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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귀순 병사의 기생충과 미녀응원단의 생리대 사건

기사승인 2017.11.24  23: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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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얼마 전 11월 19일은 ‘세계 화장실의 날(World Toilet Day)’이었다. 이날은 ‘청결한 위생은 곧 인간 존엄성의 기본’이란 의미에서 화장실이 더럽거나 없는 전 세계 빈민층에게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어주자는 날이다. UN이 제정했다. 실제로 화장실 없어서 냇가나 숲속에서 볼일을 보는 인구가 전 세계에서 10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도의 시골에는 지금도 화장실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여자들은 새벽에 일제히 기상해서 단체로 들판에 나가서 볼일을 본다고 한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영화화한 것이 인도 영화 <토일렛(Toilet)>이다. 이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다. 깨끗한 화장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다.

북한 귀순 병사의 몸에서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나왔다고 주치의인 이국종 교수가 발표했다. 이를 두고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의사가 환자의 동의 없이 의료 정보를 누설했으므로 의료법 위반이고 인격 테러라고 했다가 호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북한 병사 기생충의 본질은 북한 주민들의 위생 환경과 일상적 섭생(먹거리)이 심각하게 열악하다는 것이다. 화장실이 없어서 숲속에서 숨어서 용변을 보는 아프리카나 인도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북한 주민들도 비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게 북한 귀순 병사 기생충 사건의 명백한 핵심이다.

기생충의 일종. 기생충은 상당히 혐오스럽게 생겼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북한 귀순 병사는 기생충 이외에도 B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 언론은 북한 주민들의 사망 원인 가운데 31%가 감염병이라고 했다. 감염병에는 말라리아, 간염, 기생충, 결핵 등이 포함된다. 특히 2015년 기준 결핵 신고율은 전 세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어 북한이 2위라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감염병에 취약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다가 속절없이 저 세상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동족으로서 측은하기 짝이 없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의 일이다. 300여 명의 북한 미녀응원단이 부산에 왔다. 남한 언론들은 연일 미모의 북한 여성응원단을 취재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간 뒤 우리 측 관계자가 믿지 못할 일화를 하나 공개했다. 당시 북측 책임자가 우리 관계자에게 상당량의 광목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더란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 천으로 만드는 광목(무명)은 1960년대 이후 남한에서는 화학섬유에 밀려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자는 시장 구석구석을 뒤져서 어렵게 광목을 다량으로 구해 북한 관계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우리 측 관계자는 도대체 광목을 어디에 쓰려느냐고 물었더니, 북측 인사는 “여성 동무들 달거리용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축구 경기가 열린 올해 4월 7일 오후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북한 응원단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 1회용 여성 생리대가 없거나 구하기 힘들거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그후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낼 때는 생리대를 꼭 포함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어떨까? 북한 관련 매체에 따르면, 북한 장마당에 1회용 생리대가 팔리긴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을 돈 주고 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여전히 여러 번 세탁해서 쓰는 광목이 생리대로 많이 쓰이고 있고, 최근에는 두루마리 휴지를 구할 수 있는 여성은 휴지를 여러 겹으로 접고 옷에 배지 않게 바깥쪽을 비닐로 대서 사용한다고 한다(뉴포커스, 2017년 8월 28일자). 휴지 생리대가 1회용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호텔 근무자 등 특권층이 아니면 두루마리 휴지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생리대에 해로운 화학 물질이 들어 있다고 목소리를 냈던 남쪽 여성들과, 비상식적 생리대를 사용하는 북한 미녀응원단의 인간적 존엄성이 참으로 대비된다.

개성공단이 가동 중이었을 때, 그곳으로 의료 봉사를 다니던 의사 한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그 분은 한 달에 한 번씩 개성공단으로 가서 2-3일 묵으면서 공단의 북한 일꾼들을 치료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하루는 새끼손가락을 다친 북한 노동자가 있어서 치료해준 뒤 남한으로 돌아갔는데, 다음 달 그 환자를 다시 만나보니 다친 손가락이 그만 절단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유를 알고 보니, 지속적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손가락이 계속 곪으니까 그쪽 의사가 아예 절단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항생제가 귀한 북한에서 일어난 참상이었다.

그 손가락을 자른 의사는, 남한 의사들이 개성공단에 처음 가서 여러 가지 의료 장비를 꺼내 놓을 때, 현미경을 보더니 “이게 X-레이 찍는 겁니까?” 하고 묻더란다. 세상에, 북한에는 현미경을 보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의사가 있었다(어쩌면 그가 가짜 의사 행세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지인은 매달 한 차례씩 개성공단에 가서 진료 봉사만 하고 다시 남한으로 돌아오기를 여러달 반복하다가, 한 번은 북한 당국자에게 개성 시내를 좀 구경시켜 달라고 했더니, 개성 시내를 차로 한 바퀴 드라이브를 시켜주더란다. 그런데 그가 한 시간가량 개성 시내를 돌면서 만난 자동차가 딱 3대뿐이었다고 한다. 고려의 충신 길재가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개성)를 조선 건국 초기에 둘러보고 지은 시조에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북한의 개성에 인걸은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동차는 간 데 없다.

