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국정감사 전쟁, 트럼프 방한 앞둔 전운(戰雲)...증오의 당파싸움은 탈북자도 발을 돌리게 할까 두렵다

기사승인 2017.10.27  19:50:57

공유
default_news_ad2

-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임진왜란 발발 직전인 1590년, 일본을 1년 간 정탐한 뒤 돌아온 황윤길과 김성일이 선조에게 이렇게 아뢴다. 황윤길은 “필시 전쟁의 화가 닥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김성일은 “신은 그런 정상(情狀, 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을 보지 못했습니다. 황윤길이 과장해서 아뢰어 인심을 동요시키니 사리에 아주 어긋납니다”라고 말했다고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이하 고문헌 인용은 송기호 지음, <과거보고 벼슬하고> 참고). 임진왜란의 주범 풍신수길에 대하여 황윤길은 다시 선조에게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력과 지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라고 아룄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못됩니다"라고 말했다. 황윤길은 당시 서인이었고, 김성일은 동인이었다. 같은 상황과 사람을 두고 정 반대의 평가를 내린 당시의 당파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그후 곧 왜군이 쳐들어오고, 전쟁 준비가 안되어 있던 조선의 왕 선조가 순식간에 쫓겨 압록강으로 피난 가면서 지은 시가 <난중잡록>에 남아 있다. “....압록강 바람에 마음이 아프네/조정 신하들아 오늘 이후에도/또다시 서인이니 동인이니 하려나.”

선조의 장탄식 이후, 당쟁은 종식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음 글이 그 증거다. “인물이 현명한지를 분간하지 않고 자기편인지를 따져 취하거나 버리고, 논의가 그른지는 묻지 않고 자기편인지를 따져 옳다거나 그르다고 한다.” 이 글은 얼마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무차별 인신공격과 여당의 자기 식구 감싸기를 비판하거나, 탈원전 정책을 두고 찬반 진영이 다투는 최근 사태를 누군가가 지적한 말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시대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낸 이원익이 1609년 당시의 당파싸움을 꼬집은 말이다. <광해군일기>에 나온다. 1609년 이원익의 표현과 2017년 현재의 당쟁 양상은 408년이란 시차가 무색하게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동일하다.

1609년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11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임진왜란 자체도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으로 사전에 대비하지 못해서 당한 전쟁이었는데도 이 지경이었다. 하물며 임란 후 120여 년이 지난 영조 시절에도 당쟁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1724년 유배 가는 자기 당파 사람의 구명을 위해 눈물로 영조에게 호소하는 신하에게 영조는 “(네가 우는 이유는) 임금을 위한 것이냐, 당론을 위한 것이냐?”라고 꾸짖는 대목이 <영조실록>에 나온다. 1737년에 영조는 또 “임금은 하나인데 신하는 셋으로 나뉘었으니, 각자 어느 임금을 섬기려는가?“라고 당쟁을 탓했다. 이씨 왕조인 조선의 왕이 이렇게 신하들의 당파싸움에 질질 끌려 다닌 게 사실인가? 역사 상식을 의심할 정도로 조선의 국왕들은 이렇게 신하들의 당파싸움 앞에서 무기력했다.

당파싸움으로 골머리를 앓은 영조는 당쟁을 줄이려고 탕평책을 실시했다. 사진은 영조 어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조선도 가고, 일제강점기도 지났고, 황윤길과 김성일의 임진왜란 직전의 상극 발언이 있은 지 427년이 지났음에도, 사드와 북핵처럼 한 가지 상황을 놓고 당파에 따라서 다른 말을 하는 현상이 오늘의 정치권에서 재현되고 있다. 트럼프가 곧 한국을 방문한다는데 반미 단체들은 트럼프 한국 체류 시 동선을 따라다니며 주한 미국 철수를 외칠 계획이란다. 한국당 대표 일행은 현재 미국을 방문해서 연일 친북좌파 때문에 한미동맹이 위협 받고 있다고 미국민 앞에서 떠들고 있다.

