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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 집어던지고 치는 수능에 목숨 거는 나라에서 제2의 이국종 교수는 없다

기사승인 2017.11.18  0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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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포항 지진 여파로 수능이 1주일 연기됐다. 만약에 이번 지진이 수능 당일 시험 보는 중간에 터졌다면, 포항 지역 4000여 명의 수험생들은 시험을 중단하고 대피했을 것이고, 지진으로 시험 못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니 공정성 논란 때문에 올해 수능이 전면 무효화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마터면, 한두 달 후쯤 새 문제로 수능을 다시 보는 희대의 사태가 올해 벌어질 뻔했다. 수능은 지진을 포함해서 태풍, 전염병, 시험지 도난 위험, 오답 소송, 공정성 논란, 난이도 불만 등에 상시 노출되어 제도의 존재 자체가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험 제도다.

또한, 이번 지진은 수능이 얼마나 ‘증오 받는’ 시험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수능이 연기되면서 다시 1주일이 추가로 주어지자, 수험생들은 ‘출정식’이라며 모조리 쓰레기로 버린 책 더미를 다시 뒤지는 소동을 벌였다. 이를 TV에서 본 어른들은 전국의 수험생들 대부분이 수능 전날 ‘수능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이름으로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를 ‘한이 맺히고 원수진 것처럼’ 내동댕이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나도 처음 알았다.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헌신짝처럼 버림받은 수능 학습서들이야말로 수능이 ‘배움의 기쁨이 주는 축복’의 교육 활동이 아니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수능 성적통지표(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 기회에 정밀한 지적 능력 측정은 대학 본고사에 맡기고, 지금 같은 줄 세우기 내지는 서열 매기기 용 수능은 일본이나 미국의 SAT(Scholastic Apptitude Test)처럼 문제은행식 기초적 학업성취도 측정으로 대체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1년에도 수차례, 졸업 전 2회 이상 보게 하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수능이 슈퍼볼도 아니고 단판 승부라는 게 우리 자녀들에게 너무 심한 부담을 준다.  

외국인용 영어 능력 시험인 토플이나 토익은 전 세계 수백 만 비영어권 사람들을 상대로 1년에 수십 차례씩 진행된다. 돈 만 내면, 매달 칠 수도 있다. 이게 수십 년 반복되고 있는데도 매번 문제의 상이함에 따른 성적의 공정성 시비가 일어난 적이 없다. 문제은행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기반의 토플(소위 iBT토플)은 선다형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주관식 쓰기(논술)와 말하기 시험이 있고 이것도 채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제풀이, 주입식 교육의 대안인 토론 수업, 발표 수업 등도 우리 교육 현장에 얼마든지 도입될 여지를 주고 있다. 최근 토플의 반은 주관식 에세이 쓰기 시험과 말하기 시험인데, 이것도 아무 논란 없이 각 30점씩 60점 만점으로 채점된다. 도대체 전 세계에서 수집된 수만 장의 주관식 쓰기 시험지와 말하기 녹음 파일을 매번 누가 어떻게 채점하는지 그 노하우가 정말 궁금하다.

토플 주관 기관인 ETS 로고(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 자격 시험인 ‘바깔로레아’ 시험 문제은 시험 자체도 신기하지만 그런 시험이 가능하게 한 교육 방법과 내용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 언론에 소개된 바깔로레아 문제 중에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증명 이외의 다른 방법은 있는가?” “자기 자신을 아는 것보다 타인을 아는 것이 더 쉬운 일일까?” “법이 나의 행복을 결정하는가?” 등이 있었다. 그동안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언어화하는 시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런 것을 논술하도록 가르치지도 않았고, 논술 채점의 타당성을 놓고 국가가 혼란에 싸일 게 뻔하다. 그런데 프랑스는 시험이 이렇다면 교육도 이에 걸맞은 지적 항해(航海)가 되도록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적어도 주입식 교육은 아닐  테니 부럽기 한이 없다.

우리 식 수능에 따른 암기식, 주입식, 문제풀이식 교육의 결정적 문제는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에서 나타난다. 2012년 에듀모아가 조사한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업 1위는 연예인이었다. SBS의 <세대공감 퀴즈쇼>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이 1980년대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는 이순신, 2위는 유관순이었는데, 19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이 1위, 서태지가 2위였으며, 2012년에는 1위가 김연아, 2위가 유재석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의 머리와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학교도, 선생님도, 부모도, 역사적 영웅도 아닌 TV였다.

한 마디로 주입식 교육의 문제는 피교육자의 수동성이다. 아이들을 탓할 것도 못된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1등을 해야 한다며 조기 교육과 선행학습을 받으러 학원과 학원으로 헬리콥터 맘의 손에 이끌려 다녔다. 스스로 학습할 이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선택의 자유 없이 인생 출발부터 깊숙하게 내재된 공부 강박관념이 우리 아이들을 수동형 인간으로 끌고 갔다. 공교육은 겉치례가 되고, 사교육이 실세가 됐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비전을 가르칠 여지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에 온 학생들은 주입식 수능 중심 교육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드러낸다. 부모가 간섭의 손을 뗀 대학에 오자, 학생들은 공부할 이유를 잃어 버린다. 자유가 방향 상실로 이어진다. 4학년이 돼도 진로를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일부 학생들만 장학금이나 취업을 공부할 이유로 생각한다. 

