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서 있기를 강요받는 백화점 매장 직원에게 의자를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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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서 있기를 강요받는 백화점 매장 직원에게 의자를 허(許)하라"
  • 취재기자 김지현
  • 승인 2017.10.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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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측 감시에 하지정맥류·족저근막염에 시달려...'앉을 권리' 법규 있으나 마나 / 김지현 기자

백화점에서 4개월째 근무 중인 진연지(24, 부산시 진구) 씨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바람에 발이 퉁퉁 부어 있지만 근무 중에는 마음대로 의자에 앉을 수 없다. 매장 직원들을 위한 의자가 없는 데다 관리자가 늘 돌아다니며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기 때문이다. 진 씨는 “처음에는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발이 부어 신발을 신기도 어려웠다”며 “직업이어서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화점 매장에서 서서 일하는 직원들이 마음대로 앉을 수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 직원을 위한 의자가 없는 곳이 대부분인데다, 의자를 비치한 곳에서도 백화점 측이 여전히 서서 손님을 맞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화점 내 관리자의 상시 감시로 인해 직원들이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백화점 직원들 가운데 하지정맥류와 족저근막염(발뒤꿈치 통증 증후군)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다른 직업군보다 더 많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유통업 서비스 판매 종사자 건강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래 서서 일하는 유통업 서비스 판매 종사자 3470명 중 목, 허리, 어깨, 다리 등 근골격계 질환 증상 유병률의 고위험군이 조사 대상자의 44.7%인 1552명에 달했다.

백화점에서 근무 중인 김모 씨는 “이쪽 일을 하다 보면 하지정맥류가 올 수밖에 없다. 3년 정도 근무하면 증상이 나타난다”며 “약을 먹으면서 관리하고 있는데 증상이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당시 노동·여성 단체들을 중심으로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으로 의자 비치에 대한 여론이 빗발쳤다. 하지만 그 후로 관심이 줄어들면서 여전히 노동자들은 ‘앉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근무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민정 교육선전국장은 “의자 캠페인 직후에는 대부분의 유통업체에 의자가 비치된 것으로 파악했는데, 여전히 백화점의 기본 방침은 직원들에게 서서 대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2008년에 캠페인을 벌였을 때는 문제 제기를 하는 노동조합이 많지 않아 캠페인을 끝까지 마무리짓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며 “최근에는 백화점에도 노동조합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의자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트 계산대에는 직원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배치돼 있지만, 여유 시간이 있어도 눈치가 보여 의자에 앉기가 쉽지 않다(사진: 취재기자 김지현).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산업 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의자의 비치)에 따르면,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

백화점에서 4년간 근무 중인 정현진(35) 씨는 “매장 내에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지 몰랐다”며 “노동자들 대부분이 이런 법이 있는지도 모른 채 힘겨운 상황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노동자들이 앉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매장 직원 중 일부는 매장 내 직원을 위한 의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화점 직원 이모(22) 씨는 “백화점은 서비스를 제1의 가치로 여기는데 고객을 위한 공간에 직원을 위한 의자가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정민정 국장은 “백화점 노동자들이 대부분 ‘고객이 왕’이라는 슬로건에 주눅이 들어 ‘내가 의자에 앉아도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들이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기 때문에 고객과 노동자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앉을 권리’는 노동자를 존중하는 기본 마음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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