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우러나온다. ‘한국의 미인’ 합성 사진을 보고 느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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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우러나온다. ‘한국의 미인’ 합성 사진을 보고 느낀 단상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11.2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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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있다. 나라를 기울일(망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란 뜻이다.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경국지색은 8세기 중국 당나라를 망조의 길로 들어서게 한 양귀비(楊貴妃)라 할 수 있다. 이름은 옥환(玉環). 719년 촉(蜀)나라, 즉 지금의 사천성 하급 관리였던 양현담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자궁에서 나올 때 옥반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해서 옥환이란 이름을 얻었다. 태어날 때 방안에 꽃향기가 가득했다는 전설도 있다.

16세 때 당시 당나라 황제 현종의 아들 이모(李瑁)의 비(妃)가 된다. 그런데 며느리의 미모에 첫눈에 반한 현종은 어떻게든 옥환을 품에 안고 싶었다. 그런데 직접 아들의 아내를 뺏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옥환을 강제로 승려로 출가(出家)시킨 다음 다시 궁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후궁으로 들어 앉힌다.

양귀비 그림. 일본 나라 쇼하쿠 미술관 소장(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양귀비와의 사랑 놀이에 빠진 현종은 이전의 총기를 잃고 실정을 거듭한다. 그 틈새에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당나라의 국세는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황제는 수도 장안으로 버리고 촉으로 피신하는 몽진을 겪기도 했다. 난리 도중 신하들의 강한 압력에 못이겨 결국 현종은 양귀비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명한다. 756년 7월15일 양귀비는 버드나무에 건 밧줄에 목을 매 죽는다. 37세 나이였다.

사진은 물론 당대에 그려진 초상화도 없어 양귀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모른다. 현대에 전해진 초상화는 모두 후세 사람들이 상상에 의해 그린 것이다. 그녀의 미모는 당대 문인들의 묘사와 사관들의 기록에 의해 짐작할 뿐이다.

양귀비의 용모에 관한 정보의 대부분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얻는다. 7언시로 무려 120구, 즉 840자에 달하는 장편시 장한가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했는데 그중 양귀비의 용모에 관해 많은 대목을 할애한다. 그중 ‘온천수활세응지(溫泉水滑洗凝脂)’, ‘설부(雪膚)’는 그녀의 피부에 관한 묘사다. “온천의 물이 희고 맑은 살결을 씻는다.”, “눈같은 피부”라는 뜻이다. ‘운빈화안(雲鬢花顔)’, ‘화모(花貌)’, ‘부용여면류여미(芙蓉如面柳如眉)’는 양귀비가 찰랑거리고 매끈한 머릿결, 부용꽃 같은 얼굴, 버들잎처럼 가늘고 긴 눈썹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그녀의 매력적인 걸음걸이에 관해 백거이는 ‘시아부기교무력(侍兒扶起嬌無力)’,‘금보요(金步搖)’ 등의 시구를 남기고 있다.

황제가 패륜을 저지르면서까지 탐했고 많은 문인들이 찬미했던 만큼 양귀비의 미모는 매우 특출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양귀비는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는 학설도 적지않다. 우선 그녀가 키가 작았고 비만형이었다는 점이다. 여러 문헌의 기록에 미뤄볼 때 양귀비의 키는 155cm 정도, 몸무게는 80kg 정도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만일 이런 체형의 여인이 미스 차이나 미인대회에 나간다면 본선 진출은커녕 예선 신청도 어려울 것이라고 호사가들은 분석한다.

