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크송은 가라"...힙합그룹 팬텀 '감성회복'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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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송은 가라"...힙합그룹 팬텀 '감성회복' 선언
  • 취재기자 손희훈
  • 승인 2014.02.1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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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가사 반복 지양..."노래는 메시지가 있어야"

 “조용필처럼 나 변함없이 노래할게 / 너의 뒤에서 너를 지켜주는 내가 될게 / 꼭 영화처럼 늘 잘해주진 못하지만 변치 않을게.”

비아이돌(하이브리드 힙합) 그룹 '팬텀(Phantom)'이 가요계 대선배 조용필의 이름을 노래 제목으로 내걸어 화제가 된 곡 <조용필처럼>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곡은 남성 3인조 그룹이면서 여러 장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힙합 그룹으로 불리는 팬텀의 히트곡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의 가사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가사가 반복되는 것이 일상이다. 팬텀의 <조용필처럼>은 80, 90년대 ‘회귀 현상’의 하나라고 보는 평론가도 있다. 중독성보다는 감성적 호소력이 팬텀 노래의 진정성이다.

▲ 그룹 팬텀에서 활동중인 정한해 씨 (사진: WA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용필처럼>은 그룹 팬텀의 대표곡이다. 팬텀은 3인조이며 그 중 한 명인 한해(24)를 시빅뉴스가 만났다. 한해의 본명은 정한해. 부산의 동아대 국제무역학과 휴학생이다.

<조용필처럼>의 작곡가는 곡을 먼저 만들고 멤버들과 상의 중에 조용필이라는 대선배의 이름을 곡의 제목으로 걸어 팬들의 공감대를 높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소속사 대표가 무릎을 치고 즉시 이름 사용 허락을 구하기 위해 직접 조용필 씨를 만났다. 가왕 조용필의 허락이 없으면, 팬텀은 곡을 아예 버릴 생각이었다. 한해 씨는 “걱정과 달리, 조용필 선배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며 “그때 팬텀은 갓 데뷔한 신인이라 인지도도 없었는데, 선배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부터 조용필은 그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 다음은 조용필의 이름을 이용해 무슨 내용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했다. 오랜 세월 변치 않는 모습으로 국민 가수로 존경 받는 조용필의 진정성을 가사에 담자는 것으로 그룹의 뜻이 모아졌다. 그룹 멤버들이 토론을 거쳐 합동으로 가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곡의 제목은 <조용필처럼>이 됐고, 가사에는 조용필처럼 한결같이 영원한 예능인이 되겠다는 그룹 팬텀의 진정성이 담겼다.

한해는 가사 쓰기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직접 가사를 쓴 곡 중에서 디지털 싱글 <다 알아>를 역시 진솔한 마음을 담은 곡으로 꼽았다.

“다 알아 얼굴만 봐도/ 다 알아 긴말 안 해도/ 얼마나 날 사랑하는지/ 얼마만큼 아끼는지”로 시작되는 이 곡은 언뜻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곡이지만, 속내는 남자들로부터 인기를 끌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소위 ‘어장관리’하는 여성들을 꼬집는 곡이다.

원래 이 곡의 제목은 <떡밥>이었다. 여자에게 속는 남자들이 겪는 아픔을 가사로 썼지만, 표현이 지나치게 가볍고 재미있기만 해서 노래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완전히 뒤엎어 지금의 곡으로 탄생시켰다.

한해의 가사에는 위트가 또 다른 장점이다.

“Dutch Pay 커피는 네가 내/ Dutch Pay 네가 시켰잖아/ 돈 맡겨 놨니? 얼마면 되겠니?/ 내가 은행이니? 이자는 줄거니?/너의 지갑은 악세사리니? Oh Oh Dutch Pay"

이는 팬텀의 두 번째 미니앨범에 수록된 <Dutch Pay>의 가사다. 최근 이른바 ‘김치녀’, 혹은 ‘된장녀’들처럼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여성들을 신랄하게 풍자한 곡이다. 한해는 이 곡의 가사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았다. 그래서 가사는 실감있고 코믹하다. 그는 “작사가의 느낌을 공유해야 대중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인도네시아 현지 공연 중인 그룹 팬텀(왼쪽부터 산체스, 키겐, 한해 (사진: WA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해는 요즘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에 팬들이 식상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사는 진솔함이 없고 자극적이기만 하다. 인기에 영합하는 이런 가사들은 대중을 중독시킨다. 오로지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들면, 가수는 전달하려는 의미를 상실한다. 그게 한해가 보는 아이돌 그룹의 한계다. 그는 “어떤 가사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인기 있는 곡이면서 의미가 없는 가사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작사가 노래의 반을 차지한다. 곡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인기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가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어엿한 가수, 제법 길거리에서 자기를 아는 사람이 생기는 가수가 되어 음악에 대한 진지한 포부를 밝히는 그이지만, 한해에게도 데뷔 과정은 험난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래퍼에 관심이 많았다.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어 랩을 흥얼거리는 래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아마도 가사에 대한 그의 재능은 아마추어 래퍼 시절에 성장했으리라. 본격적으로 음악에 눈을 뜬 그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되자마자 음악을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땡전 한 푼’ 없이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알바’를 했고, 밤에는 마구잡이로 실용음악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가수가 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그는 랩으로 데모 테입을 만들어 무작정 기획사에 보냈다.

당시 가수 조PD와 라이머가 공동대표로 있던 ‘브랜뉴 스타덤’에서 답장이 왔다. 그때가 2009년이었다. 감격의 눈물이 났다. 한숨에 달려가 첫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에게 라이머 씨는 당시 데뷔를 위해 연습 중이던 ‘Block B’라는 팀에 합류시켰다. 아이돌 연습생의 나날은 고달팠다. 그는 평생 춤이란 건 춰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되려면 춤은 필수적이었다. 한해는 “춤이 몸에 배지 않아 정말 힘들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문제가 생겼다.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그가 추구해 온 랩의 세계와 음악적 색깔이 달랐다. 한해는 창작에 욕심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고 싶었다. 결국 그는 아이돌 연습생을 과감히 포기했다. 다시 혼자가 된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재일교포 작곡가 키겐과 뉴질랜드 교포 ‘산체스’와 함께 새로운 그룹 결성을 제안받았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그를 만든 그룹 ‘팬텀’의 시작이다. 그게 2012년이었다. 그렇게 3년 간의 방황이 끝나고, 드디어 한해는 팬텀이란 그룹 멤버의 한 명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팬텀이 데뷔하기 전인데도 유튜브를 통해 선공개한 곡 <얼굴 뚫어지겠다>와 <미역국>의 조회수가 마구 올라갔다. 방송활동과 함께 첫 번째로 발표한 미니앨범의 타이틀 곡 <Burning>과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 곡 <조용필처럼>도 잇따라 히트했다. 드디어 팬텀은 비아이돌 신인 그룹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 순위 10위권에 들었다.

▲ 콘서트에서 열창 중인 한해 (사진: WA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해는 음악이라면 평생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지금까지 달려와 어느덧 데뷔 3년차를 맞고 있다. 그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첫 번째 단독 콘서트가 작년에 있었고, 일본과 인도네시아 공연도 다녀왔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대구와 고향인 부산 롯데호텔에서 크리스마스 특별 공연도 가졌다.

한해는 그룹 활동과 병행해서 곧 솔로 앨범을 낼 예정이다. 그는 솔로 앨범이 팀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작사에 유독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똑같은 사랑 이야기가 세상에 가득해도 팬들이 자신이 작사한 곡을 단번에 알아 챌 수 있는 그런 개성 있는 가사를 쓰는 것. 그게 한해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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