북한 주민들의 꿈은 ‘고깃국에 이팝(쌀밥) 먹는 것’이라고 탈북민들이 한결같이 TV에 나와서 말했다.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김일성의 구호였던 지상낙원은 더더욱 아니다. 원래 영국의 정치가 토마스 무어는 1516년에 저술한 <유토피아>에서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동생활을 통해서 탐욕과 착취가 없는 이상향을 그렸다. 이게 '공상적(空想的) 사회주의'의 원형이었다. 그후 무어의 사상은 영국의 로버트 오웬에게 전승되었고, 오웬은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 주에 ‘뉴하모니’란 유토피아적 협동촌락을 회원 모집에 의해 실제로 건설했으나, 3년 만에 재정 적자로 문을 닫았다.

토마스 무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로버트 오웬이 미국 인디애나 주에 건설한 협동촌락 뉴하모니 유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리가 잘 아는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그렇게 낭만적으로 회원 모집에 의해 건설할 수 없다고 보고, 자본주의 사회가 내부 모순에 의해 사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 역사법칙을 이론화했다. 그래서 마르크스 이론을 '과학적 사회주의'라 부른다. 이를 실천에 옮겨 지구상에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사람이 레닌이었고, 아시아에서는 모택동과 김일성이 그 뒤를 따랐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들 사상의 공통 주제를 ‘해방(emancipation)’이라고 부른다. 권력, 자본, 착취, 지배 세력, 지배 구조, 지배 이데올로기 등 억압적인 요소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대안적 이론이라는 의미였다. 그후 이들 나라 인민들은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소련의 공산정권은 망했다. 국가가 개입한 우주 개발, 군사 무기, 선전용 볼쇼이 발레단은 세계 최고였지만, 국가가 방치한 빵과 연료는 늘 부족했다. 사람들은 평등했지만, 일을 하지 않았다. 경제적 지배계급은 없었지만, 당 간부라는 정치적 지배계급이 새로 등장했다. 이들 특권 계급을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라 불렀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perestroika, 사적 이윤 도입)와 글라스노스트(개방: glasnost, 당 간부들도 비판 받게 하는 것)를 도입해서 죽어가는 공산국가를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터져 20만 명이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먹을거리가 항상 부족하자, 1991년 보리스 옐친이 주도한 혁명으로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의 문을 닫았다. 현재 러시아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일원으로 개발도상국이면서 장기 집권하는 푸틴이 장악한 권위주의 국가가 되었다.

1991년 8월 22일 혁명의 날에 경호대에 둘러쌓인 옐친(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모택동의 중공은 문화혁명 등 이데올로기(홍, 紅) 노선과 등소평의 실용 노선(전, 專) 사이를 오가다, 결국 등소평의 득세로 실용 노선에 의해 1979년 미국과 수교하면서 개혁 개방의 길을 택했다. 중국은 '시장 사회주의'를 거쳐 현재는 사회주의라는 국가 이념을 버렸고, '시장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으며, 단지 정치적으로만 공산당은 '일당 독재'의 권력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맘껏 휘두르고 있다. 당이 한 마디 하면 중국에서 한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또 한 마디 하면 다시 나타난다. 그렇게 '시 황제'가 일당 독재의 정점에 있다.

21세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산 정권에서 왕조 세습 국가가 된 북한은 현재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이 3대째 집권하고 있다. 북한에는 두 개의 당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김정은이 통치하는 ‘조선노동당’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이 통치하는 ‘장마당’이라는 것이며, 주민들은 장마당에 의지해야 살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장마당은 중앙집권적인 국가 배급 제도가 붕괴되면서 국가가 못 먹여 살리니까 주민들이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장마당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민의 80%는 장마당에서 무언가를 팔거나 사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내가 번 돈이 생겼다. 내 소유가 생겼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고 말한다고 북한 소식을 전하는 매체들이 보도하고 있다.

북한 장마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현재 북한의 장마당에는 위조지폐도 돌고, 남을 등치는 조폭들도 설치고 있으며, 도매상은 물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재벌급 부자도 있다고 한다. 이들 재벌들과 고위 간부들의 정경유착도 벌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권력과 시장 세력이 영합해서 더 이상 김정은도 폭동이 일어날까봐 장마당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정확하게 중국과 동일한 정치 체제의 길로 가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은 없다. 평등도 없고, 자유도 없다. 경제는 통제 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로 치닫고 있다. 김정은과 공산당이란 지배계급과 이들에 착취당하는 불쌍한 피지배계급인 일반 주민이 있을 뿐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의 지배세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을 구출하는 일이다. 기생충, 결핵, 휴지 생리대, 손가락 잘린 노동자, 자동차 없는 개성시, 그리고 현미경 본 적 없다는 의사라는 모순으로부터 북한 주민 구하기, 이게 통일의 단순명료한 정의다. 다만 우리는 그 방법을 놓고 헤매고 있을 뿐이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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