양귀비의 비만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많다. 그중 하나. 당 현종이 어느날 흥경궁 심향정에서 양귀비와 함께 마침 만개한 모란꽃을 감상하면서 동행한 이백(李白)에게 양귀비를 찬미하는 시를 하나 부탁했다. 이백은 즉석에서 시 세 수를 지었다. 이른바 청평조사(淸平調詞)다. 그중 두 번째 시가 “일지홍염노응향(一枝紅艶露凝香)/ 운우무산왕단장(雲雨巫山枉斷腸)/ 차문한궁수득사(借問漢宮誰得似)/ 가련비연의신장(可憐飛燕倚新粧)”이다. 번역하면 “꽃가지 농염한데 이슬 향 깊어지네/ 무산의 운우지정 애간장 녹였지만/ 옛사람 중 누가 이토록 고왔더냐/ 어여쁜 비연이라면 또 모를까”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이백다운 멋진 시다. 이 시를 받아들고 양귀비는 처음엔 감흥했다. 하지만 나중에 뜻밖의 뒷담화를 듣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비연’이 나오는데 비연은 ‘날렵한 제비’가 아니라 날씬한 몸매로 유명한 한나라 성제(成帝)의 황후 조비연(趙飛燕)를 일컫는 말로, 양귀비의 비만을 비교 풍자했다는 지적이 들어온 것이다. 이에 양귀비는 화가 나서 당 현종에게 이백의 삭탈관직을 주청, 관철시킨다. 이백이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천하를 유랑하게 된 것은 바로 결국 양귀비의 질투에 의한 필화사건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백은 후세에 그렇게 걸출한 시를 남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나라 때 발간된 책자에 실린 조비연의 그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조비연은 하도 몸매가 갸날파서 ‘작장중무(作掌中舞)’, 즉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날 성종 황제와 뱃놀이를 갔다가 배 위에서 춤을 추는 도중 바람이 불자 날아갈 뻔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황제가 바람에 날리는 조비연을 붙잡다가 조비연의 치맛자락이 찢어지는데 옆이 트인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 치파오는 ‘유선군(留仙裙)’이라 불렸던 조비연의 찢어진 치맛자락에서 유래됐다고 설도 있다.

전통 중국 여성 의상 치파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당 현종은 이백의 청평조사 필화사건 이후 조비연에 관한 얘기를 궁중에서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신하들에게 엄명을 내렸는데 자신은 양귀비에게 때때로 “그대는 바람에 날리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오”라며 놀리곤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양귀비와 조비연을 맞비교해 ‘수연비환(瘦燕肥環)’이라 한다. “날씬한 조비연과 글래머 양귀비”라는 뜻이다.

양귀비, 왕소군(王昭君), 초선(貂仙)과 함께 중국의 4대미녀 중 한 명인 서시(西施)는 실제 한 나라를 망하게 만든 여인이다.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 왕 합려는 월(越)나라 구천에게 패해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당부한다. 이에 부차는 장작 위에서 자고 쓸개를 문지방에 걸어두고 매일 핥으면서(와신상담, 臥薪嘗膽) 기회를 엿봤다. 부차는 월 구천이 여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오나라 최고의 미인 서시를 금은보화와 함께 바친다. 서시의 미모에 혹한 구천은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정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 나라를 망친다.

서시의 그림. 청나라 때 제작된 12첩 그림책 중 하나.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 소장(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서시의 경국지색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2500여 년 전 일이고 그의 외모에 관한 기록도 희박하다. 천하를 도모하던 맹장 월 구천을 자신의 치마폭에 푹 빠지게 했던 만큼 대단히 매력적인 여인이었을 것으로 짐작은 된다. 서시가 강가에 앉아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물고기가 강물에 비친 서시의 아름다움에 반해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강바닥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침어(沈魚)’라는 별명의 유래다. 하지만 그 역시 현대인의 기준에서 보면 과연 절세의 미인이라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여부는 미지수다.

서시는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때때로 얼굴을 찡그리곤 했는데 이를 본 궁녀들도 시도때도 없이 궁 안에서 찡그리고 다녔다고 한다. 궁녀들은 구천을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가 찡그리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 주제를 모르게 찡그리기를 따라했다는 것이다. ‘효빈(效顰, 눈 찡그리는 것을 따라함)’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나왔다. 이 점에서 보면 서시는 다소 신경질적이고 강퍅한 얼굴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된다. 요즘 기준에 이런 표정이나 용모를 가진 여인이라면 매력은커녕 남자들이 질색을 하고 떠날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서양의 최고 미인은 단연 클레오파트라이다. 30여 년 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으로 나온 헐리우드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클레오파트라를 절정기 테일러만큼 아름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는 오랫동안 학문적, 역사적 논쟁거리였다. 중세 역사가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했지만 그녀가 역사를 뒤흔들 만큼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게 많은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클레오파트라로 분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담 투소 밀랍 박물관 소장(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지난 2001년 대영박물관은 클레오파트라 특별전을 열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관련된 유물과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새로 발굴된 유물과 비공개 유물도 포함됐다. 많은 유물과 작품들이 그녀를 아름답고 고혹적으로 그렸으나 모두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살았던 당시 만들어진 동전, 석상 등 유물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살찐 목에 매부리코의 소유자였다. 엄숙하고 평범한 얼굴에 150cm 남짓한 작은 키, 뚱뚱한 몸매와 엉망인 치아를 가진 여자로 묘사한 작품도 있었다.

