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잣대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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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잣대와 언론
  • 신병률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11.11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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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내면에 존재하는 무형의 잣대를 사용한다. 선악(善惡). 미추(美醜), 시비(是非: 옳고 그름) 등의 판단이 그렇게 내려진다. 자는 어떤 대상의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이므로 당연히 그 대상의 크기나 모양이나 외부환경 등과 무관하게 눈금의 간격이 늘 일정해야 한다. 눈금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이는 내면의 잣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잣대를 한결같은 유지하고 적용하기란 실제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경향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우리 아이가 한 잘못은 용서가 되고 남의 아이가 한 잘못은 눈에 쏙 박히거나, 내가 교통신호를 위반한 것은 늘 그럴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는 그저 그가 몰지각한 인간이기 때문이고, 내가 침묵하면 깊이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화내는 것은 주관이 분명해서지만 남이 화내는 건 성격이 더러워서라는 식으로 우리는 내면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

그래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을 얼마나 공평무사한 잣대로 판단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옛말에 是故君子自難而易彼(시고군자자난이역피) 衆人自易而難彼(중인자역이난피)이라 하여, 군자는 스스로 어려운 일을 떠맡고 남에게는 쉬운 일을 하게 하지만 보통 사람은 어려운 일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했다(묵자, 친사편). 이렇듯 동양의 전통은 공평무사함을 넘어서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경지에까지 나아가는 것을 군자의 덕목으로 꼽아 왔다.

그런 경지는 군자의 자질이 없는 내게 그저 꿈같은 얘기인지라, 나는 다만 나에게 관대한 만큼 남에게도 관대하게 살자는 정도의 지침을 갖고 산다. 그래서 이해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하는 이중 잣대는 생존 본능의 일환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여야(與野)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태를 이끌고 여론을 조성하려고 다투는 행위는 비록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직접적 이해 당사자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언론이 마치 이해 당사자처럼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는 그냥 보고 있기 힘들다. 만약 한 언론이 야당에게 불리한 어떤 사건에 대해 A잣대를 사용하여 야당을 비판했다면, 유사한 다른 사건이 발생했고 그것이 이번에는 여당에게 불리하더라도 이전에 야당에게 적용했던 A라는 잣대를 일관되게 적용하여 여당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야의 대변자인 냥 특정 정치진영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상황에 따라 잣대를 바꿔가며 들이대는 언론이 많다. 이것은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어느 한편에 유리한 판정을 계속해서 내리는 경기를 지켜봐야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백만 배쯤 곤혹스럽고 짜증스럽다.

우리 정치에서 여야가 민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질적으로 정쟁에 발이 묶여 있는 데에는 그런 식의 보도를 일삼아 온 언론의 잘못이 크다. 특히 여론 영향력에서 우위에 있는 보수언론의 책임이 무겁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건은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고 국기문란임에 분명하고 그 점이 사건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이해 당사자인 여당의 주장을 충실히 중계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는 안쓰럽다 못해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 같은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 보수언론의 이중 잣대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른 듯싶다.

언론은 취재·보도·논평 등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공적 이익을 대변하며,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언론기본법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물론 우리 언론에게는 공염불이요 쇠귀에 경 읽기겠지만, 하도 답답해서 다시 한 번 들춰 보았다. 잣대를 고무줄로 바꿔버리는 언론의 기막힌 마술을 언제쯤 그만 볼 수 있을는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언론도 이해 당사자일 뿐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걸까?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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