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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 비트코인, 팬클럽 '조공' 문화...지독한 유행병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의 창의력을 파괴한다

기사승인 2017.12.08  22: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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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올 초겨울 불과 몇 주 사이에 롱패딩을 입은 젊은이들이 전국의 거리를 장악했다. 바야흐로 롱패딩 광풍이다. 롱패딩은 원래 영어로 자켓(jacket), 혹은 구스 자켓(goose jacket)이라고 한다. 별칭으로 ‘캐터필러(caterpillar, 애벌레) 자켓’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 젊은이들이 검거나 흰 고치 속에 들어 있는 애벌레 같이 보인다.

롱패딩은 원래 평창 올림픽 공식 한정품 의류였다. 이번 주에는 평창 공식 ‘스니커즈(운동화)’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돌풍 대열에 합류했다. 마치 먹잇감을 던졌을 때 우르르 달려드는 바다의 상어 떼나 아마존 강의 ‘피라냐’처럼 우리가 어느새 순식간에 먹잇감을 난도질하는 ‘먹이광(feeding frenzy)’이 되고 있다.

아마존 강에 사식하는 피라냐의 날카로운 이빨. 피라냐 떼는 물에 빠진 짐승을 순식간에 달려들어 뼈만 남길 정도로 먹어치우는  포식자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리나라 유행은 정도가 심하다. 각자는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유행은 낭비적이고, 획일적이며, 집단적이고, 물질지향적이다. 유행의 실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2-3년 전, 청소년들은 입고 다니던 노스페이스라는 점퍼의 가격대에 따라서 친구들을 차별했다. 유행이 뭐길래 유행 못 따라가는 친구를 상하 관계로 치부한 청소년들은 아무리 전두엽이 미성숙했다고 해도 철이 너무 없어 보인다. 노스페이스라는 등골 브레이커가 최근 롱패딩으로 대체된 것이다. 

맛집 찾아 다니는 것도 유행이다. 부산의 한 작은 단골 냉면 집을 찾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방송을 보고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사람들이 몰려 주차장도 없는 음식점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맛집이라고 방송 보고 갔다가 ‘역시 맛있다’고 만족한 집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요즘은 전국 30년 전통 맛집 앱, 40년 전통 맛집 앱도 등장했다. 오래된 집이 그래도 검증된 맛집 아니냐는 지혜까지 동원된 것이다.

과거의 노래방, 요즘의 카페, 치킨집, 편의점이 퍼지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주식이나 부동산이 시원찮다고 하더니, 최근 뉴스는 비트코인 거래액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소식을 전했다. 투자도 유행에 강한 한국사람 눈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투자 세계에도 적용되고 있다.

여행지도 유행을 탄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은 한두 해 입소문을 타더니 요새는 주차장 건물을 따로 지었을 정도로 전국구 관광명소가 됐다. 특이하게 생긴 바오밥 나무가 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된 게 몇 년 전인데, 바오밥 나무 원산지인 아프리카 변두리 마다가스카르 섬은 한국인 행렬로 줄을 선다고 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철수 아빠”, “영희 엄마”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제주올레길에 온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라고 갔다 온 사람들이 전한다.

바오밥 나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연예인들 어린 자식들이 TV에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배우자, 성장한 자녀, 어머니들도 TV에 등장하고 있다. 오지를 탐험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가 인기를 끌더니, 그것들이 얼마나 '리얼'한지 모르겠지만, 군대, 학교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 가상 커플 프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오디션 프로도 한두 개가 아니다. 나이 차가 엄청나게 나서 거의 세대가 다른 커플의 사랑 얘기가 <도깨비>란 드라마에서 히트하자, <미스터 선샤인> <나의 아저씨> 등에서도 비슷한 소재가 복제되고 있다. 그게 그것인 TV 프로그램들이 유행하는 걸 지켜 보는 일이 이제는 천박스럽고 지겹다. 그래서 나는 뉴스, 다큐, 스포츠를 제외하고 TV를 떠난 지 꽤 오래됐다.  TV도 나를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 피차 떨어져 사는 게 속 편하다.

