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목소리를 접하는 리더에게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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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목소리를 접하는 리더에게 필요한 것
  • 양혜승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4.01.20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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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끄럽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부터 시작해서 주변의 작은 조직까지 파열음이 잦다. 여기저기서 리더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대를 거스르고 과거로 회귀하는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듯했던 권위주의라는 망령이.

작은 강의실 안에서도 리더십은 중요하다.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십중팔구 교수의 문제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까닭이다. 설령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을 하지 않거나 졸아도 교수법이 문제다. 학생들에게 흥미를 갖도록 해주지 못한 까닭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필자도 가끔 “내 탓이요”를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학생을 탓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마찬가지 원리에서 리더와 구성원들이 갈등을 겪는다면 더 큰 무게의 성찰이 요구되는 쪽은 리더다. 구성원들의 저항에는 이유가 있다. 리더가 그 이유를 보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다. 보고도 못 본 척 한다면 더욱 위험하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반대의 목소리에 직면한 리더에게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첫째, 리더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시각을 먼저 버려야 한다. 분명히 세상엔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동전처럼 양면을 동시에 가진 경우도 많다. 심지어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분간하기 좀처럼 힘든 경우도 허다하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억지스러움은 인간의 근대성 속에서 자연스러움으로 탈바꿈해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데 길들여져 왔다. 만화영화 속 등장인물은 늘 ‘좋은 놈’ 아니면 ‘나쁜 놈’이다. 드라마 또한 선한 주인공과 악한 주변인물의 대립구도가 기본이다. 그리고 미디어 속 결론은 늘 권선징악이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이 과연 실제 현실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선과 악 혹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의 두 가지 차원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은 문제다. 특히 리더에게 그런 시각은 더더욱 문제다. 자신과는 다른 목소리를 ‘그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멀쩡한 리더라도 첨예한 가치판단이나 이해대립 상황에 직면한 경우에는 이분법의 단순논리에 빠져드는 경우를 목격한다.

둘째, 리더는 자신의 주관성을 인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주관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똘레랑스를 실천하지 못하는 닫힌 리더는 결국 자만심과 권위주의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자신의 주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리더는 구성원들의 반대 목소리를 도전적인 것 혹은 파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열린 리더는 저항의 원인이 무엇인지, 저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는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논리를 빌리자면 사회적 행위는 그 의미를 해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구성원들이 리더를 불신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리더가 구성원들이 왜 저항하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셋째, 구성원을 무시하는 것은 리더에겐 최악의 태도다. 조직에 대한 애정은 리더가 갖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조직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애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이어지면 위험하다. 구성원들의 애정이 자신의 애정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서운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애정의 방식은 그것을 표출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남녀 간의 애정표현만 해도 그렇다. 연애하는 남녀가 상대방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다양하다. 사람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르다. 정답이 따로 없다. 조직에 대한 애정도 마찬가지다. 조직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어떤 헌신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자신에 반하는 구성원들을 ‘무지한 무리’로 인식하는 리더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 무지한 무리들의 힘에 의해 움직여 왔다. 옛말에 ‘백성들은 물과 같아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21세기의 시민이나 조직 구성원들이 ‘백성’은 아니다. 하지만 무지한 무리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만은 중요하다. ‘군주는 백성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王者以民爲天)’는 성현의 가르침이나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는 말도 다르지 않다. 흔하지만 울림이 있는 경구들이다.

구성원의 반대 목소리에 직면했을 때 리더가 취해야 할 자세가 물론 위 세 가지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자신을 낮추는 태도, 한 번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태도,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지 않는 태도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리더가 그립다. 권위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리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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