당시 큐레이터를 맡았던 고고학 전문가 수전 워커 박사는 “클레오파트라 신화는 대부분 난센스”라며 “뚱뚱하고 못생긴 추녀라고 말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남자를 뇌쇄시키는 고혹적인 여인이라기보다는 당시 국제 정세에 정통하고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국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집트 여왕이었을 뿐이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당시 로마의 실력자인 케사르와 안토니우스 등과 관계를 맺고 정치적 연대를 한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지성과 정치적 수완 때문이라고 워커 박사는 결론지었다.

이에 이집트가 발칵 뒤집혔다. 이집트 고적 연구가들은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담은 유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늘씬한 미인의 모습”이라고 반박했다. 또다른 전문가들은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를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특히 여성의 미모란 시대와 문화의 소산으로 각 시대와 나라에 다라 다른데 현대 서구적 가치 기준으로 클레오파트라의 미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풍만하고 둥글둥글한 원형미를 갖춰야 미인으로 평가받았는데 현대는 날씬한 몸매와 각진 인상의 여인들이 미인으로 대접받기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미의 기준이 변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고 눈썹이 초승달처럼 완만하며 코는 나지막해야 하고 입술은 앵두처럼 빨간 여인’을 미인으로 여겼다. 몸집도 육덕이 있으며 아이를 잘 낳게 골반이 큰 여인을 알아줬다. 여윈 몸매라면 ‘빌어먹을 여자’로 천대시됐다. 그런데 요즘은 180도 완전 달라졌다. 얼굴이 달걀형으로 갸름하고, 코는 오똑해야 하며, 체형도 8등신으로 균형잡히고 날씬해야 미인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됐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부위별로 집계한 결과, 눈은 김태희, 코는 한가인, 입술은 송혜교로 선정됐다. 바이오 의약품 기업 ‘휴젤’이 신한대학교 간호학과 및 이승철 전 동국대 성형외과 교수와 함께 의사 72명, 일반인 218명 등 총 29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한국인의 대표 미인은 이들 외에 전지현, 문채원, 이영애, 김희선, 손예진, 한예슬, 배수지, 김혜수, 한지민, 신민아, 한효주 등이 꼽혔다. 이들 15명 연예인 사진을 컴퓨터로 합성한 얼굴이 28일 공개됐다.

바이오 의약품 기업 휴젤 등 연구팀이 합성한 한국 미인(사진: Archives of Plastic Surgery, vol.44 9월호)

예쁘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어딜봐도 잘못된 구석이 없다. 반짝이는 눈동자,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콧날, 단아한 입술...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생명력이다. 위에서 거론된 미녀 연예인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그들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활발한 표정, 그리고 각자의 특색에서 연유된다. 그런데 컴퓨터가 만들어낸 합성사진에는 그런 살아있는 표정이 없다. 밀랍 인형 같을 뿐이다. 또 이 합성사진을 보고 걱정이 앞선다. 행여 이 사진이 각 성형외과의 표준 모델이 되어 이와 유사한 인조 미인을 양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진정한 미(美)는 내면에서 나온다는 말이 공연한 허사가 아니다. 지성과 인격이 풍겨주는 아름다움은 그 어떤 외형적 미를 능가한다. 오늘도 대학 강의실에서 초롱초롱한 여학생들의 눈빛을 만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김태희의 눈과 한가인의 코와 송혜교의 입을 갖고 있지 않아도 그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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