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우리은행까지 채용비리, ‘빽’으로 취업하는 세태....‘끈’ 없는 젊은이들은 분통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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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우리은행까지 채용비리, ‘빽’으로 취업하는 세태....‘끈’ 없는 젊은이들은 분통이 터진다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10.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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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가스통 바슐라르는 20세기초 프랑스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근대 인식론의 거장이다. 그가 주창한 ‘패러다임의 전환’ 개념은 한때 세계 철학계를 풍미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곽광수, 이가림 등 문학평론가들을 통해 소개됐으며 문예 비평의 한 방법론으로 그의 철학이 인용됐다.

가스통 바슐라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필자는 학창시절 <문지(문학과 지성)>, <창비(창작과 비평)> 등 문학평론 잡지를 통해 바슐라르를 접했다. 워낙 어렵고 고매한 이론인지라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고 또 금방 잊었다. 하지만 40여 년을 지난 지금도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한 대목이 있다. 문학을 ‘물’의 이미지와 ‘불’의 이미지로 양분하는 방법론이다.

어렴풋 하지만, 대강 그 내용을 소개하면-.

"시나 소설 등 작품 속에 비(雨), 바다, 강, 안개 등 물과 관련된 소품이 주요 배경으로 설정돼 있으면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물의 속성 때문이다. 반면 태양, 화재, 연기 등 불과 관련된 소품이 자주 등장하면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불은 아래서 위로 상승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물리적 특성은 ‘물’이지만 이미지는 ‘불’인 소재가 있다. ‘술’이다. 아시다시피 술은 ‘화기(火氣)’의 속성을 내포한다."

창비 한 귀퉁이에서 이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어떻게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대립되는 두 이미지를 같은 음운의 글자로 만들어 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보다시피 ‘불’과 ‘물’은 ‘ㅂ’과 ‘ㅁ’, 첫 자음만 다를 뿐, 그 다음 이어지는 ‘ㅜ’와 ‘ㄹ’은 똑 같다. 제3의 이미지 ‘술’ 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기가 막힌가. 세계 어느 나라 말이 이처럼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싶었다. 바슐라르가 만일 한국어를 알았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사를 연발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쌍기역(ㄲ) 시리즈가 있다. 현대인이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곱 가지 덕목이란다. ‘꿈’, ‘끼’, ‘깡’, ‘꾀’, ‘꾼’, ‘꼴’, ‘끈’이다. 요즘 젊은 세대 어법을 빌리자면 ‘출세의 7대 천왕’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모두 쌍기역으로 시작하고 외자(한 글자)다.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엮어냈는지 모르지만, 이 역시 참 기발하다는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이 역시 우리 선조님들이 선견지명의 혜안(?)을 갖고 미리 다 만들어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척 보아서도 다 알겠지만 하나하나 짚어보자. ‘꿈’은 말 그대로 간절한 희망이며 원망(願望)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할 때의 그 꿈이다. ‘끼’는 재능이며 개성이다. '바람 끼', '딴따라 끼' 등 옛날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붙여 있었지만, 이제는 그 반대다. 특히 자기 PR이 적극 장려되는 요즘 시대에 ‘끼’는 출세의 필수요소다. ‘깡’은 악착 같은 오기와 두둑한 배짱이다. 열정과 용기, 자신감 등의 총체적 의미를 가진다. 헤겔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을 ‘열정(passion)’이라 했는데, 이 역시 현대 한국어로는 ‘깡’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꾀’도 종래의 ‘잔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었다. 위기를 만났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순발력, 재치, 임기응변 능력을 말한다. 물론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지혜와 같은 깊숙한 맛은 없다. 가볍고 즉흥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변해나가는 이 세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모심려의 지혜도 좋지만 센스있는 꾀, 순발력 있는 재치가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꾼’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다운 전문성을 뜻한다. 어떤 방면에서든 최고의 자질과 재능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꼴’은 외형상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는다. 옛날 군자의 덕목 신언서판(身言書判)과 유사하게 폼(form)이며, 틀(frame)이고, 성격(character)이며, 태도(attitude)다. 처세술의 기본이다. 좋은 꼴, 멋진 꼴은 남을 기쁘게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묘약으로도 작용한다. 보다 나은 꼴을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지만 진정 빛이 나는 꼴은 외면적인 것보다 내면에서 만들어진다.

마지막 남은 ‘출세의 천왕’은 ‘끈’이다. 좋게 말하면 관계성(relationship), 네트워크의 중요성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 ‘끈’은 혈연, 학연, 지연 등 연줄을 지칭한다.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다. 문제는 이 ‘끈’이 이전의 여섯 가지 모든 덕목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원대한 꿈과 타고난 끼를 품고 있고, 꾀돌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영민하며, 제대로 된 꼴을 갖추고, 배짱(깡)과 전문성(꾼)을 가져도, 끈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되는 게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채용비리는 끈이라는 인맥의 부작용(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얼마전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강원랜드의 2012~2013년도 신입사원 198명 중 대다수가 국회의원, 권력 기관 등에 줄을 댄 청탁 입사자라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몇 년간 수백 통의 이력서를 뿌려대면서 허드레 직장이라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쳐온 수많은 청년 취준생들, 허탈한 심정을 가눌 길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보도된 날 전국의 주점에서 소주 매상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얘기가 SNS를 통해 네티즌 사이에 퍼졌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채용비리는 적폐 중의 적폐다.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악질적인 반사회 범죄 중 하나다. 취업의 문이 너무 좁아 '헬조선'이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요즘, 일부 권력자의 ‘빽’을 가진 사람이 ‘끈’을 이용해 좋은 직장 다 차지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5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강원랜드 채용비리에 연루된 의심을 받고 있는 권성동, 한선교 등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 7명과 강원랜드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강원랜드(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어제(17일) 금감원을 상대로 한 국감에서 시중 은행인 ‘우리은행’에서도 채용비리가 만연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신입사원 모집 때 국정원 등 권력기관과 금융기관의 고위 간부나 서울시 부구청장 등 행정기관의 ‘끈’을 통해 입사한 사람이 십수 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인사 담당자들은 부정 입사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면접할 때 서류에 연필로 청탁자를 표시했다가 입사 절차가 끝난 뒤 지웠다고 한다. 정말 간특한 행위다.

더욱이 국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이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사원들 중 대다수가 중도 퇴직했다는 사실이다. 은행보다 더 대우가 좋은 대기업 등으로 전직했다는 것이다. 더 좋은 직장 역시 ‘끈’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우리은행 입사에 성공하는 순간, ‘끈’ 없이 실력으로 입사할 수 있었던 수십 명은 취업의 기회를 잃고 좌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력서를 들고 이곳저곳 문을 두들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17일 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대법원 자료를 받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대 청년 파산이 4년새 1.5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금 의원은 “개인 파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학자금 채무 등으로 재정적 고통을 겪고 있는 20대가 그만큼 많이 늘어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청년들이 겪고 있는 ‘헬조선’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출세를 위한 덕목 ‘7대 천왕’ 외에 또 하나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외자 글자를 남겼다. ‘끝’ 자다. 꿈도, 끼도, 깡도, 꾀도, 꼴도 없이 ‘끈’ 하나만 믿고 세상에 나와 입신양명하려는 사람에게는 ‘끝’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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