최근 수 년간 학생들의 강의 집중도가 현격히 떨어진 것을 발견한 나는 어느날 강의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에게 돌발적으로 그날 과목의 노트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나중에 하나하나 들춰보니, 전공 필수 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트가 없는 학생도 있었고(노트북으로 적은 학생은 파일로 전송 받았음), 노트는 냈지만 그날 두 시간 동안의 수업 시간에 필기한 내용이 고작 '단어 하나', 혹은 '단 한 줄'밖에 적혀 있지 않은 학생들이 반을 넘었다. 약 20% 정도의 학생들만이 무언가를 몇 줄 적어 놓았다. 다음 주 노트를 돌려주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봤다. 노트 필기를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학생들은 학습할 의욕이 없다고 했다.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러니 강의 내용을 노트에 적을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성적은 잘 받아야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 조금 철 든 학생들이 한 필기는 고작 교수가 판서한 내용을 복사한 것처럼 따라 적은 게 전부였다. 학생들은 죽어 있는 거대한 벽이었다. 나는 그동안 벽을 대고 강의한 것이었다.

최근 언론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국이나 일본의 소프트웨어, 로봇, 셰일석유, 전기차, 인공망막 등에 대한 연구 성과를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에 바쁘다. 결론은 항상 우리 교육이 큰일이라는 것이었다. 교육은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이다. 쓰레기가 입력되면 쓰레기가 출력된다는 뜻이다. 수능과 같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쓰레기라면 당연이 그 결과도 쓰레기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언가 다른 게 입력되어야 지식을 해석하고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창의력이 산출된다. 공자, 예수, 석가모니는 외부의 입력보다는 영감과 성찰이란 자신 내부와의 대화를 통해서 지식을 생산했지만, 성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은 독서, 여행, 대화(멘토링), 뉴스 읽기와 같이 외부로부터 정보가 입력되어야 창조적인 지식이 생산된다. 

독서 교육은 가장 확실하게 외부로부터 오는 정보 보물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이를 정리해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쓰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프랑스 바깔로레아 문제 중에는 ‘권위에 대한 칸트’의 지문, 사르트르의 ‘도덕에 관한 노트’의 지문,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에 관하여’ 지문,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지문을 읽고 논술하라는 문제들도 있었다. 아마도 프랑스는 고등학교 과정에서 철학 교수나 읽을 법한 이런 철학 책들을 모든 학생들에게 교과 과정에서 읽게 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는 모양이다. 세계적 고전 100권을 읽어야 졸업할 수 있다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The Great Books 프로그램’도 있다. 이 대학에서는 책 100권을 읽으면서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라"고 권한다고 한다. 우리 초중고 교육과정에 책 한 권을 앞표지에서 뒷표지까지 확실히 읽고, 발표하고, 리포트 쓰는 시간이 과연 있었을까? 중요한 책 내용의 요약본을 외우게 하거나, 책의 일부 지문을 놓고 문제풀이하는 요령을 배우는 게 우리 식 교육의 한계였다. 이는 책 내용을 알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책의 정신을 느낄 수 없는 교육방법이었다.

시카고대학의 도서관 내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미국인은 한 달에 평균 6.6권의 책을 읽고, 일본인은 6.1권의 책을 읽지만, 한국은 겨우 한 달에 1.3권의 책을 읽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지식은 책이 아니면 도대체 어디에서 얻은 것이며, 책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 얻은 지식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한국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반도체가 생산되고 어떻게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과 세탁기가 나오는지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그렇게 책을 읽지 않고도 이 정도 산업을 일구고 경제적 성취를 보이니 기적은 기적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람들의 재주는 대단하다. 다만 그 재주는 임시방편적이고 뿌리가 깊지 않은 게 빤히 보인다. 그래서 한국 경제는 지진에 약하다는 필로티 구조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최근 판문점에서 귀순하다 총격으로 쓰러진 북한 병사를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아주대 이국종 교수가 치료 중이라고 한다. 1년에 중증 외상 환자를 수송하기 위해 200회 헬기를 타고 집에 퇴근하는 날도 그리 많지 않다는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과를 전공하려는 후배 의사들이 없어 큰일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의사가 돼서 돈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게 의사의 본질이고 의사가 갖춰야 할 가치관이다. 검사가 돼서 권력의 칼춤을 추며 폼을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게 검사의 본질이고 가치관이다. 우리 식 교육 제도에서 성공하면 대개 문과는 변호사, 이과는 의사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수능식 교육은 아이들의 영혼, 즉 가치관을 가르치지 못한다. 그래서 의대에서 사람 생명과 관계 없이 돈 버는 데 최고인 성형외과 의사 지망생은 넘쳐도 교통사고로 내장이 엉망이 된 사람을 살리려고 사투를 벌이는 중증외과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시, 정시, 내신, 학종, 입학사정관제 등을 정교화한다고 해도 결국 중고등학교 교육 자체의 문제는 남는다. 우리나라 수능과 이것이 상징하는 교육제도는 학생들 배움의 의욕을 꺾고 가치관과 비전을 찾지 못하게 한다. 그런 수능에 목숨 거는 나라에서 노벨상은커녕 제2의 이국종 교수가 나오기는 힘들다. 수능을 비롯해서 수능을 풀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을 확 바꾸어야 한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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