우리 민족은 원천적으로 패를 지어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게 ‘당파성론’이다. 당파 성향을 우리의 민족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일제의 잔재인 식민사관이라 하여 우리 역사책은 이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이란 책의 다음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에도 당파가 있기는 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조선인 같이 구식의 당파심에 사로잡혀 주의주장에 입각하지 않는다. 조선인 같이 가계, 계급, 신앙, 이익을 토대로 쉽게 공고한 당파를 만드는 자를 나는 여태껏 듣도 보도 못했다...양반 계급 인사들은 명백하게 각 파벌의 당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좋고 싫음과 취사(取捨)를 결정짓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이 글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헐뜯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겠지만, 일부 인정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노예 해방을 두고 남북전쟁을 치렀으며, 사망한 군인 수는 양측 합쳐 14만 명에 이른다. 캄보디아 공산정권은 1975년부터 4년간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식인 부유층 200만 명을 학살했다. 르완다의 후투족은 1994년 정권을 잡으려고 반대파인 투치족 100만 명을 한 달 만에 살해했다. 그게 당시 르완다 인구의 1/6이었다고 한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와중에 기자를 실은 차가 도로를 급하게 달리는데 길바닥을 완전히 채운 시체 더미 때문에 차체가 쿨렁쿨렁하는 모습을 잔혹하게 보여준다. 세상에 당파 없는 나라는 없다. 다만, 그 당파성으로 나라가 한 번 결단이 난 뒤, 정치하는 방법의 개선 여부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르완다 대학살 추모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르완다 대학살 추모관에 보관된 희생자들의 해골(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리나라의 해방 공간에서 김구, 장덕수, 안재홍 등이 정적(政敵)으로부터 암살당했고, 한국전쟁도 수백 만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민족 분단을 낳았다. 여야가 정권을 주고받는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정치 양상은 당쟁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들은 가족과 측근이 감옥을 들락거렸고, 노무현 대통령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 중이고,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파성으로 곡절을 겪은 나라 중에서, 우리는 개선보다는 정치 폐단의 반복과 보복이 악순환되는 편에 서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괴시하듯, 미국 택사스 주의 한 대학에서 열린 허리케인 이재민 돕기 자선 음악회에 생존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 5명이 전원 참석해서 나란히 사이좋게 포즈를 취한 사진이 미국 언론에 실렸다. 21일자였다. 바로 이어서 29일자 미국 언론에는 오바마, 클린턴, 아들 부시 3명의 전직 대통령이 프레지던트컵 골프대회에 초대되어 어깨동무하고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도 공개됐다. 대부분 국내 언론 사설들은 이런 모습을 동경하며 한국의 정치 풍토를 아쉬워했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의 극단적 대결 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대통령 파면과 국정 농단 재판, 대통령 선거, 인사 청문회, 적폐 릴레이, 북핵 갈등, 탈원전 이슈, 최근의 국정조사에 이르기까지 숨이 멎을 지경이다.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여야는 기다렸다는 듯이 국감장을 고성, 막말, 삿대질로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급기야는 한국당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 문제로 국감을 전면 보이콧하기로 했다. 날이 갈수록 정당간 갈등이 수렴되는 게 아니라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미국의 고고학자 이안 모리스는 “시대의 필요가 생각을 만든다”고 했다. 이 명제는 시대가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는 의미를 더 중시한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시대가 달라졌고 캄보디아나 르완다 같은 후진국도 아닌데, 정권을 잃으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것 같은 비장한 심정으로 상대방 미래 생존의 씨를 말리려는 조선시대 방식의 당쟁을 왜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한 탈북자가 방송에 나와서 남한을 동경하고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가수 해바라기가 부른 <모두가 사랑이에요>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모두가 사랑이에요/사랑하는 사람도 많구요/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로 이어지는 이 노래를 몰래 들은 탈북자는 ‘아니 이 지구상에 모두가 사랑인 세상도 있단 말인가?’ 하는 충격을 받았단다. 증오, 고발, 감시, 숙청, 강요만 있는 북한에서 자란 탈북자가 새 세상을 찾아오게 한 그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없다.

15일 통일부는 한국에 정착하는 탈북민 숫자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9% 줄어들고 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감시가 심해져서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제3국을 찾거나 재입북하는 탈북자도 자꾸 생기는 것을 보면, 탈북자마저도 증오가 가득한 남한을 기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러다간 남한도 싫고 북한도 싫어서 제3의 중립국을 택한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인 전쟁포로 이명준이가 속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