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4명의 소수자, 왼손잡이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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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중 4명의 소수자, 왼손잡이는 불편하다
  • 취재기자 김예은
  • 승인 2013.10.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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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설, 장비들이 오른손잡이 중심.. '사회적 약자' 배려 아쉬움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나는 왼손잡이야~'

90년대 가수 패닉의 <왼손잡이>라는 곡의 가사 중 일부다. 패닉의 멤버인 가수 이적은 얼마 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노래 <왼손잡이>를 부른 연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이 노래는 게이 등 성 소수자들이 ‘우릴 왼손잡이 정도로 봐주면 안 되냐’고 한 것에서 따왔다. 왼손잡이는 단지 오른손잡이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라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가수 이적의 말처럼, 사회는 왼손잡이를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와는 다르게 따가운 시선으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는 마찬가지라고 느끼고 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사이트에 실린 ‘왼손잡이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3년 20대 이상 남녀를 조사한 결과 왼손잡이는 3.9%인 것으로 나타났다. 88.3%인 오른손잡이와 7.8%인 양손잡이와 비교하면, 왼손잡이는 상대적으로 소수다. 하지만 이들 소수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의 배려는 거의 없다.

왼손잡이를 배려하지 않고 있는 실태는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을 열 때 손잡이는 오른쪽으로 돌리게 되어있고, 컴퓨터 마우스도 오른손잡이가 편하게 되어있다. 카메라의 셔터 위치도 오른쪽이다.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들은 느끼지 못하는 곳곳에서 불편을 느낀다.

왼손잡이인 부산시 남구 거주 대학생 박지민(21) 씨는 컴퓨터 마우스 사용에 큰 불편을 느껴 집에서는 컴퓨터 마우스를 왼손잡이용으로 바꿔 사용한다. 사용자가 컴퓨터 제어판을 통해서 마우스의 오른쪽 단추와 왼쪽 단추 기능을 바꾸면 왼손잡이용 마우스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MS사가 만든 위도우처럼 친절하지가 않다. 박 씨는 “집 컴퓨터 마우스는 이제 문제가 없는데, 학교 컴퓨터나 PC방 컴퓨터는 조작할 수 없게 돼 있어 컴퓨터를 하는 데 너무 불편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 오른쪽으로 요금을 내게 되어있는 지하철 개찰구 (사진 : 김예은 취재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버스요금을 지급하는 위치도 오른쪽에 있고, 지하철 개찰구의 요금 지급 위치도 모두 오른쪽으로 돼 있다. 음료수 자판기도 오른쪽으로 돈을 내게 되어있다.

울산 남구에 거주하는 왼손잡이 김수현(24) 씨는 군대 시절에 왼손잡이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꼈다. 군대의 총은 오른손잡이 위주로 설계돼 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볼에 총신을 대고 사격하면, 탄피가 총신의 오른쪽으로 튀어 나간다. 그런데 왼손잡이가 편한 쪽인 왼쪽 볼에 총신을 대고 사격을 한다면, 탄피는 총신의 오른쪽으로 배출되니까 바로 왼손잡이 사격자의 얼굴로 튀어 나오도록 돼 있다. 아예 왼손잡이가 왼쪽 뺨에 총신을 대고 왼쪽 눈으로 가늠쇠를 겨냥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김수현 씨는 아예 처음부터 불편하지만 오른 뺨에 총신을 대고 사격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어도 불편한데,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사격을 했으니, 그 결과는 처참했다. 김 씨는 “사격 성적이 형편없어서 벌도 엄청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 오른손잡이용 가위 디자인. 대부분의 가위가 이런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그림 : 이예나)

최근 디자인 학계에서는 왼손잡이뿐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뜻의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불린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성별, 나이,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도록 고려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왼손잡이를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 제품으로는 왼손잡이용 가위, 비데 리모컨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필요에 따라 이동해서 옮겨서 달수 있는 비데 등이 있다. 하지만 유니버셜 디자인도 제품에 한정되어 있을 뿐 사회 전체적인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모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위 디자인 (그림 : 이예나)

왼손잡이인 울산 북구 거주 강나영(22) 씨는 “소수지만 왼손잡이인 사람들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소수자인 장애인들을 배려한 버스는 있지만, 왼손잡이들을 배려한 대중교통은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부산교통공사의 한 관계자는 “왼손잡이들을 위해 현재 운행 중인 버스의 요금지불대를 바꿀 계획은 없다. 앞으로 바꿀 계획이 설지는 확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왼손잡이들을 위한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 있다. 1992년 영국 왼손잡이협회가 매년 8월 13일로 왼손잡이의 불편을 개선하고 편견을 없애기 위해 이 날을 제정했다는 것.

우리나라의 왼손잡이협회는 1999년 광주보건대의 강미희 교수가 설립했다고 한다. 2002년 전라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강 교수는 “왼손잡이에게 오른손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을 쓰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강 교수는 “오른손잡이 위주의 도구와 편견에 왼손잡이를 끼워 맞추지 말고 ‘차이’를 올바로 인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그 신문은 보도했다. 하지만 노컷뉴스에 따르면, 한국 왼손잡이협회는 강 교수가 건강이 안 좋아 일을 못하게 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 왼손잡이를 대변할 아무 단체도 현재로는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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