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적신 '풀꽃' 나태주 시 강연...'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 시'
상태바
가을밤 적신 '풀꽃' 나태주 시 강연...'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 시'
  • 취재기자 김예지
  • 승인 2017.11.13 0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낭송 / 김예지 기자
지난 10일 경남 김해 장유도서관에서 나태주 시인이 강연하고 있다. 이날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각실은 유쾌한 웃음소리가 넘쳤다. 부모 손을 잡고 함께 온 초등학생부터 중년 부부까지 다양한 청중들이 자리를 메웠다(사진: 취재기자 김예지).

2012년 방영된 드라마 <학교 2013>에서 학급회장 고남순 역을 맡은 이종석은 강제 전학을 가는 동급생에게 위로의 말 대신 시를 읊어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암송하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다.

나태주 시인의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 시' 강연이 지난 10일 오후 7시 경남 김해 장유도서관 3층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이현주, 김미정 선생이 강연 시작 전 <어여쁜 짐승>, <꽃2>, <풀꽃> 등 시를 낭송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예지)

이날 강연은 <어여쁜 짐승>, <꽃2>, <풀꽃> 낭송으로 시작됐다. 두 사람의 고운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 시는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 울림이 더 크고 깊었다. 시인은 두 사람의 낭송을 칭찬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을 자주 다니는 그는 “집사람이 집인 것 같다”는 소감으로 강연의 문을 열었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길을 나설 때, 아내가 동행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그럴 때마다 집을 떠나오는 것이 아닌, 집이 시인과 함께 가는 듯 느껴졌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가는 시인은  부부간의 깊어지는 정을 그렇게 표현한 듯했다.

나태주 시인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그는 당시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사범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43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그는 "그런 (교직) 경험 덕분에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맞는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며 "그런 시인은 자신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의 철학에 대해 말했다. 나태주 시인은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게는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또한 시인은 줄곧 "시는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고, 어려운 말에 갇히지 않게 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사람들에게 읽히고 감동을 주는 그의 시는 이런 그의 철학에서 나왔나보다. 그는 "문자 안에 갇힌 시는 어렵지만, 말하듯이 가는 시는 쉽다"고 말했다. 

나태주 시인은 시인과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고은 시인의 시를 읊었다. 그런데 나태주 시인은 "이 시가 <순간의 꽃>이란 고은 시집 속에 제목 없이 있던 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꽃>이라고 부른다. 알려지지 않은 독자가 지은 것"이라고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나태주 시인은 시란 것은 이렇게 독자들에게 시인보다 더 사랑받는게 좋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바라는 시와 시인은, 나중에는 시인의 이름이 지워지고, 그 시만 남아 사람들이 그 시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도 독자들에 의해 널리 읽히면서 독자들이 제목을 달아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로 시작하는 <내가 너를>이라는 시가 바로 그것. 이 시는 시집 어딘가에 숨어있던 시인데 누군가 인터넷에 시를 띄웠다고 한다. 시인 마저도 이게 자신의 시인 줄 몰랐다고 한다. 독자들이 이를 읽고 제목도 독자가 썼고, 네 줄짜리를 풀어서 시의 행과 열을 바꿨다고 한다. 시란 이렇게 독자들이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게 바로 독자들의 힘이지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의 마지막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이 마지막 구절은 특히 사람들에게 많이 낭송되는 인기 문장이다. 나태주 시인은 바로 이 부분을 을 언급하며 시인은 좋은 시가 되려면 시 속에 "신이 주신 문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오랜 고심 끝에 표현된 시 구절이 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신의 문장이라며, 나태주 시인은 이 문장을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시구절은 신이 잠시 왔다 남기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자존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복사본이 아니다. 우리는 유일본이다. 이쁜 건 제 눈의 안경이다. 누구를 따라 하려고 하지 말자"며 “자세히 안 봐도 예쁘다. 오래 안 봐도 사랑스럽다. 내가 그렇다.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세상 첫날처럼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처럼, 욕 안 얻어먹고, 밥 안 얻어먹고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밝힌 시인은 눈 뜨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가서 시를 열어본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과일을 깎아서 꼭 컴퓨터 앞에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해마다 1월에 책을 쓰는 시인은 “모든 건 아내 덕이다. 둘이 있는데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아내가 도와준다”며 아내에게감사를 표했다.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시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100년 후에도 나의 독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저 역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는 마리 로랑생의 <잊혀진 여자>를 언급하며, "우리는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시인들도 나를 기억하고 불러주는 곳은 어디든, 언제든지 가야 한다. 묻지 말고 강연을 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묘비명으로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라는 글귀를 준비했다고 한다. 원래는 <풀꽃>을 묘비명으로 하려고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영화에서 배종옥이 연기한 인희가 죽었을 때 묘비명으로 <풀꽃>을 이미 써버렸기 때문에 그 후 다시 묘비명을 새로 썼다고 한다. 그는 자식이 나이가 들어 자신의 무덤을 찾았을 때 아마도 자신의 묘비명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런 묘비명을 지었다고 소개했다.

시인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청중들이 줄을 섰다. 청중들은 시집을 두세 권씩 꺼내 사인을 부탁하기도 하고, 때론 소지품에 사인을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자신의 시 일부를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적어갔다(사진: 취재기자 김예지).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인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대숲 아래서>로 등단했다. 2007년까지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2010년부터는 공주문화원 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아이들과 교감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써온 시인은 현재까지 135권의 시집을 펴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