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치 보복’ 발언에 모욕감 느끼는 국민들...“나쁜 장교가 있을 뿐 나쁜 사병은 없다” MB 책임 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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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치 보복’ 발언에 모욕감 느끼는 국민들...“나쁜 장교가 있을 뿐 나쁜 사병은 없다” MB 책임 규명해야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7.11.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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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1897년부터 1903년까지 비밀리에 미국 침공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목적은 태평양과 남미 등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1906년에 영구 폐기되긴 했지만 당시 미국을 굴복시키려던 독일제국의 야심이 담겨 있다.

미국을 꺾으려 했던 빌헬름 2세의 속내는 그가 런던에서 만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의 대화에서 표출됐다. 빌헬름 2세가 루스벨트에게 말했다. “내일 2시 정각까지 꼭 와주세요. 제가 45분밖에 시간이 없거든요.” 루스벨트의 방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리는 모욕적 언사였다. 이에 루스벨트가 답했다. “네, 2시까지 맞춰 갈게요. 그런데 어쩌죠. 저는 20분밖에 시간이 없는데.” 모욕으로 모욕을 되갚은 셈이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오른쪽)와 유럽을 방문한 시오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되베르츠란 곳에서 만난 1910년의 모습(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윈스턴 처칠 또한 상대방의 모욕에 노련하게 응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지 버나드 쇼가 처칠에게 자신의 연극 공연 첫날 입장권 두 장을 쪽지와 함께 보냈다. “친구랑 같이 보러 오세요. 혹시나 있다면.” 이에 처칠은 “공연 첫날에는 다른 약속이 있으니 둘째 날 입장권을 보내주세요. 혹시나 있다면.”

이번에는 저녁 파티에서 만난 영국 하원의원 낸시 애스터가 처칠에게 말했다. “윈스턴, 내가 당신과 결혼했다면 아마 당신 커피에 독을 탔을 거예요.” 처칠이 응수했다. “낸시, 만일 당신이 내 부인이었다면 난 그 커피를 마셨을 거요.”

처칠 영국수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윌리엄 어빈이 <알게 모르게, 모욕감>에서 소개한 모욕의 사례들이다. 그는 모욕이 사회적 욕구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늑대는 발톱과 이빨로 힘의 우위를 확인하지만 인간은 모욕적인 말로 이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모욕적 언사를 무시한 채 자존감만 지키면 모욕감을 느낄 일이 없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이야 모욕적 언사를 참아낼 ‘내공’을 쌓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모욕은 다양하다. 갑을 관계에서 빚어지는 폭언, 짓궂은 장난과 묵살, 뒷담화, 암시에 의한 모욕, 냉소 등 헤아리기 어렵다. 모욕은 사회관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나는 감정이자 행위이다.

우리나라 형법이 규정하는 ‘모욕’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모욕죄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아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명예훼손죄와 약간 다르다.

모욕죄의 성립 요건은 불특정 및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인 ‘공연성’과 제3자가 피해자를 인식할 수 있는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 1대1 대화만으로는 폭언이 오가더라도 공연성이 결여돼 모욕죄가 성립되기 어렵다.

엊그제 서울에서 이웃 주민을 헐뜯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38) 씨가 5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그는 “B 씨가 이웃을 험담하고 다닌다”며 허위 사실을 퍼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죄명은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죄. 구체적 사실이 아닌 상대방의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표현을 사용해서다.

감정 근로자에 속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모욕감에 시달리기 일쑤다. 지난 3월에는 입주민의 폭언에 모멸감을 느낀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가해 입주민의 책임을 인정해 2500만 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2012년에는 경남 창원에서 입주민한테 폭언과 폭행을 당한 아파트 경비원이 투신해 목숨을 끊자 유족들이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소한 ‘갑을’ 관계에서 빚어지는 모욕감이 자살로 이어지는데 하물며 권력에 의한 모욕은 말할 필요가 없을 터. 그것도 국민을 상대로 한 모욕일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엊그제 출국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을 가리켜 ‘정치 보복’ ‘감정풀이’라고 맹비난했다. 검찰 수사가 자신을 향하자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 상당수 국민들이 일말의 모욕감을 느꼈을 것 같다. 군과 정보기관을 동원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들 눈과 귀를 가렸던 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할 말은 아니기 때문. ‘적반하장’이라는 비판도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 대선에 개입하고 댓글 의혹과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으로 국민들을 ‘갖고 논’ 사람이 누구인지, 최대의 피해자인 국민들이 묻고 있다.

나폴레옹 1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나폴레옹은 “나쁜 장교가 있을 뿐, 나쁜 사병은 없다”고 했다. 지금 댓글 의혹으로 사병들이 줄줄이 구속되는데 장교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되레 역정을 내고 있다. 국민들이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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