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 안의 제자를 키워 그윽한 차(茶)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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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 안의 제자를 키워 그윽한 차(茶)로 만들고 싶다
  • 정태철 시빅뉴스 대표
  • 승인 2013.11.0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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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이 크게 히트하자, 일부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관상으로 얼굴을 고쳐 인생 대박을 맞으려고 성형외과를 기웃거린다고 한다.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관상의 대가 한 분이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형으로 관상을 고친다고 인생이 바뀌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다. 대학에 붙을지, 선거에 당선될지, 관직에 오를지, 용하다는 점쟁이 문지방 앞은 때가 되면 긴 줄이 선다. 동양철학에서는 사주팔자를 고치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적선(積善), 명사(明師), 명상(冥想), 명당(明堂), 독서(讀書), 명리(命理)를 실천하는 거라고 한다. 이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적선), 현명한 스승을 만나 배움을 얻으며(명사), 매일 꾸준히 명상하고, 조상 묘자리가 좋아야 하며(명당), 자신의 운명의 이치를 깨달으면 운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에 지식이 없는 나의 해석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황당한 것도 있다. 그런데 하나 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명사(明師)다. 명사란 여기서 ‘눈 밝은 스승’이란 의미인데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주는 큰 스승을 말한다. 선생인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좋은 선생이란 제자에게 큰 깨달음을 주어 인생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선생이 된 후 한참 만에 눈 밝은 스승의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젊은 교수 시절에는 그런 스승이 되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나는 스승인 내 영향력이 널리 퍼져서 수많은 제자들의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

그런 배경에는 미국 대학 유학 시절, 동료 박사과정 유학생에게서 들은 한 일화의 영향이 컸다. 광고를 전공했던 한 동료 유학생은 부전공이 심리학인 관계로 심리학과 과목을 듣게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과목의 담당교수는 첫 시간부터 프로이트를 강의하더라는 것이다. 그 어려운 프로이트를 비전공자인 한국 사람이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었다. 첫 시간이 끝나자마자, 그 유학생은 쪼르르 교수 연구실로 따라 들어가 강의 해독의 어려움을 하소연했더니, 그 교수는 매주 정규 강의가 끝나면 꼭 자기 연구실로 와서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라고 안심시키더라는 것이다. 과연 그 교수는 그 말대로 한국 유학생에게 한 학기 내내 친절을 베풀었고, 학기말에 그 유학생은 그 교수에게 머리를 숙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수는 별게 아니라는 듯, “고마울 거 없어. 모르는 학생을 알게 하는 게 내 직업이야“라고 말하고 씩 웃더라는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심리학의 ‘정교화 가능성(ELM) 이론’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리처드 페티 교수다. 나는 이 얘기를 들은 이후로 그런 선생이 되기로 굳게 결심했다. 초기에는 그런 정열에 불탔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교수직 발령을 받고 연구실이 생기자 좌우명 하나를 내 연구실에 걸었다. 그것은 “진불구명 퇴불피죄(進不求名 退不避罪)”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이는 장수가 부하들을 이끌고 전쟁에 나갈 때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싸우지 않으며, 또한 만약 패했을 때,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므로 패배의 책임과 죄를 절대 피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을 이끌고 사회란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 같은 심정으로 교수직을 아마도 시작했던 것 같다. 과연 그 뒤로도 쭉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단지 나의 좌우명이었을 뿐이었다.

