한다고는 해도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 번호 찍어 넣는 일에도 쩔쩔매는 나 같은 사람은 비트코인의 개념조차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글쎄, 정부가 아닌 개인이 온라인상에서 가상으로 코인을 만들어 발행하고,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암호를 풀어내는 사람은 그 코인을 얻게 되는데, 그게 또 인터넷에서 화폐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투기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구석기 시대에 사는 원시인이 된 기분까지 느껴지니 고약한 일이 아닌가.

‘가상화폐(virtual money·virtual currency)는 지폐나 동전과 같은 실물이 없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공간에서 전자적 형태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 또는 전자화폐를 말한다. 암호화폐(cryptocurrency)도 가상화폐의 일종이다. 비트코인 등은 암호화폐에 속한다. 비트코인은 분산 네트워크형 가상 화폐로 중앙 집중형 금융 시스템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게 내가 위키사전에서 찾아본 비트코인의 개념이다.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다. 그러니까 지갑 속에 들어있는 종이돈이나 주머니에서 딸그랑거리는 동전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오가는 무형의 돈이란 것, 은행 같은 금융기관이 개입하지 않고 인터넷상의 거래자들 끼리에서만 오가는 일종의 사설 화폐란 소리다. 싸이월드에서 발행하는 ‘도토리’, 네이버의 ‘네이버 캐시’, 페이스북의 ‘페이스북 크레딧’, 카카오의 ‘초코’ 비슷한 것인 모양인데, 이런 것들은 해당 회사가 제공하는 재화와 용역을 이용할 때만 쓸 수 있는 매우 한정된 의미의 화폐이지만, 비트코인은 온라인 이용자 사이에선 매우 폭넓게 쓰이는 결제수단인 셈이다.

비트코인은 형체 없이 컴퓨터 속에 코드로 존재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글쎄, 여기까지는 무슨 말인지 대강은 알아듣겠다. 그런데 정체도 모를 어느 누구가 만들어낸 돈이 온라인상에서이지만 멀쩡히 돈 구실을 하고, 주식처럼 매일 같이 등락을 거듭하는 치열한 투기의 수단이 된다는 소리 앞에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다시 머리를 짜내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 개념을 내 식으로 짚어 볼 수밖에.

돈이 돈 구실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까닭은, 어떤 조건에서건 그 돈이 현물 상품과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만 원짜리 돈을 가지면 시장, 마트, 백화점할 것 없이 두부건, 치즈건, 빵이건 1만 원어치를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돈을 내밀었는데도 물건으로 바꿔주기를 거부한다면 돈은 한낱 세종대왕이 그려진 종잇조각에 불과하지 않겠나. 그래서 국가가 독점적으로 돈을 발행하고, 국가의 권위를 빌어서 교환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국가는 화폐의 발행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일 테다.

그렇게 보면, 비트코인이란 가상화폐가 온라인상에서 결제수단으로서 그 신용을 획득해 간 과정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처음엔 누군가가 장난처럼, 인터넷상에 매우 까다로운 암호풀기 문제를 내놓고 그걸 푸는 사람에겐 일종의 이모티콘 같은 비트코인 하나씩을 준다고 했을 거다. 그렇게 해서 그 문제를 푼 사람들에게 비트코인이 주어졌을 텐데, 한 사람, 두 사람씩 그 비트코인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서 그 사람들 사이에선 무언가를 거래할 적에 은행이나 인터넷뱅킹으로 직접 송금하기가 귀찮으니 매우 사적인 결제수단의 구실을 하게 됐을 것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발행 이후 15개월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거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처음엔 장난처럼 당신이 가진 비트코인으로 내게 결제해라, 대신 앞으로 내가 당신에게서 무언가 구입할 적에는 당신도 비트코인으로 받아라, 이렇게 시작된 것일 테다.

