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여성 감독’이란 꼬리표, 또 다른 편견 아닌가?...부산국제영화제 던져진 화두 '여성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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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여성 감독’이란 꼬리표, 또 다른 편견 아닌가?...부산국제영화제 던져진 화두 '여성과 영화'
  • 취재기자 김예지, 성민선
  • 승인 2017.10.1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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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감독, 한국 프로듀서 '아시아 여성 필름 메이커스 토크' 진행 / 김예지 기자

16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두레라움 홀에서 '아시아 여성 필름 메이커스 토크'가 열렸다. 토크에는 5명의 아시아 여성 감독과 한 명의 한국 프로듀서가 모여 '여성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6일 오후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 홀에서 '아시아 여성 필름 메이커스 토크'가 진행되고 있다(사진: 영상기자 성민선).

토크의 패널로는 말레이시아의 탄 취무이 감독, 태국의 와라룩 히란스레타왓 감독, 인도네시아의 몰리 수리아 감독, 필리핀의 비앙카 발부에나 감독, 태국의 아노차 수위차코노퐁 감독, 한국의 조소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사진 왼쪽부터 말레이시아의 탄 취무이, 태국의 와라룩 히란스레타왓 , 인도네시아의 몰리 수리아, 필리핀의 비앙카 발부에나, 태국의 아노차 수위차코노퐁, 한국의 조소나 씨(사진: 영상기자 성민선).

비앙카 감독은 “항상 사람들이 저를 ‘여성 감독’으로 지칭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감독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내가 여성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와라룩 감독 역시 사람들이 자신을 지칭할 때, ‘태국 독립 다큐멘터리 여성 감독’이라는 길고 불편한 수식어를 사용한다며, “사람들이 나를 한 단어로 분류하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며 “가끔 그런 호칭을 들을 때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각 나라의 여성 감독 비율을 묻는 말에, 몰리 감독은 “통계는 모르지만, 상업 영화에서 성공한 여성 감독을 두 명 알고 있다. 독립 영화 역시 비율이 아주 낮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감독 카밀라 안디니 감독이 그중 한 명"이라고 답했다.

아노차 감독은 “태국에는 여성 감독이 거의 없다. 상업 영화든 인디 영화든. 영화 학교를 졸업한 여성은 많은데 졸업 후에 영화를 많이 만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몰리 감독 역시 “많은 여성이 감독을 꿈꿨지만, 정작 감독이 된 학생은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은 한, 두 명밖에 안 됐다”며 영화 학교에 다닐 때를 회상했다. 그는 또, “사람들이 어떤 젠더의 영화냐는 질문을 하는데, 여성 감독이니까 이런 분류에 들어가겠구나 하는 선입견을 품는 것 같다”며 “사람들은 영화를 분류시키려고 한다. 어떨 때는 그런 선입견을 깨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고 말했다.

와라룩 감독은 “다큐멘터리에서는 여성이 등장하면 모든 스텝 전체가 여성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며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는 것부터 여성 감독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여성 감독이자, 활동가라는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크에 참석한 한 기자가 패널들에게 공통 질문을 던지고 있다(사진: 영상기자 성민선).

한 기자는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과 관련해 각 나라의 영화계 상황을 물었다. 조 프로듀서는 "한국에서도 최근 김기덕 감독이 논란이 됐다. 여성 협회에서 관련 포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탄 취무이 감독은 "웨인스타인 감독의 일은 태국 내 페이스북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 학교 학생들도 이런 일을 겪거나, 미리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며, "내가 아는 한 지인은 여성 감독이 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동료에게 성추행을 당해서 영화를 아예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몰리 감독은 "실제로 일어나지만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공론화되는 것 자체만으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토크 참석자들이 아노차 태국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사진: 영상기자 성민선).

비앙카 감독은 "제가 캐스팅 감독으로 일할 때부터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 이건 산업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다르다. 또 필리핀에서는 모델이 성공하려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표준화돼 있다"며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를 꼬집었다. 또한, 그는 "성폭행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결국 성폭행이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결론이 난다"며 안타까워했다.

탄 취무이 감독은 "제가 만난 여성 감독들은 70%가 자녀가 없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거나,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다"며 "왜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하고 나서 일을 그만두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바로 프로듀서라고 밝힌 몰리 감독은 첫 영화 후 결혼했고 임신했다. 그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보다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한 어려움이 더 큼을 말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점점 더 어려워졌다. 사회가 바라는 어머니상이 존재하는데, 어머니로서 제한된 것들이 있다"며 "딸의 성적표를 받으면 일 년에 두 번 정도 선생님을 만난다. 여태 만난 모든 선생님이 "딸이 정말 똑똑합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바쁘셔도"라는 말을 꼭 한다"며 "사회가 이렇게 돌아간다. 부산영화제나 외국에 나가며 바쁜 와중에도 (딸과) 연락을 주고받는데,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힘듦보다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압박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조소나 프로듀서는 “한국에서는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한국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많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여성의 사회적 입장이나 노동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가 가진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몰리 감독은 "두고 보자"며 농담을 던진 후, 여성에 대한 시선,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머니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식의 고정 관념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함박 웃음을 터뜨리는 패널들(사진: 영상기자 성민선).

와라룩 감독은 "영화계에 여성 감독이 더 늘었으면 좋겠고, 영화제나 예술에서 이름을 통해 성별을 확인하고, 그로 인해 어떤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앙카 감독은 “영화 산업에서는 여성이 소수이기 때문에 여성 감독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제 희망은 여성 감독과 남성 감독을 분리하거나, 차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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