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종결자’ 부산의대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제대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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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종결자’ 부산의대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제대로 했을까?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10.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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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중국 최고(最古), 최고(最高)의 사서로 평가받는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현실주의자였다. 공자, 맹자 등 유가(儒家)를 “입만 열면 인의(仁義)를 떠벌리지만 궁상맞은 이상주의자에 불과하다”라고 못마땅해 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호리지성(好利之性)’으로 단언하면서 “천하가 희희낙락하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모여들기 때문이고 천하가 흙먼지가 일 정도로 소란스러운 것은 모두 이익을 찾아 떠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요즘 시대의 눈으로 보면 사마천은 냉철한 행동심리학자라 할 수도 있겠다.

그 사마천 <사기>의 여러 열전(列傳: 유명 인물 전기) 중에 '화식열전(貨殖列傳)'이 있다. 재산을 크게 불린 부자들의 이야기다. 정치인, 무인, 사상가가 아니라 주로 성공한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썼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릇 보통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 배 재산이 많은 부자에 대해서는 헐뜯기를 일삼고, 백 배 부자는 두려워하고, 천 배 부자는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 부자는 그의 노예가 된다”

사마천 초상화(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통렬한 분석이다. 시대를 관통해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명제다. 여기서 ‘재산’을 정치, 경제, 사회적 ‘힘’으로 치환하면, 지금 한국 땅에서 횡행하는 ‘갑질’의 행태를 분석하는 도구로도 인용할 수 있을 듯 싶다. 자신보다 정치, 경제, 사회적 힘이 백 배 정도 약한 사람은 개돼지처럼 가소롭게 보고, 만 배 정도 약한 사람은 거의 노예처럼 부리는 갑의 횡포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항공사 회장 딸이 스튜디어스가 땅콩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마구잡이 폭언과 폭행을 가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게 불과 몇 년전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미스터 피자, BBQ 등 프랜차이즈 업주의 가맹점에 대한 횡포, 당번병을 마치 머슴처럼 부린 육군대장의 부인, 대학원생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가혹행위한 대학교 교수 등 갑질의 각종 민낯이 잇달아 폭로됐다. 이런 갑질 사례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을‘로서 살아왔고 지금도 ’을‘로 살고 있는 많은 서민들은 속을 끓인다.

일반 직장에서 하급 직원에 대해 벌어지는 갑질, 영업직 사원들이 거래처에서 받는 갑질 스트레스는 이제 거의 상식이 될 정도다. 한 취업 포털이 2014년 직장인 39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 정도가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반말(25.4%), 무시(25.1%)는 예사고 욕설(19%), 향응 요구(14%)도 적지 않았다. 2013년 국회에서 열린 재벌, 대기업 불공정 횡포 피해 사례 발표에서는 “자식뻘인 영업 담당에게 욕설과 협박, 갈취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웬만한 갑질엔 태연할 만큼 내성을 가졌고 신문 방송에서 터져 나오는 휘황찬란한 갑질 얘기에도 “뭐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엊그제(24일) 국회 국감에서 드러난 부산대 병원 전공의 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다들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에 따르면, 부산대병원 정형외과 A 교수는 전공의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폭행을 휘둘렀다고 폭로하고 다리에 피멍이 들고 정강이 구타를 당한 뒤 심한 부종으로 피를 뽑은 전공의 사진을 제시했다. 군대에서도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원산폭격 얼차려를 거리에서 시키는가 하면 넘어져 있는 상태에서 마구 발로 짓밟기도 했다는 것이다.

거의 조폭 사회에서나 벌어질 법한 이런 비인도적 폭력이 상아탑에서, 더욱이 인명을 소중히 다뤄야할 대학병원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이런 폭행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은 교수가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의사가 되느냐 여부는 교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교수는 전공의들에게 만 배나 되는 절대권력의 소유자였던 셈이다.

문제는 이 대학병원에서 교수의 폭행이 만연하고 있지만 병원 측은 이를 덮어두기에만 급급하다는 점이다. 또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2017년 전공의 수련의 근무 실태를 보면 71.2%가 언어 폭력에 시달리고 21.3%가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그럼에도 부산대 병원 고충처리위에 접수된 교수 폭행 사건은 단 1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병원 측은 수련의들의 진정으로 해당 교수에 대해 조사를 했으나 정직 3개월의 경징계만 내렸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았다고 의원들은 질타했다.

의료인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사회에 나설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만 할 것이며, 개인으로서, 전문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또 “자신이 얻은 의학적 지식을 제자들에게 법과 규약에 따라 성실히 전하겠다”는 맹세도 들어있다. 제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A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냥 건성으로 했을 게 틀림없다. 아니면 내심으로 법과 규약에 따라 제자들에게 의술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분에 따라 폭력적으로 교육하겠다고 맹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히포크라테스가 학생들에게 의술을 강의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요즘 인터넷에선 갑의 무한 권력을 꼬집는 ‘슈퍼 갑’ ‘울트라 갑’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갑처럼 군림하려는 사람을 '갑마인드 소유자'로 부르기도 한다. 갑질은 대략 이런 것이다. “개인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한다. 조직의 이익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한다. 을을 하인 부리듯하며, 을이라면 손윗사람에게도 반말한다. 자신의 과오를 을에게 떠넘긴다. 배경 설명없이 무조건 따르기만 강요한다.”

부산의대 정형외과 A 교수는 제자들에게 슈퍼갑 중의 슈퍼갑, 울트라 갑 중의 울트라 갑 행세를 했다. ‘갑질의 종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울트라 갑 교수를 보도하면서 익명 처리하고 사진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권 보호도 좋지만 세상에 경각심을 높여준다는 차원에서 그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런 울트라 갑의 인권이 그렇게 보호되는 동안 ‘울트라 을’들의 인권은 점점 더 침해를 받기 마련이다.

영국 권위지 '인디펜던트'는 얼마 전 한국의 갑질 문화에 관해 특집 보도를 하면서 ‘갑질’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없어 한국어 발음나는 대로 ‘gabjil’이라 썼다. 조만간 ‘chaebul(재벌)’과 마찬가지로 그 한국어 스펠링 그대로의 ‘gabjil’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될지도 모른다. 한국어의 국제화라는 차원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인의 천민 자본주의 문화를 널리 광고한다는 점에서 부끄러워 해야할지 아리송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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