성형 유행도 빠질 수 없다. 오래 간만에 만나는 지인 얼굴이 바뀌어서 못 알아봐 서로 어색하게 만드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부모가 준 얼굴을 성형으로 완전 'face/off(원래는 아이스하키 용어지만 얼굴을 들어내서 타인 얼굴로 바꾸는 내용의 영화 제목으로 사용됨)'한 인조 미인들을 어쩌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가야 드물게 볼 수 있었지만, 요새는 전국 백화점에서, 길가에서 성형 흔적을 자랑스럽게 대놓고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수능이 끝나자, 전국 성형외과가 예약 러시를 이룬다는 기사가 났다. 고3 수험생들이 시험의 해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게 성형이었다. 원래 성형은 화상 치료나 절단된 손가락을 접합하는 의술이었는데, 그게 왜 이렇게 진화했는지, 세계 최고 성형 공화국이란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엑소’니 ‘방탄소년단’이니 하는 아이돌 그룹을 쫓아다니는 팬클럽도 유행한다. 방탄소년단이 뮤지컬 어워드에서 상을 휩쓸자, 엑소 팬들이 공정하지 못한 해당 뮤직 어워드를 없애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넣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팬클럽 회원들 간에는 아이돌 생일에 선물하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게 왕에게 바치는 조공과 같다고 해서 ‘조공 문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조공 선물에는 억대 명품도 있고, 수 억 원을 호가하는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에 네온사인 생일 축하 광고를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풍조는 누군가가 뒤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기획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천만 영화가 하나 터지면,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그러나 어떤 천만 영화는 왜 이 영화에 천만이 몰렸는지, 물론 영화평은 주관적이긴 하지만, 의아스런 영화도 있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사회철학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선풍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학 교수인 나도 밑줄 긋고, 철학 사전 찾아 가면서, 칸트의 정의관, 롤스의 정의관과 이 책의 정의관을 비교하며 읽어야 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도 유행 현상 중 하나였다. 한 지인은 어느 날 슈퍼에 음료수 사러 들렀다가 주인아줌마가 이 책을 읽고 있어서 기겁을 했다고 했다(물론 그 아줌마가 '강호의 숨은 도사'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유행을 두고, 언론들은 ‘5G 광속도’ 유행이라거나, 친구를 부러워하는 ‘프렌비(friend+envy)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행하는 물건을 온라인에서 꼭 구매 단추를 클릭하고야마는 풍조를 ‘광클 문화’, 또는 ‘득템 문화’라 칭하기도 하고, 구매한 뒤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는 ‘인증 문화’라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친구들 대열게 끼였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동시에 왕따의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있기에 유행이 번진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유행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테크놀로지를 받아 드리는 현상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전파이론’, 또는 ‘혁신이론(diffusion theory)’이란 게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라는 학자가 1960년대 미국 농촌 지역에 새로운 농법을 농민들에게 퍼트리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면서 확립된 이론이다. 이게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물 끓여 마시게 하기, 한국의 가족계획 캠페인 등에 응용되기도 했다. 로저스는 새 아이디어가 유행하려면 ‘미디어’와 ‘오피니언 리더’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게 오늘날 미디어로는 SNS가 작동할 것이고, 오피니언 리더로는 파워블로거, 연예 기획자, 방송국 PD, 소설가, 영화감독, 기자, 카피라이터 같은 문화 창조자들이 '활약'할 것이다.

로저스의 유명한 혁신 곡선. 유행이 퍼지는 단계를 보여준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유행의 문제는 이러한 유행 창조자의 ‘음흉한’ 웃음이 유행 뒤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옷이 헤져서 못 입을 때까지 입는다면 패션 산업은 망한다. 그래서 치마 길이를 길게, 혹은 짧게 했다가, 아예 배꼽 위로 올렸다가 하는 식으로 매년 계절마다 치마 길이를 요동쳐야 ‘신상’이 팔린다. 남자의 양복 깃을 좁혔다가 넓혔다가 해야 남자들이 유행 따라 양복을 새로 구입한다. 드라마, 노래, 관광, 영화, 패션, 광고, 음식 등 모든 유행에는 새로운 '트렌드'로의 쏠림 현상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어디선가 자신이 만든 유행을 따르는 우리를 쳐다보고 쾌재를 부르고 있다. 그들이 바로 현대의 ‘권력자’들이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가 있었다. 검프는 저능아였다. 애인이 떠나자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달리는 취미대로 동네를 그저 달리기 시작했다. 검프는 그 다음날도 달려서 도시를 지났고, 그 다음 날도 달려서 주 경계를 넘어섰다. 이런 식으로 검프는 몇 달을 계속 미국을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무한정 달리기만 하는 그를 미디어가 화제의 주인공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 사람들은 수염이 텁수룩해진 채 끊임없이 달리는 그를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도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 깨달음을 배우러 뒤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수 개월을 그렇게 수백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달리던 검프가 어느 날 갑자기 달리기를 멈추고 오던 길을 뒤돌아서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뒤 따르던 사람들이 물었다. “왜 안 달리세요?” 컴프가 대답했다. “피곤해요.” 그러자 사람들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요?” 누가 달리라고 했나. 검프는 그냥 애인을 그리워하며 마음 잡으려고 달렸을 뿐이었다. 

지능은 낮았어도 검프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창조자’였고, 뒤 따르던 사람들은 정상인이지만 검프의 ‘추종자’였다. 창조자는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 창조자는 스스로 생각을 바꾸지만, 추종자는 스스로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 추종자는 창조자를 모방할 뿐이다. 그래서 추종자는 창조자의 권력에 복종당한다. 그게 추종자의 비애다.

톰 행크스가 저능아 주인공으로 열연한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성이 생명이다. 모두가 롱패딩을 따라 입고, 모두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며, 모두가 아이돌에게 조공을 받치는 국가에서, 젊은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우리는 뒤에 숨어 있는 창조자와 기획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줄 인형(marionette, 마리오네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조만간에 추종자의 비애를 맛보고 울고야 말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 마크 얼스는 말했다. “평범한 ‘우리’가 똑똑한 ‘나’를 이긴다”고. 지독한 유행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적이다. 우리는 유행에 합류한 군중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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