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노래는 저작권료 꼬박꼬박 주면서 책은 왜 공짜로 빌려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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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노래는 저작권료 꼬박꼬박 주면서 책은 왜 공짜로 빌려보나"
  • 취재기자 김예지
  • 승인 2017.09.2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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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국공립도서관 무료 대여 따른 도서 판매 급감에 생계 위협...대여저작권 수익 달라" 요구 / 김예지 기자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해 작가들이 공공도서관 ‘대여저작권’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도서관 대여저작권이란, 작가의 책을 대여한 독자 수에 비례해 일정 금액을 저작권자인 작가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노래방에서 특정 가수의 노래를 부른 회수에 비례해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 '2015 예술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성인 1인당 종이책 구매 수량은 평균 3.7권이고, 평균 구매액은 4만 8000원이었다. 도서 구매가 미미한 만큼, 문학인들의 수입 역시 현저히 낮았다. 2015년 한 해 문학인들이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인 개인당 평균 수입은 214만 원에 불과했다. 1개월에 18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이다.

생존권 위협에 작가들이 공공도서관 '대여저작권'을 요구했다. 사진은 외국 도서관 모습(사진: Bing 무료 제공)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작품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지는데(저작권법 제20조), 배포란 저작물의 원작품 또는 그 복제물을 일반 공중에게 대가를 받거나 받지 아니하고 양도 또는 대여하는 것을 말하므로(저작권법 제2조 제15호), 저작자는 대여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도서의 경우 권리 소진의 원칙(exhaustion rule) 즉, 최초 판매의 원칙(the first sale doctrine)을 따른다. 최초 판매가 이루어지면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소진되고, 이후 구매자가 해당 도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증여 및 판매할 수 있다.

대여저작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하늘 작가는 “음악의 경우는 돈을 내지 않고 다운로드 받으면 불법 복제에 해당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는다. 하지만, 작가들의 경우는 인세를 제외하고는 수입이 없다”고 말했다.

저작자인 작가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익은 김 작가의 말처럼 자신이 쓴 책이 독자에게 판매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도서관 등에서 한 권의 책을 구매하면, 읽은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이더라도 저자에게는 도서관이 구입한 책 한 권의 수익만 돌아온다. 도서관의 수가 늘어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독자들이 늘어나는 만큼 서점 등에서의 책 판매가 그만큼 줄어들고 작가들의 인세 수입도 따라서 줄어들게 되는 것.  최근에는 서점의 도서관화로 이같은 현상은 더 심화됐다.

과거 만화대여점(만화방)이 성행하던 시절, ‘대여저작권’이 공론화됐다. 200~300원가량의 돈을 주고 만화책 1권을 빌려 볼 수 있는데, 대여가 많을수록 이득을 보는 대여점과는 달리 만화의 저작권자인 만화가는 대여점이 구매한 책 1권 값만큼의 인세밖에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2004년 10월 (사)기술과법연구소는 '도서 및 영상 저작물 등에 대한 대여권 부여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여로 인한 수익 일부가 전혀 저작권자 등의 권리자에게 배분되지 않음으로, 저작자가 판매에 의한 보상 기회는 상실하고 대여 수익의 귀속에서는 배제돼 생계 자체를 위협받게 됐다. 이에 따라, 대여료 수익의 일정 부분이 저작자에게도 귀속될 수 있도록 만화를 비롯한 도서에 대하여 저작권리자에게 대여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고 밝혔다.

공론화가 이루어진 지 1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한국의 작가들에겐 '대여저작권'이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 따르면, OECD 32개국 가운데 독일, 영국, 스웨덴 등 26개국에서 이미 '대여저작권'과 같은 내용의 '공공 대출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김 작가는 "우선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등에서 작가의 책이 얼마나 대여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것. 이 과정에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면 법을, 제도가 필요하다면 제도를 만들기 위해 다른 작가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사 과정에서 "서점에서 책이 100권도 안 팔리는 한 작가의 책이 동 단위의 작은 도서관에서 분기당 22회 대출됐다"며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자그마한 한 도서관에서 1년에 80회가량 대출된 것이다. 전국의 공공도서관 수를 곱한다면, 총 대출수는 무시하지 못할 양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요즘은 모든 일이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에, 몇 권의 책이 몇 번 대출되었는지에 대한 조사는 손쉬울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면, 작가들이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책이 어느 지역, 어떤 학교에서 많이 대출되는지를 알게 되면, 직접 강연을 하거나, 독자와 만날 기회를 마련하는 게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정인 씨도 "돈을 내지 않고 음악을 다운받아 들으면 불법 복제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왜 노래방에서 노래할 때는 꼬박꼬박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 책은 공짜로 빌려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지어진 도서관에서 구매된 책을 무료로 빌려 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가들로선 도서관에서 책 한 권 구매해서 다수에게 무차별로 빌려주면 자신의 책 판매 기회 비용이 줄어드는 피해를 입는다는 것.  

해당 도서관이 따로 저작권료를 지불하기 어렵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공립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에 한정해서 일괄 대리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게 작가들의 주장이다. 생활고에 처한 작가의 생계를 보호하고 작가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부나 국회가 먼저 나서서 저작권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교과서에 시가 실려 있는 김하늘 작가는 1년에 일정 금액의 저작권료를 받는다. 각 출판사에서 정부 기관을 대리하는 단체인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에 이용료를 내면, 단체가 대리 수령 후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김 작가는 "대여저작권료 역시 해당 도서관이 일일이 작가에게 지급하는 방식이 아닌, 정부를 대리하는 단체가 대리 수령 후,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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