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듭니까?”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일본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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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듭니까?”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일본에게 묻는다
  • 부산시 진구 황혜리
  • 승인 2017.09.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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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진구 황혜리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악명 높은 한 할머니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할머니는 동네 이곳저곳을 전부 휘저으며, 20여 년간 무려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구청에 넣어온 나옥분(나문희) 여사. 사소한 것부터 의심스러운 것까지 추적해나가는 그녀의 별명은 '도깨비 할매'다.

위안부 소녀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녀가 구청에 나타나면, 구청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한다. 그때, 다른 구청에서 전근해온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나타난다. 옥분과 민재는 첫 만남부터 엄청난 긴장감으로 대립한다.

둘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만 가던 중, 우연찮게 민재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알게 된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민재는 옥분의 영어 선생이 된다.

왜 그녀는 영어를 배우려고 했을까? 옥분은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피해자였고, 이를 숨기며 살아왔다(이 정도는 이미 언론에서 밝혔으므로 내가 스포일러는 아닐 듯). 하지만 전 세계를 다니며 위안부 관련 증언을 영어로 하던 친구 정심이 치매에 걸려 증언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친구를 대신하여 자신이 미국에 가서 위안부 관련 결의안 상정을 위한 증언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해서 증언하기 전날 옥분 할머니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히고 증언을 못할 상황에 봉착한다. 과연 옥분은 증언할 수 있을까?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로 시작해서 감동과 신파로 끝난다. 웃다가 울고 감동한다. 위안부 문제를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하면서 처절한 장면 하나 없이 펼치는 연출력과 연기력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수상한 그녀>, <디어 마이 프렌즈> 등에서 사연 있는 캐릭터를 배우 나문희는 관객들의 가슴에 와닿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번에도 배우 나문희는 민원 접수의 여왕 ‘도깨비 할매’부터 위안부 증인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관록 있게 풀어나갔다.

여기에 <시그널>, <탐정 홍길동>, <박열> 등 매번 캐릭터가 본인인 것처럼 관객을 착각하게 만드는 연기의 귀신 이제훈이 더해졌다. 이번에는 원칙만 따라서 냉철해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과 정의감을 가진 신세대 캐릭터를 기막히게 연기해 주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위안부라는 무거운 소재를 기존 위안부 영화들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소재와 방향에서 접근했다는 것, 그러면서 감동은 오히려 더욱 강력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동네 시장 통 옷수선 가게 할머니가 알고 보니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에서 젊은이들에게 위안부가 저 멀리 있는 우리나라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옆, 내 생활 속에 있는 우리나라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예감이 온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음에도 가슴 속에 여운이 길게 남았다. 엔딩 크레딧을 이렇게 끝까지 차분하게 본 영화는 전에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여운을 느끼고 싶어 한참을 영화관에 앉아있었다. 가슴 아프지만 기억해야하는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1000만 영화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위안부를 우리 세대의 문제로 끌어안게 하는 힘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도 확신한다. 정치나 교육이 못할 일을 이 영화가 해낼 것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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