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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합법화 논란과 미혼모 출산에 대한 편견...출산이 행복한 사회, 정부의 미혼모 지원책 시급

기사승인 2017.12.11  22: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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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십수 년 전 부산 서구 암남동 마리아꿈터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시설에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아내를 따라 나선 것이다. 아이들과 첫 만남은 어색했다. 서너 살쯤 된 아이들이 내 품을 서로 차지하려고 울고 보채는 바람에 진땀을 흘렸다. 한 여성봉사자가 “봉사자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가끔 남성 봉사자가 오면 아이들이 저렇게 신경전을 벌인다”고 귀띔해주었다.

아이들은 떠들고 싸우며 놀다가도 “밥 먹자”라는 봉사자의 말 한마디에 곧장 얌전해졌다. 헤어질 때 아이들은 서운해 하면서도 꼭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에 재롱조차 절제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알로이시오 초, 중, 고교다. 여기를 졸업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곳 수녀님들을 ‘엄마’라고 부르며 찾아오곤 한다.

마리아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마리아꿈터에는 지금도 100여 명의 아이들이 수녀님과 봉사자들의 보살핌 속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법인 산하 마리아모성원은 미혼모를 위한 출산과 산후조리 등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온갖 번민 끝에 이곳으로 ‘피신’한 미혼모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이런 시설이 부산에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혼모 아이’라는 딱지에도 불구하고 생명 그 자체는 존중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10대 임신, 미혼모는 전세계적 문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보잘 것 없는 경험 한 토막을 들먹인 것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낙태 합법화 논란’에 뭔가 빠진 듯해서다. 낙태 합법화를 촉구하는 쪽은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 결정권을 내세운다. 반면 낙태 합법화에 반대하는 쪽은 생명 경시를 우려한다. 태아의 생명권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화 <24주>는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딸 하나를 둔 유명한 코미디언 아스트리드(율리아 옌치)는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중 둘째를 임신한다. 그러나 얼마 후 뱃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고민 끝에 아이를 낳기로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태아가 선천성 심장병까지 있다는 의사 소견이 나온다. 아스트리드는 고민 끝에 임신 ‘24주’ 상태에서 낙태를 결심한다.

장애아 출산이냐 낙태냐를 고민하는 엄마를 그린 영화 <24주>의 주연 배우 율리아 옌치(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영화의 배경인 독일은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다. 일정 시간 이상의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산모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낙태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이 아니어도 임신부에게 낙태는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태아를 기억하는 의미의 작은 조각상인 ‘미즈코’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곤 한다. 미즈코는 어릴 때 죽은 아이들의 영(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980년대부터 낙태로 죽은 아이들의 영을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

일본에서 유산이나 낙태 등으로 못태어난 아이들 미즈코라 하고 그들을 지키는 자장보살을 미즈코 지조라고 한다. 사진은 미즈코가 나열된 도쿄의 한 사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브라질에서는 과거 가톨릭 교리와 법적인 금지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여성의 약 3분의 1이 최소 한 번의 낙태 경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후진국 곳곳에선 비인간적 인공유산 수단이 동원됐다. 복부 가격, 단식,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펄쩍펄쩍 뛰기, 무거운 물건 들어올리기 등이다.

낙태 합법화를 촉구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최근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약품(미프진) 수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계 61개 나라에서 시판이 허용된 이 약을 왜 한국에선 수입하지 못하게 막느냐는 것이다.

여성단체 등이 주축이 된 ‘낙태죄 폐지 국민행동’은 지난주 시위에서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고 주장했다. 모자보건법에 성폭력에 의한 임신일 경우 낙태를 허용하지만 이 또한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태아의 목숨을 산모가 앗아가도 괜찮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성폭행에 의한 임신은 예외적으로 인공 임신중절이 허용되긴 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나 선천적 장애, 부부의 파경 등 ‘불가피한 사유’로 낙태가 일상화될 경우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출산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게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걱정이다.

국내 미혼모 출산은 연간 3000~4000명으로 추산된다는 게 모 대학병원의 분석이다.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10대라고 한다. 이들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임신부터 출산까지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학교나 가정, 그 어디에서도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버려진 아이를 받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했는데 지난해에만 201명의 아기가 들어왔다. 교회 측이 아기를 두고 간 부모를 붙들고 상담한 결과 72%인 145명이 미혼모 아기였단다. 19세에 임신한 한 미혼모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출산한 뒤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체코의 한 병원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한국의 베이비 박스처럼 키우지 못할 아이를 넣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프랑스에서는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낯설지 않다. 정부 지원에도 차별이 없다. 출산과 양육을 위한 가족수당은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지원된다. 한 부모 가정일 경우 별도 수당도 지급된다고 한다. 출산을 독려하면서도 매년 수백 명의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에 23만여 명이 서명했다. 조국 민정수석이 나서 ‘인공 임신중절 수술’ 실태를 조사한 뒤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기회에 낙태 실태 조사와 함께 미혼모 출산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요구하고 싶다. 혼외 임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혼모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일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은 이미 임신과 출산을 기존의 도덕적 잣대로만 접근할 때가 지났음을 알리고 있다. 미혼모에 대한 따가운 시선들이 하나 둘 걷히고,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뒤따를 때 낙태 합법화 논란도 한층 성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 같다. 한 순간의 실수를 문제 삼아 새 생명에까지 손가락질하는 것은 문명 사회라 할 수 없다.

편집위원 이처문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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