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둘러싸고 들끓는 여론...“내 몸은 나의 것” vs “생명 경시 풍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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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둘러싸고 들끓는 여론...“내 몸은 나의 것” vs “생명 경시 풍조 우려”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7.10.3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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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낙태죄 폐지 및 자연 유산 유도약 합법화' 청와대 청원 20만 명 넘어서 / 신예진 기자
지난달 30일 청와대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 글이 게시됐다.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해당 글에 서명을 남겨 청와대의 답변을 듣게 됐다(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 홈페이지에 등록된 낙태죄 폐지 및 자연 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아직도 낙태죄를 놓고 찬반 여론이 거세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코너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 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 글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아이를 키우기 힘든 이 나라에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라며 낙태죄 청원 배경을 설명했다.

청원인은 자연 유산 유도약 일명 ‘미프진’과 관련해 “불법 낙태 수술을 받을 경우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며 “미프진으로 안전하게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구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어날 미래의 국민보다 이미 태어난 국민의 행복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경구약인 ‘미프진’은 낙태 수술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궁 내 착상된 수정체에 영양 공급을 차단하고, 자궁 수축을 유도해 수정체를 배출시키는 원리다. 해당 약은 유럽 등 119개의 국가에서 의사 처방을 전제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는 수입 금지 품목이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여성보건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수술이든 약이든 낙태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탓에 낙태 수술 부작용과 후유증이 심각해도 그에 맞는 기술이 개발되지 못한다”며 “미프진은 낙태 수술보다 부작용 및 후유증이 적고 불임 가능성이 없어 12주 이내 임신부에게 처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형법 269, 270조에 따라 우리나라는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이 약물을 이용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낙태 시술을 한 의료인도 2년 이하 징역형을 받게 된다. 모자보건법 상 유전적 정신 장애와 신체 질환, 성폭행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낙태죄 폐지 청원과 자연 유산 유도약 청원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혼모의 비율을 줄이고 임산부에 노출된 의료 사고의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도 여성이 가져야 할 권리로 보고 있다.

직장인 신모(30) 씨는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아도 (낙태) 수요는 꾸준하다며 낙태죄 폐지에 힘을 더했다. 신 씨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도저히 낳을 수 없는 환경이라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낙태를 하는 여성이 있을 것”이라며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괴로운 산모에게 불법 낙태로 더 큰 위험을 안겨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낙태 비율이 높아질지는 몰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산부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네티즌도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 때문에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이 낙태를 결정하는 시기는 대부분 임신 초기의 세포인 배아상태일 때”라며 “태어나지 않은 생명도 소중하지만, 태어난 사람의 행복한 삶은 더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낙태죄 적용 대상이 ‘여성’에 한정되는 부분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여성의 임신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 현행법 상 남성이 낙태 수술을 강요하거나 방조했다는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사실상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구조인 셈이다.

한 네티즌은 이와 관련해 임신한 여성을 책임지는 남성이 많았다면 낙태를 고려하는 여성의 수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를 둘 다 책임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낙태 수요가 없을 것”이라며 “여성이 아이를 혼자 낳고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이 닥치니 어쩔 수 없이 본인의 몸이 상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법 낙태 수술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에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죄를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고 낙태죄 유지를 찬성하는 측은 태아 생명권을 언급하며 무분별한 낙태에 따른 생명 경시 풍조를 우려하고 있다. 뱃속의 태아도 인간이며 이를 죽이는 것은 살해라는 것. 한 네티즌은 “어미라는 이유로 합법적인 살인권을 부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낙태 합법화는 임신한 여성이 궁지에 몰리는 경우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네티즌은 “일부 남자들이 피임도구 없이 관계를 종용하고 임신을 하면 쉽게 낙태를 권유하는 상황도 올 것”이라며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절차를 까다롭게 제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불합리하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안전 장치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한 달이 지난 30일 ‘낙태죄 폐지 및 유산 유도약 합법’ 청원은 23만 명이 넘는 이들이 서명에 동참하며 마감됐다. 청와대는 앞서 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이 넘으면 청와대나 정부 부처가 공식 답변을 하기로 방침을 세운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청원은 청와대의 두 번째 답변을 받게 된다. 청와대의 첫 번째 공식 답변은 지난달 25일 소년법 개정 청원에 관한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정부가 답을 할지 청와대가 할지는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관계자는 “대통령령이나 청와대 지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법률 문제”라며 “(낙태죄가) 헌법재판소에서 4 대 4 동수로 합헌 결정이 난 사안인 만큼 답변 준비에 만전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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