그렇게 비트코인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거래 때 조금씩 쓰이면서 일종의 대용 화폐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현실 세계에선 1만 원짜리 상품이나 서비스라면, 비트코인의 세계에선 1비트코인으로 정하자는 식의 화폐가치도 자연스럽게 정해졌을 테고. 그리고 비트코인을 작은 단위로 쪼개 거래하는 방식도 생겼을 것이다. 1달러를 100센트로 쪼개 거래하듯.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우표 수집에 아무런 취미가 없는 사람에겐 우표는 그저 손톱만한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우표 수집가 사이에선 돈과 마찬가지다. 오래 되고 희귀한 우표일수록 값이 더 나간다. 말하자면,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끼리는 이 우표 한 장과 저 우표 다섯 장과 교환하자는 식으로 교환가치가 정해지고, 나아가서 이 우표 한 장엔 현실 화폐로 50만 원, 100만 원의 가치가 매겨져 사고팔기도 하는 것이다. 특정 우표를 갖기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경매를 통해 값이 치솟기도 한다. 만약 이 세상사람 모두가 우표 수집에 광적인 취미를 가지게 됐다고 치면, 우표가 바로 화폐 자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마 비트코인도 그런 것일 거다.

그러니, 비트코인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온라인상의 화폐로 자연스럽게 그 신용을 획득해간 것일 테다. 전 세계로 연결되는 인터넷망으로 거래돼 나라마다 다른 현실 화폐의 환율 체계도 적용받지 않으니 편리하고, 중앙은행처럼 관리하는 시스템 없이 P2P(Peer to Peer) 네트워크 기반으로 개인끼리 주고받는 것이니 원화를 달러로 바꿀 때처럼 수수료를 줘야 할 일도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현실의 화폐로 비트코인을 사려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온라인상에서 수수료를 받고 비트코인 판매를 중개하는 거래소도 우후죽순 생겨났을 거고…….

이렇게 비트코인이 온라인상 화폐로 각광받는 것은 물론 그 희소성 때문이겠다. 아무나 시도 때도 없이 비트코인을 만들어 가질 수 있다면 굳이 현실의 화폐로 비트코인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2009년 프로그래머 사토시 나카모토란 사람이 만들었다는데 개인인지, 집단인지조차도 불분명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낸 어려운 암호를 풀어내면 비트코인 하나씩 얻게 되는데 발행될 비트코인의 총계를 2100만 개로 한정해 설계했다고 한다.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생성하는 것을 금을 캐는 것에 비유해서 ‘채굴(mine)’이라고 한다나. 채굴하는 사람들은 ‘광부(miner)’라고 부른다고. 현재까지 1600만 개가 채굴됐으니 앞으로 500만 개가 남았는데, 해마다 발행되는 양이 계속 반씩 줄어들도록 설계돼 갈수록 문제가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개인용 PC의 연산능력으로는 5년을 풀가동해야 겨우 암호 하나를 풀까말까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등에선 대형 컴퓨터를 병렬로 늘어놓고 암호를 푸는 ‘비트코인 공장’까지 생겼다고.

비트코인 광풍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투기 수단이 되는 것은 바로 그 희소성 때문이다. 집 앞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모두 금이라면 누가 그걸 사재기하려 하겠는가. 비트코인도 2100만 개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다들 그걸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켜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현실 화폐로 매겨진 비트코인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것. 비트코인은 하고보면 디지털 시대의 금이나 다이아몬드인 거다. 설명을 하다 보니 너무 장황해졌다. 어쨌든 이게 내가 비트코인을 이해한 방식이다.

 

2.

칼 마르크스의 『자본』 제1권 제1편 제1장은 '상품'을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는 상품 간의 교환에서 보이는 단순한 가치관계가 ‘눈부신 화폐 형태로 발전해 간’ 도정을 추적함으로써 ‘화폐의 수수께끼’를 해명했다고 자부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1867년 출판본. 독일의 베를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상품은 가치의 시장화의 다른 이름이다. 상품은 단독으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상품으로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각 상품은 특정 상품을 자기의 가치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게 된다. 마르크스는 그 특정 상품을 ‘일반적 등가’라는 ‘사회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자리매김했다. 그것이 바로 화폐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상품화폐설에 접목한다면,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매겨주는 척도의 구실을 하는 것이고, 상품의 가치란 결국 거기에 투입된 노동의 양에 따르는 것이므로, 화폐는 결국 상품에 숨어 있는 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수단이란 거다.