대학 교육 현실의 벽은 높았다. 처음에 나는 모르는 학생을 알게 하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능력도 한계에 부딪혔고, 이리오라 저리가라, 주위의 잡일이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선생이란 직업을 가진 게 후회스럽다고 은사 앞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은사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정년하신 은사님은 선생은 하늘이 준 천상(天上)의 직업이니 행복한 줄 알고 현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고 일침을 주셨다. 가르치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누구나 유유자적할 때 해보고 싶은 꿈의 일들인데, 선생은 그런 일들을 직업 삼아 날마다 하니, 그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더욱이, 선생은 사업가, 율사, 경찰, 정치가처럼 남과 싸우고 남에게 해를 입힐 일도 없으며, 배운 은혜를 입었다고 남들로부터 평생 인사를 받고 사니, 무슨 선생 하는 불만이 있냐는 말씀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었지만, 나이가 들고 정년이 단 단위로 줄면서, 요즘은 초조한 마음이 생긴다. 내가 제자들의 운명을 바꾸는 대스승은 되지 못할망정 잘못 가르쳐서 취직이 안 되고 인생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는 걱정이 부쩍 늘었다. 혹은 학과 시설이 나빠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거나, 교육과정이 나빠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원망을 학생들로부터 듣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요즘 가르치는 학생들은 무언가 예전 학생들 같지 않은 점도 고민을 가중시킨다. 하긴 눈 밝은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도 당시 젊은이들의 행태를 걱정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이 붕괴되는 현상이 자꾸 대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의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생기는가 하면,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와 출석을 부르려 해도 학생들은 재잘거리는 잡담을 멈추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2002년에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엠퍼러스 클럽>이란 영화다. 여기서, 주인공인 미국의 한 사립 고등학교 선생님이 미국 상원의원의 아들인 한 제자가 교내 퀴즈 대회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등 망나니로 행동하는 것을 크게 꾸짖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은퇴했고, 말썽꾸러기 제자는 졸업 후 중년의 나이에 집안의 배경으로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는 상원의원 출마를 발표할 이벤트를 위해 동창들과 그 선생님을 자기 저택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 퀴즈대회를 다시 연다. 선생님은 다시 역사 문제를 내고, 다 까먹은 역사 퀴즈를 중년의 제자들 대부분이 잘 풀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제자는 대부분을 맞춰 우승자가 된다. 그리고 파티가 시작되고, 노 선생과 그 제자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조우한다. 선생님은 제자에게 말한다. “자네는 벌써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끼나?” 선생님은 그 제자가 이 날 추억의 이벤트 삼아 벌인 퀴즈대회에서조차 귀에 낀 소형 무전기로 비서가 알려주는 답을 맞춰 선생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화장실에서 제자에게 한 마디 하고 나간다. “너는 내가 실패한 유일한 제자다”라고. 

이것은 교육의 어려움과 선생의 고뇌를 잘 그린 영화다. 그래도 이 영화의 선생님은 실패한 제자가 그 제자 단 한 명인 듯하다. 반면에, 나는 실패한 제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전전긍긍한다.

최근, 나는 대학원장이란 관리자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자 평교수들과 잦은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생겼다. 월급에 집착하고 권리에 매달리는 교수들이 많다. 왜 그리 처우에 불만은 많은지. 한국 교수들 월급은 액면가로 미국 교수들 월급과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국민 소득의 차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교수 보수가 미국 교수에 비해 월등히 많다. 국내 교수들은 약 7년에 1년씩 강의를 쉬고 안식년을 갖는다. 안식년 때 미국 대학 교수는 월급의 반밖에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안식년을 맞은 미국 교수는 필히 외부 연구비를 따야 한다. 그래야 1년 생활비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식년 때 강의도 안하고(연구 옵션은 있다) 월급 전액을 받는다. 내가 젊은 교수들보다 더 눈이 밝고 수양산 그늘처럼 영향력이 크다고 큰 소리 칠 자신은 결코 없다. 그러나 결국 내 보수는 학생들의 등록금이므로 보수 타령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학생들을 상담할 때 적어도 학교의 인센티브를 바라지는 않았다. 내 품의 제자를 만나는 데 대가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초연한 스승이 되고 싶다. 중국 남송의 대표적 시인 육유(陸游)는 그의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한천고정 자전다(寒泉古鼎 自煎茶).” 이 구절은 ‘찬 물을 길어다가 오래된 솥에 넣어 걸고 스스로 데워 차를 끓인다’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다시 ‘찬물을 길어다가 오래된 솥에 넣어 걸면 스스로 데워져 차가 된다‘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기서 ’찬 물을 넣으면 (가열하지 않아도) 가만히 데워져 차가 되게 하는 낡은 솥‘이 바로 눈 밝은 스승이란 의미와 같아진다. 나는 내 품안에 안기는 그 어떤 제자든 내 온기로 그들이 자연스럽게 그윽한 차로 변하는 오래된 솥과 같은 스승을 꿈꾼다.

나의 애창곡 중 하나는 프랑크 시나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My Way>)다. 나는 가끔 은퇴한 사람이 치열하게 산 지난 인생을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 <마이웨이>의 가사를 읊조린다. 아직 은퇴가 많이 남았지만, 깊어가는 가을밤에 오늘따라 이 노래 가사 마지막 부분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밤은 선생의 고뇌가 불현듯 뼛속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
Yes, it was my way. 

그의 인생 기록은 그가 얼마나 많은 비난에
난타를 당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무릎 꿇고 애원하는 비겁한 자세로는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길을 갔다.
그래, 그게 나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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