그런데, 이를테면 금화처럼, 화폐는 어디까지나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다른 상품과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기능을 짊어지게 되자마자 다른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오해되어왔다. 그래서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화폐의 물신숭배(페티시즘)’가 나타나는 것.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물신숭배 행위가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상품 물신주의(페티시즘)로 이어졌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화폐가 될 수 있는 상품엔 조건이 따른다. 우선 휴대 가능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석기시대에는 조개껍데기가 화폐 구실을 했고, 고대에는 인간인 노예가 화폐 구실을 한 것도 움직일 수 있는 재화(?)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동질로 쪼갤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에 적합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 금, 은과 같은 생산량이 한정된 귀금속이었다.

마르크스가 ‘상품화폐론’에서 궁극적으로 규명하려 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작동시키는 근본 원리이겠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그야말로 원자론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생산의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규정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러니 마르크스에게 있어 화폐란 자본가적 사회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화폐야말로 사회적 심리를 응축한 상품인 것이다.

 

3.

인간사회에서 화폐가 통용되기까지 역사적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물건과 물건을 가치에 따라 현장에서 맞바꾸는 ‘물물교환’이 가장 미더운 교환수단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일일이 그 무거운 물건을 지고 다니면서 다른 물건과 바꾸는 것도 매우 성가시고 번거로운 노릇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모든 상품과 손쉽게 바꿀 수 있는 대표적인 교환수단으로 화폐가 고안된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결제수단’으로 인식되기엔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삼한시대에는 철을 교환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쌀·조·보리 등의 곡물류와 베·모시·비단 등의 견직물·마직물이 국가에 대한 세납과 지출 수단으로 사용되는 동시에 시중에서 물품화폐로서 통용되었다. 쇠나 곡물, 피륙은 다른 여러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대표상품이었을 뿐 그 자체가 사용가치가 있는 상품이니 크게 보면 물물교환의 수준을 넘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화폐사상 국가가 정책적으로 물물교환 내지 물품화폐 유통질서를 극복하고 품질·체재 및 무게를 규격화한 화폐를 주조, 유통시키려 한 최초의 시도는 고려시대인 996년(성종 15)에 철전(鐵錢)을 주조, 유통시키려 했던 때로 기록된다. 이 철전은 1062년(문종 16)까지 통용됐지만, 화폐에 대한 인간의 불신을 불식시키는데 실패했다. 여전히 베와 쌀 등 물품화폐에 압도돼 화폐로서의 기능을 얻지 못했던 것.

고려왕조는 다시 1102년 해동통보(海東通寶)를 주조해 유통 보급을 시도했다. 이후 동국통보(東國通寶)·동국중보(東國重寶) 등 각종 주화(동전)를 주조, 유통시켰다. 귀금속화폐로서 일종의 칭량은화인 은병(銀甁)도 법화(法貨)로 만들어냈다.

상평통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1401(태종 1) 고려 말에 시도하다가 그친 저화(닥나무 껍질로 만든 지폐)를 법화로 통용시켰지만 일반 민중은 실용가치가 보다 큰 베를 선호하고 저화의 사용을 기피했다. 정부는 화폐로서의 베의 통용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법으로 엄격히 다스렸지만 그런다고 종이돈에 대한 불신이 사라질 수는 없었던 것. 그래서 상평통보 같은 각종 법정 화폐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까지 시중에서의 대표적인 화폐는 베였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조선 후기까지 한국사회는 물물교환 사회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랬던 것이 조선말기 고종 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근대적 화폐 질서가 도입됐던 것. 하고 보면, 화폐가 보편적 교환수단으로 뿌리내리는 데는 수천 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현물 지폐의 교환을 거쳐 인터넷 뱅킹 등 전자금융 시대에 접어든 것은 2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젠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니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화폐가 통용되기 위해선 교환수단으로서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시중에 유통되는 재화에 비해 돈이 너무 많으면 당연히 물가가 오르고 돈값이 떨어진다. 반대로 화폐 발행량이 너무 적으면 상품의 유통이 체증을 일으키게 되고 물가가 너무 떨어져 생산 활동에 타격을 입힌다. 많아도, 적어도 안 되는 게 돈인 거다. 그래서 국가는 화폐를 풀고 죔으로써 물가를 조절한다. 재정수요를 메우려고 함부로 돈을 풀었다간 경제 전체가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1932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 존재했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사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막대한 배상금을 전승국에게 지불해야 했던 독일은 마르크화를 마구 찍어내 돈을 갚았다. 그러자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20년 모은 연금을 받았더니 빵 한 조각 값도 안 되었다던가, 빵 한 봉지를 사려고 돈을 수레로 날랐다던가, 벽지 대신 돈으로 벽을 발랐다던가 하는 신화적(?)인 사례가 지금도 전해져 온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고종 시대에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 당시 집권자였던 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원이 부족해지자 1866년 당백전(當百錢)을 유통시켰다. 실질가치는 바뀌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새 동전을 만들어 이전 상평통보의 백배의 값어치로 통용시키며 대량 발행했으니 돈이 쇳조각 취급을 받지 않을 도리가 있나. 가뜩이나 좁은 조선의 시장경제가 하루아침에 대 혼란에 빠졌고 결국은 반년 만에 유통이 중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 경제 질서의 근간은 화폐 유통에 달려 있고 화폐의 발행과 관리는 나라의 존망을 가르는 중대사임은 고금의 이치 아니겠나.

 

4.

최근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화제에 오르자 자주 거론되는 옛일이 있다. 17세기 황금기 네덜란드의 투기 광풍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튤립 광기(tulipomania)’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페르시아와 터키를 거쳐서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진 튤립은 대량으로 재배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유럽에서도 가장 상업이 발달해 잇속이 빠른 네덜란드 투기꾼들은 이를 이용해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착안을 하게 됐던 것. 상인들은 튤립 품평회를 열어 경쟁적으로 아름다운 튤립을 시중에 선전했다. 예쁜 튤립을 키우고 장식하는 것이 부르주아의 고급 취향이란 상징조작이 유포되고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자 삽시간에 튤립에 대한 가수요가 불붙었다.

수요가 계속 늘자 꽃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이 튤립 투기에 몰려들었다. 꽃값이 계속 오르는 동안엔 투자자 모두가 돈을 벌었다. 이것이 또 다른 투자가들을 끌어들였고, 꽃값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유명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종 구근은 1633년에 500길더였는데 1637년에는 1만 길더를 기록했다. 숙련 노동자 20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것으로 꽃 한 송이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던 것. 1633년과 1637년 사이에 암스테르담에서는 2000만 길더의 구근이 거래됐다.

튤립 매매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광기를 띠게 됐다. 꽃값이 계속 오르자 실제 손에 쥐고 있는 꽃만이 아니라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것까지 사고팔게 됐다. 구매자는 선금을 주고 나중에 수확할 꽃을 미리 사둔다. 그가 받아둔 것은 꽃 모양과 색깔 등이 기록된 약속어음이었다. 요즘 선물거래의 원조였던 셈. 실물 없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이 현상은 ‘바람장사(windhandel)’라고 불렸다.

1640년의 튤립 광풍을 묘사한 그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1637년 2월, 사람들은 이제 꽃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꽃값이 오르지 않고 매매도 잘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투매가 시작됐다. 값이 오를 때보다 훨씬 더 빨리 하락했다. 5000길더를 호가했던 것이 50길더가 됐다. 모든 투기가 그렇듯 막차를 탄 사람들이 망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 빚을 내 튤립을 샀던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파산했고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하는 등 엄청난 사회 혼란을 일으킨 끝에 일장춘몽이 됐다는 이야기.

 

5.

비트코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론자들은 가상화폐가 미래사회의 새로운 금융 및 결제수단으로 보편화할 것이며 비트코인이 바로 그 선두주자라는 주장을 편다. 비트코인은 신용카드 회사와 같은 제3자를 배제하고 구매자와 판매가가 직접 결제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누구나 쉽게 계정을 생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해외 송금이나 소액 결제와 같은 거래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또 경제 상황이 불안한 지역에서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앙은행이나 국가가 보장해 주는 신용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자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나 스페인, 키프로스 등에서는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일어났으며, 양적 완화를 실시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화폐 가치가 시장의 가치와 상관없이 요동쳤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처음부터 통화량이 정해져 있고 단일 운영 주체에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지급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부정론자도 다수 존재한다. 비트코인은 보안 측면에서 안정성이 있다지만 개인들이 지닌 비트코인을 관리하는 전자지갑이 거래소에 접속하는 방식은 해킹 위험에 취약하다고 한다.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게 아니어서 내부 운영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세계 최대의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Mt. Gox)에서 전체 거래량의 5%에 해당되는 65만 비트코인(당시 시세로 약 1200억 원)이 부당 인출돼 폐쇄됐다. 처음에는 해킹에 의한 피해인 줄 알았으나, 대부분은 회사 시스템의 잔액 데이터 조작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비트코인의 익명성을 악용해 마약, 무기 등의 불법 거래나 돈세탁, 탈세 수단으로 쓰일 여지가 높다는 점도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것. 처음 거래된 2010년 4월, 1비트코인의 가치는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14센트였지만, 2011년 5월에 27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비트코인 거래를 시작한 바로 엊그제 10일엔 한때 1만 8850달러까지 올랐다. 7년 사이에 물경 13만 4642배나 뛰어오른 것. 오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며칠 전 우리나라에선 1비트코인이 2500만 원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또 하루만에 1000만 원 넘게 폭락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3위의 비트코인 거래국이라고 한다. 세계 GDP의 1.9%에 불과한 한국이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1%를 차지하는 날도 있었다고.

며칠 전엔 서울 강남에 사는 한국 고교생이 새로운 비트코인 생성법을 개발 중이라고 공시를 올려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일었는데, 그 애가 사기였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전 세계 시가 총액 50조 원이 폭락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학생은 500만 원을 벌려고 사기를 쳤다는데 그 거짓말에 세계 투자자들이 놀아났다는 것. 17세기 ‘튤립 투기’ 광풍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서울 강남 아줌마들도 요즘 모여앉아 비트코인 투자에 열중한다지만, 이거야 원,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은 무슨 요지경인지 도무지 현란하고 어찔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세계가 아닌가.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화폐가 21세기의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각광을 받을지 어쩔지는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 속에서 불어치는 일진광풍, 이 신기루 같은 투기광풍은 지켜보기 아슬아슬하다. 이러다가 이게 전 세계적인 금융 공황의 또다른 빌미가 되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마저 생긴다. 어쨌든 마르크스가 200년 전 야유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화폐의 물신숭배(페티시즘)’가 가장 저급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된 게 지금 비트코인 광풍이 아닐는지.

고려시대 문인 임춘이 돈을 의인화시켜 당대의 배금주의를 풍자한 가전체 소설 <공방전(孔方傳)>의 한 대목을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공방이란 구멍 뚫린 엽전을 뜻한다.

"공방이 어려운 직책을 오랫동안 맡아보는 사이, 그는 농사가 국가의 근본임을 알지 못하고 오직 장사꾼들의 이익만을 두호(斗護)해 주어,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쳐서 국가나 민간 할 것 없이 모두 곤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뇌물이 성행하고 청탁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짐을 지고 또 타게 되면 도둑이 온다’고 한 것은 <주역>에 있는 분명한 경계입니다. 청컨대 그를 파면시켜서, 욕심 많고 비루한 자들을 징계하시옵소서.”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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